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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860
한자 金居里
영어공식명칭 Geumgeo-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금거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선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충청북도 청주군 가덕면 금거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6년 6월 1일 - 충청북도 청주군 가덕면 금거리에서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 금거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14년 7월 1일 -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 금거리에서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금거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1.9㎢
가구수 75세대
인구[남/여] 127명[남 61명|여 66명]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금인리(金仁里)의 금(金) 자와 증거리(曾居里)의 거(居) 자를 따서 금거리(金居里)라고 하였다.

[형성 및 변천]

1750~1776년[영조 대 후반]에는 청주목 남일상면의 금인장리(金仁場里)였다. 1789년(정조 13)에 증거동(曾居洞)으로 이루어져 있다가 1845년(헌종 11)에 남일상면이 남일면으로 바뀌고 금인장리로 통합되었다. 1910년에는 다시 청주군 남일상면의 금인리(金仁里)와 증거동으로 다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금인리, 증거리(曾居里)와 병암리(屛岩里), 송정리(松亭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충청북도 청주군 가덕면 금거리로 개설되었다. 1946년 6월 1일 청주읍청주부로 승격되는 동시에 청주군의 나머지 지역이 청원군으로 변경되면서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 금거리로 개편되었다. 2014년 7월 1일 청원군과 청주시가 통합되면서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금거리가 되었다. 금거리의 행정리로는 1985년 양지말, 음지말, 탑거리가 금거1리로, 증거울, 신개촌이 금거2리로 분구되었다.

[자연환경]

금거리국사봉(國師峰)피반령(皮盤領)으로 이어지는 험준한 능선에서 북쪽으로 갈라져 나온 능선 끝자락에 있다. 남쪽은 높이 350m 내외의 산지를 이루고 있고, 북쪽은 낭성면 추정리가덕면 내암리에서 발원한 무심천이 합수하여 서쪽으로 흐른다. 북쪽 지역은 곡간지와 무심천 주변에 형성된 하곡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2023년 7월 현재 금거리의 면적은 1.9㎢이며, 인구는 75세대, 127명[남자 61명, 여자 60명]이다. 금거리가덕면의 동쪽 끝에 있으며, 동쪽으로 상당구 낭성면 추정리, 서쪽으로 병암리, 남쪽으로 내암리, 북쪽으로 상당구 낭성면 추정리와 접하고 있다.

금거리의 자연 마을로는 짐인장이, 증거울, 신개촌 등이 있다. 금거1리에 양지말, 음지말, 탑거리를 합하여 부르는 ‘짐인장이[짐인쟁이, 금인쟁이, 김인동]’가 있다. 금인장리(金仁場里)에서 변형된 말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금인장리(金仁場里)’로 나온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청주 관문에서 30리[약 11.78㎞] 떨어져 있으며, 호수는 74호이고, 남자가 96명, 여자가 130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양지말 입구에 수령 280년이 넘는 느티나무[청주 보호수 제36호]가 있다. 양지말 입구에는 탑거리가 있다. 탑거리는 ‘탑이 있는 거리’라는 뜻으로 현재 가덕제일교회, 예뿌리민속박물관이 있다. 음지말은 양지말 동쪽 들판 너머에 있다. 금거2리에는 마을 입구에 증거울방죽이 있는 증거울[증거동]이 있다. 증거울 북쪽에 국가지원지방도 제32호 도로가에 있는 신개촌(新開村)[신개들, 주막거리]이 있다. 신개촌은 청주석회가 들어서면서 주막거리가 형성되어 번창하고 호수가 늘어나자 ‘새롭게 열린 들 또는 마을’이라는 뜻의 ‘신개들’ 또는 ‘신개촌’, ‘주막거리’로 불리게 되었다.

금거리는 북쪽으로 국가지원지방도 제32호가 통과하고 있어 제조 시설 등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 있으나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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