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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3265
한자 新纂辟瘟方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운천동 86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보승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612년~1613년 - 『신찬벽온방』 저술
편찬 시기/일시 1613년 - 『신찬벽온방』 편찬
간행 시기/일시 1613년연표보기 - 『신찬벽온방』 간행
문화재 지정 일시 2018년 3월 16일연표보기 - 『신찬벽온방』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72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신찬벽온방』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신찬벽온방』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소장처 청주고인쇄박물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운천동 866]지도보기
성격 의학서
저자 허준
간행자 허준
권책 1권 1책
행자 10행 18자
규격 33.4㎝[세로]|24.4㎝[가로]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전문 의학서.

[개설]

1612년(광해군 4) 전염성 열병이 유행하자 광해군이 전염병 대응 의서인 『벽온방(辟瘟方)』을 인쇄하여 보급하게 하였고, 1613년 허준(許浚)이 전염병의 증상과 치료법을 기술한 『신찬벽온방(新纂辟瘟方)』을 간행하였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교서관본·홍문관본·오대산본이 소장되어 있고, 허준박물관에 필사본이 소장되어 있다. 규장각 소장본과 허준박물관 소장본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신찬벽온방』은 2018년 3월 1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7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저자]

허준은 조선 시대 명의이다. 선조와 광해군의 어의를 지냈고 1610년 『동의보감』을 완성하여 조선 의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본관은 양천(陽川), 자(字)는 청원(淸源), 호는 구암(龜巖)이다. 20대에 이미 의술로 알려졌고 30세에 어의가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선조를 보필하였다. 서자와 의관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종1품 숭록대부에 올랐고 사후 조정에서는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추증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1612년 조선 전역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자 광해군은 전염병에 대응하는 의서인 『벽온방』을 편찬하여 보급하자는 조정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허준은 전염병 관련 내용을 대폭 보완, 수정한 『신찬벽온방』을 1613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신찬벽온방』은 1권 1책[20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세로 33.4㎝, 가로 24.4㎝이다. 행자는 10행 18자이다.

[구성/내용]

『신찬벽온방』은 권수에 서문(序文)이 있고, 이어 전염병이 발생하는 원인과 증상, 치료법을 기술하고 있다. 온역(瘟疫), 맥리(脈理), 형증(形證), 약명(藥名), 치법(治法), 양법(穰法), 벽법(辟法), 부전염법(不傳染法), 침법(鍼法), 불치증(不治證), 금기(禁忌) 등 22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의보감』에 있는 전염병 관련 내용을 더 상세하게 서술하였고, 『동의보감』에 없는 내용도 대폭 추가하였다.

[의의와 평가]

『신찬벽온방』은 전염병에 대한 신속한 대처가 필요한 상황에서 『동의보감』 같은 종합의서(綜合醫書)가 아닌 전염병 관련 전문의서로 간행된 것이다. 『신찬벽온방』은 전염병과 관련하여 『동의보감』의 온역(瘟疫) 항목을 여러 항목으로 분산하거나 없는 항목을 신설하여 새로 서술하는 등 내용을 세분화·체계화·구체화하였다. 『신찬벽온방』은 조선 시대 국가의 전염병 대처 체계와 진단, 치료 방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유교는 정치에 있어서 인정(仁政)을 중시하였고 백성을 위하여 의술을 베푸는 것, 즉 인술(仁術)의 실천은 인정의 실현을 위한 가장 중요한 방편 중 하나였다. 『신찬벽온방』의 전염병의 예방과 대처를 위하여 국가가 주도하여 편찬, 보급하였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 인술의 실천 사례와 양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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