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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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瓘 肖像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운천동 866]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강민식 |
모사본 제작 시기/일시 | 1902년 - 윤관 초상 무관상 모사본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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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본 제작 시기/일시 | 1980년 - 윤관 초상 문관상 모사본 제작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7년 3월 31일 - 윤관 초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0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윤관 초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윤관 초상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
현 소장처 | 청주고인쇄박물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운천동 866] |
원소재지 | 호남사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용계내추로 413-8[내추리 145] |
성격 | 초상 |
소유자 | 파평 윤씨 종중 |
관리자 | 청주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있는 고려 문신 윤관의 초상.
[개설]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청주고인쇄박물관에는 고려 전기의 문신 윤관(尹瓘)[1040~1111]의 초상으로 문관상과 무관상 2점이 있다. 윤관의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동현(同玄),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고려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낸 후 여진족을 막기 위하여 별무반을 창설하여 1107년(예종 2) 부원수 오연총(吳延寵) 등을 이끌고 동북 9성을 개척하였고, 1108년 여진을 크게 무찌른 후 개선하였다. 예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윤관의 초상은 북청 만뢰사(萬賴祠)를 비롯하여 6곳에 모셔졌는데, 충청북도 청주의 윤관 무관상은 만뢰사 초상을 1902년에 모사하여 1910년 영당을 짓고 모셔온 것이라 전한다. 문관상은 1980년 호남사를 고쳐 지으며 새로 그려 함께 모셨다. 조선 후기의 초상과 민화 양식이 혼재된 특징이 있다.
[형태 및 구성]
문관상은 표피가 깔린 교의에 두손을 맞잡고 앉은 전신상이다. 사모 아래로 드림이 보이며, 두 마리의 학이 그려진 흉배가 있는 분홍색 단령을 입었다. 얼굴은 윤곽이 두드러진 형상이다. 족좌대 옆에 서책 춘추(春秋)와 서갑을 두었다. 무관상은 투구와 갑옷을 갖춰 입고 철궁(鐵弓)이라 쓴 활에 화살을 장전한 전신상이다. 얼굴의 이목구비는 매우 크게 그려 강인함을 드러냈다. 갑옷을 주황색 바탕의 두정갑으로 소매는 모피를 덧댔다. 퇴군(腿裙)과 허리띠, 각반을 착용하였으며, 둥근 투구에는 만(卍)·수(壽)·복(福) 자를 새겼다.
[특징]
윤관은 고려 전기의 인물이나 초상은 조선 중기와 후기의 양식을 보여 제작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 1902년 모사한 것으로 알려진 무관상의 투구 끝 삼지창 장식과 목을 가리던 드림은 조선 중기의 형식이며, 1980년 그려진 문관상의 표피가 깔린 교의는 조선 후기에 유행하던 양식이다. 무엇보다 전체적인 구도와 채색, 그리고 얼굴 표현은 민화풍을 띠고 있어 원본의 제작 시기도 조선 후기에 해당한다.
[의의와 평가]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 세거하던 파평 윤씨 관련 문화 유산으로 조선 전기에 입향한 후손들이 현달한 인물을 내세워 문중의 위세를 드러낸 사례이다. 윤관이 고려 전기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초상은 조선 중기·후기의 초상 형식과 민화풍을 보이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