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276 |
---|---|
한자 | 新增東國輿地勝覽 卷七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운천동 866]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효진 |
편찬 시기/일시 | 1530년 - 『신증동국여지승람』 권7 편찬 |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0년 3월 6일 - 『신증동국여지승람』 권7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97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신증동국여지승람』 권7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신증동국여지승람』 권7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
소장처 | 청주고인쇄박물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운천동 866] |
성격 | 고문서 |
저자 | 이행(李荇)|윤은보(尹殷輔)|신공제(申公濟)|홍언필(洪彦弼)|이사균(李思鈞) |
권책 | 1권 1책 |
규격 | 37㎝[세로]|22.2㎝[가로]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530년 이행 등이 편찬한 관찬 지리서.
[개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1530년(중종 25)에 『동국여지승람』을 증수하고, 편찬한 책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7은 그중 권7에 해당되는 편목이다. 2020년 3월 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9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저자]
이행(李荇), 윤은보(尹殷輔), 신공제(申公濟), 홍언필(洪彦弼), 이사균(李思鈞)이 편찬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신증동국여지승람』은 1481년(성종 12) 『동국여지승람』의 수정·증보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먼저 1485년(성종 16) 김종직 등에 명의 『대명일통지』 체제에 따라 증보·수정하도록 명하여, 그 다음 해인 1486년(성종 17) 55권으로 완성하였다. 그리고 연산군 때 초간본에서 노정(路程)의 거리 수 및 사요 등의 오류를 발견하고 1497년(연산군 3) 다시 수정하도록 하였다. 1499년(연산군 5) 수정을 완료하고 계축자(癸丑字)로 중간(重刊)되었다.
중간본의 수정이 미진하고 또 연산군 말에 변경된 제도가 많다는 이유로 1528년(중종 23) 이행(李荇) 등에 수정·증보하도록 하였다. 연산군 때 변경된 관제(官制)나 군현 제도를 되돌리고 효자·열녀의 행적 및 시문 등을 보충하였으며, 새로운 내용을 추가할 때 기존 내용 뒤에 ‘신증(新增)’이라는 표식을 달아 구별하였다. 1530년(중종 25)에 완료하고 1531년(중종 26)에 교서관에서 계축자로 인행한 것이 바로 『신증동국여지승람』 초간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초간본이 나온 이후 몇 차례 오류나 미비함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전면적인 개간 작업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청분실서목(淸芬室書目)』에는 1562년(명종 17) 회령부사 오흡(吳潝) 등이 간행한 2권 1책의 잔본(殘本)이 저록되어 있는데, 현존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이후 선조 때 경연관 홍적(洪迪)이 광주목(廣州牧) 인물사요에 고려 말 학자 이집(李集)이 조선으로 잘못 분류되었음을 지적하고, 광해군 때 이집의 8대손 이덕형(李德馨)이 수정을 요청한 일 등이 있어, 1611년(광해군 3) 전라도에서 번각하여 중간본을 간행하게 되었다.
[형태/서지]
인쇄된 면을 밖으로 내고, 책장 가운데를 접어 끈으로 묶은 선장본(線裝本) 형태이다. 크기는 세로 37㎝, 가로 22.2㎝이다.
[구성/내용]
『신증동국여지승람』 권7 은 경기 여주목조에 해당된다. 내용을 살펴보면 여주목에 동서남북으로 접한 군현계를 적었으며, 그 뒤로 건치 연혁, 관완, 군명, 성씨, 형승, 산천, 토산, 누관, 학교, 역원, 불우, 사묘, 능묘, 고적, 인물, 제영조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