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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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所田里 |
영어공식명칭 | Sojeo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소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인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지명 개편 당시 소전2구의 옛이름 소여리(所余里)의 소(所) 자와 소전1구의 옛 이름 벌전리(伐田里)의 전(田) 자를 따서 ‘소전리(所田里)’라고 명명하였다. 소여는 소전리 서쪽에 있는 산이 마치 소가 서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산서리라 불렀다는 전설과 관련 있고, 벌전은 임진왜란 때 피난민이 화전을 하면서 정착하였는데, 모두 밭이고 논은 거의 없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본래 문의군(文義郡) 남면(南面)에 포함된 여러 고을들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산서리(山西里), 벌전리, 소여리, 상대리(上垈里) 일부를 병합하여 충청북도 청주군 용흥면 소전리로 개설되었다. 1930년 용흥면과 양성면을 합하여 문의면이 되면서 충청북도 청주군 문의면 소전리로 개편되었다. 1946년 6월 1일 청주읍이 청주부로 승격되는 동시에 청주군의 나머지 지역이 청원군으로 변경되면서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소전리로 개편되었다. 2014년 7월 1일 청원군과 청주시가 통합되면서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소전리가 되었다. 1980년 대청댐 완공으로 일부 저지대가 수몰되었다.
[자연환경]
전체적으로 동고서저의 지형이며 평야가 거의 없는 가파른 산악 지역이다. 북쪽은 샘봉산의 산줄기가 동서로 장벽을 두르듯 막혀 있고 서북쪽 끝의 가이고개를 넘어야만 연결된다. 서쪽과 남쪽은 대청호에 의하여 막혀 있다. 동쪽 또한 염티재를 넘어야만 보은 방면과 연결된다. 산서마을에서 벌전으로 가는 서낭당재도 길이 험한 편이다. 북쪽에 자리한 샘봉산에서 내려온 골짜기를 따라 마을과 경작지가 형성되어 있다.
[현황]
2023년 8월 31일 현재 소전리의 면적은 7.75㎢이며, 인구는 54세대, 83명[남자 40명, 여자 43명]이다. 소전리는 문의면의 동남쪽 끝에 있으며, 동쪽으로 충청북도 보은군 회남면 남대문리, 서쪽으로 후곡리, 남쪽으로 대청호 건너 보은군 회남면 산수리, 북쪽은 염티리와 문덕리, 남쪽은 후곡리와 접하고 있다. 행정동은 버랏마을이 소전1리, 산서리가 소전2리로 분구되어 있다. 자연 마을은 마을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금강으로 나가는 물줄기 주변에 형성된 산서[사셔]가 있고, 산서에서 동쪽 횟골고개를 넘어가면 버랏[벌전]이 있다. 그리고 남쪽 숯고개를 넘어 금강 변에는 소여골[소려골]이 있었다. 1980년 대청댐의 준공으로 소여골은 완전 수몰되어 주민들은 미천리로 이주하였다. 버랏에는 버랏나루가 있었고 소여골에는 소여골나루터가 있어 나룻배가 다녔으나 모두 수몰되었다.
토성으로는 버랏에는 밀양 박씨와 청송 심씨가 있었는데 후에 김해 김씨와 아산 이씨가 들어왔다고 한다. 현재는 김해 김씨가 가장 많이 살고 있다. 산서에는 처음에 경주 김씨가 살았으나 현재는 경주 이씨와 수원 백씨 등이 살고 있다. 논농사가 어려운 산악 지형의 특성으로 인하여 밭농사가 발달하였으며 산뽕나무, 대추나무 등과 숯, 한지 등이 많이 생산되었다. 특히 닥나무로 만든 한지는 품질이 좋았으며, 1987년부터 1992년까지는 잠업이 번창하여 수입을 올렸다. 문화유산으로는 소전리 탑신당(塔神堂)과 산신당(山神堂)이 있는데 모두 수몰지 근처에 있어 현재로서는 접근이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