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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3165
한자 淸州 興德寺址
영어공식명칭 Heungdeoksa Temple site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운천동 866]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서지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5년~1986년 - 청주 흥덕사지 발굴 조사
문화재 지정 일시 1986년 5월 7일연표보기 - 청주 흥덕사지 사적 제315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청주 흥덕사지 사적으로 변경 지정
소재지 청주 흥덕사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운천동 866]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청주고인쇄박물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운천동 866]지도보기
성격 절터
소유자 청주시
관리자 청주시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사찰 터.

[개설]

『직지』의 권말에 “선광 7년 정사 7월일 청주목 외곽의 흥덕사에서 활자로 주조하여 인출하다[宣光七年丁巳七月日 淸州牧外興德寺鑄字印施]”라는 간기가 남아 있어서, 『직지』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청주 흥덕사의 존재도 주목받게 되었다. 기존에 연당리사지로 알려졌던 곳에서 1985년 발굴 조사를 통하여 ‘흥덕사명 청동금구’와 ‘황통10년명 청동발우’가 출토되어 청주 흥덕사지임을 확인하였다. 청주 흥덕사지(淸州 興德寺址)는 1986년 5월 7일 사적 제31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변천]

청주 흥덕사는 서회랑 터에서 출토된 ‘대중 3년(849)명 기와’를 볼 때, 9세기경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창건 이후 몇 차례 중건되면서 『직지』가 간행된 1377년(우왕 3) 무렵까지 조영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흥덕사가 기록되지 않아서 고려 후기에 폐사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위치]

청주 흥덕사지는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운천동 866]에 있다. 청주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무심천의 서쪽, 양병산 운천공원의 동남쪽 산기슭에 았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한국토지공사에서 1984년부터 청주 운천지구 택지 개발 공사를 시작하면서 인근의 운천동사지에 발굴 조사를 선행하였다. 그러던 와중 운천동사지 주변에서 주춧돌 3기가 확인되고, 고려 시대의 치미편과 기와들이 출토되었다. 청주 흥덕사지는 1985년부터 1986년까지 청주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시작하여 흥덕사의 위치와 규모를 확인하게 되었다. 청주 흥덕사지에서는 금당 터와 강당 터, 서회랑 터, 그리고 불전 바닥에 전(塼)이 깔린 건물 터가 조사되었다. 금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구조로 자연석을 적심으로 사용하였고 가구식 기단으로 이루어졌다. 금당 중앙에는 불상의 지대석이 있는데, 상당히 큰 규모의 철불이 주존으로 봉안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당은 금당의 서쪽, 사지의 북단에 있는데,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서회랑은 유구의 흔적을 볼 때, 맞배지붕이 올려진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 터의 발굴, 조사를 통하여 흥덕사는 중문-탑-금당-강당이 중심축에 있고 좌우로 동서 회랑이 둘려진 가람배치였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한편 금당 앞에서 적심이 조사되어 탑(塔)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었다.

[현황]

청주 흥덕사지는 발굴 조사 이후, 1987년 8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보수, 정비 사업이 진행되어 현재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1992년 사찰터 서편에 청주고인쇄박물관이 개관하였다. 2001년 9월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계기로 흥덕사의 재복원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의의와 평가]

청주 흥덕사지는 청주의 대표적인 사적지로 청주고인쇄박물관과 근현대인쇄전시관, 금속활자주조 전수관이 건립되어 우리나라 인쇄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역사적인 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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