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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986
한자 小魯里
영어공식명칭 Soro-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영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충청북도 청주군 옥산면 소로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6년 6월 1일 - 충청북도 청주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14년 -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4.08㎢
가구수 181세대
인구[남/여] 405명[남 219명|여 186명]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소로리(小魯里)의 유래에 대하여 조선 시대 세조가 보은군 속리산을 다니며 온양온천으로 가는 길에 글 읽는 소리가 많이 나는 것을 듣고 공자의 나라인 노나라와 견줄 만하다 하여 ‘소노’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 다른 유래로는 토정 이지함이 전쟁의 화를 피하기 위하여 경기도 광주를 지나 청주로 가는 길에 까치내[鵲川]를 지나 청주 내곡동 뒷산에서 마을의 형세를 살펴보고 사람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하면서 “등동산이망견소로(登東山而望見小魯)”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소로’라고 이름 지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청주군 서강외이하면의 지역으로, 1750년(영조 26)~1776년(영조 52)에 소로리와 창리로 나누어졌다. 1789년(정조 13)에 창리가 소로리(小魯里), 창하리(倉下里), 창동리(倉東里), 창리(倉里), 창상리(倉上里), 창북리(倉北里), 창님리(倉南里)로 분리되었다가 헌종 대 다시 창리로 통합되어 1910년까지 유지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소로리와 창리를 통합하여 충청북도 청주군 옥산면 소로리로 개설되었다. 1946년 6월 1일 청주읍청주부로 승격되는 동시에 청주군의 나머지 지역이 청원군으로 변경되면서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로 개편되었다. 2014년 7월 1일 청원군과 청주시가 통합되면서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가 되었다. 소로리는 1975년 소로1리, 소로2리로 분구되었다.

[자연환경]

남쪽에 미호강이 있고 작은 하천들이 흐르며 평지가 넓다. 19세기 중엽 반복되는 미호강의 범람을 막기 위하여 소로리 들판에서 미호강으로 흐르던 냇가에 버드나무를 심어 나무가 무성하였다. 그래서 버드실이라고도 불렀으나 농지 정리로 대부분 사라졌다.

[현황]

2023년 6월 30일 현재 소로리의 면적은 4.08㎢이며, 인구는 181세대, 405명[남자 219명, 여자 186명]이다. 소로리옥산면의 동단에 있으며, 동쪽으로 남촌리, 서쪽으로 국사리, 남쪽으로 신대동, 북쪽으로 호죽리와 접하고 있다.

소로리의 자연 마을로는 소로1리에 벌뜸, 새터, 잿말, 텃마루가 있고, 소로2리에 창리[서번], 원남이 있다. 1990년 무렵 버스가 들어왔고, 1997년 무렵에 전기가 들어왔다. 이후 오창과학산업단지가 개발되면서 살기가 편리하게 되었다. 소로리는 논농사가 주 산업이고, 농요와 농악이 유명하다. 소로리의 문화 유적으로 1997년 발굴된 소로리 유적이 있다. 소로리 유적에서 발견된 볍씨들은 1만 5000년 전의 것으로 밝혀져 벼의 기원과 진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소로리는 지방도 제508호가 마을 동쪽을 통과하여 지나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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