항목 ID | GC002033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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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得滋 |
영어공식명칭 | Shin Deukja |
이칭/별칭 | 익오(益吾)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광년 |
출생 시기/일시 | 1569년 - 신득자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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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37년 - 신득자 사망 |
출생지 | 신득자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시 |
부임|활동지 | 신득자 부임지 -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
부임|활동지 | 신득자 부임지 - 충청북도 괴산군 |
묘소|단소 | 신득자 묘소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현암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고령 |
대표 관직 | 괴산현감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문신.
[가계]
신득자(申得滋)[1569~1637]의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익오(益吾)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신서(申漵)이고, 할아버지는 신중엄(申仲淹)이다. 아버지는 사헌부대사헌 신식(申湜)이고 어머니는 현감 노개(盧塏)의 딸 광산 노씨(光山 盧氏)이다. 동생은 신득연(申得淵)이고, 아들은 신행(申涬)·신정(申渟)이다.
[활동 사항]
신득자는 1569년(선조 2) 청주에서 태어났다. 과거 합격 이력은 발견되지 않으나 선조 대부터 관직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 선조(宣祖)의 국장(國葬) 때 전 직장(直長)으로서 참여하였는데, 염습 등에 쓰이는 향상(香床)을 새로 만들지 않고 예전에 있던 것을 가져다 쓰고 욕건(浴巾)을 제때 마련하지 않아 수감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614년 영춘현감으로 재임 중 사헌부에서 신득자의 파직을 청하였으나 임금이 윤허하지 않았고, 1617년에는 군기(軍器)와 군량을 마련한 공로로 가자되었다. 1618년 인목대비(仁穆大妃)가 폐위될 때 정청(庭請)에 참여하였고, 1628년(인조 6) 괴산현감으로 부임하였으나 1629년에 법령을 준수하지 않고 형벌을 남용한 죄로 추고(推考)[벼슬아치의 죄와 허물을 자세히 물음]를 당하기도 하였다. 신득자는 1637년 사망하였다.
[묘소]
신득자의 묘소는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현암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