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4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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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立春帖 |
영어공식명칭 | Ipchun Calligraphy |
이칭/별칭 | 입춘축,춘축,입춘방,춘방,문첩,춘첩,춘첩자,춘련,대련,문대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용남,황성현 |
[정의]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서 입춘날에 대문이나 기둥, 벽 등에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는 글귀를 써 붙이는 풍속.
[개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이자 봄을 맞는 날이다. 양력으로 2월 4일 무렵이다.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서는 입춘이 되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한 해의 복과 운수대통을 기원하며 축하·기원·경계 등의 글을 써서 집의 대문이나 기둥 등에 붙이는데, 이를 입춘첩(立春帖)이라 한다. 대개 종이에 좋은 글을 쓰고 입춘 때 붙인다고 하여, 입춘첩·춘첩·춘첩자(春帖子)·입춘방(立春榜)·춘방(春榜)·문첩(門帖)·입춘축(立春祝)·춘축(春祝)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또, 문이나 기둥마다 대구(對句)의 글을 지어 붙인다고 하여, 춘련(春聯)·대련(對聯)·문대(門對)라고도 한다.
[연원]
입춘첩 은 고대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옛 기록에는 고려 시대부터 입춘첩이 나타나는데, 『동문선(東文選)』에 김부식(金富軾)이 쓴 내전(內殿) 춘첩자가 기록되어 있다. 또,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고려 시대에는 입춘 날에 관리들에게 1일 휴가를 주었고 입춘 하례를 행하였으며, 왕이 신하에게 입춘을 상징하는 작은 표기인 춘번자(春幡子)를 나누어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조선 시대에는 관상감(觀象監)에서 입춘날 붉은색 안료인 주사(朱砂)로 벽사문(辟邪文)을 써서 대궐 안으로 올리면 대궐에서는 벽사문을 문기둥에 붙였다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기록하고 있다.
[놀이 방법]
청주 지역에서는 입춘날이 되면 각 가정에서 그해의 복을 빌고자 입춘첩으로 상서로운 글귀를 써서 붙인다. 보통 입춘첩의 글귀는 정하여져 있는데, 방문 위에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방 천정에는 ‘세재모년만사여의형통(歲在某年萬事如意亨通)’, 광에는 ‘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을 써 붙이며, 대문에는 한자로 용(龍), 호(虎) 자를 크게 한 글자씩 써서 좌우에 붙인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원하는 글귀를 현관문 상단에 붙이기도 한다.
한번 붙인 입춘첩은 그대로 두었다가 이듬해 입춘에 새 입춘첩으로 덮어 씌우는 것이 관례인데, 흥덕구 수의동 강촌마을과 서원구 장암동 신목마을에서는 이전의 축이 있으면 떼어 버리고 새것을 붙인다. 한자를 잘 아는 사람은 직접 입춘축을 쓰지만 직접 쓰기 어려운 사람은 마을 어른이 써 준 입춘첩을 시간에 맞추어 붙인다. 상당구 운동동 백운동마을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 사는 불교 신자들은 입춘날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절에서 얻은 춘첩을 집 안에 붙여서 한 해 동안의 태평을 기원하기도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옛 청원군 지역에서는 입춘축을 붙이는 것 외에 입춘 때 행하는 풍속으로 1990년대만 하더라도 삼재가 드는 사람이 있으면 머리가 세 개 달린 매를 그린 ‘삼재부적’을 사다가 방문 위에 붙였다고 한다. 또는 입춘 때 보리뿌리점을 치기도 하였는데, 밭에 나가 보리를 뽑아 세 가닥이면 보리 풍년이고 두 가닥이면 보리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현황]
청주 지역에서는 20세기만 하여도 집집이 복을 비는 입춘첩을 써 붙였으나 2000년대 이후로는 입춘첩을 붙이는 집을 찾아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