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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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부럼깨기,작절,고치지방,종과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성현 |
[정의]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서 정월대보름날 새벽에 날밤·호두·은행·잣 등 견과류를 깨물어 먹는 풍속.
[개설]
정월대보름에는 한 해 동안 각종 부스럼이 나지 않기를 바라고 치아를 튼튼하게 하려는 뜻에서 새벽에 호두, 밤, 잣, 땅콩과 같은 견과류를 깨물어 먹는데, 이러한 풍속을 ‘부럼’ 또는 ‘부럼깨기’라 한다. 부럼의 어원은 부스럼에서 왔다고 알려져 있다.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서는 ‘부럼 깨문다’라고 하면서 정월대보름 아침에 일찍 일어나 견과류를 깨무는데, 이렇게 하면 1년 내내 부스럼이 나지 않고 액을 막아 태평하다고 여긴다. 때로는 부럼을 깨물고 나서 먹지 않고 마당에 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마당에 버리는 것은 지신(地神)에게 던져 준다는 뜻이 된다. 부럼을 깨물 때 자기 나이만큼 깨무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노인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어서 예전에는 견과류 대신에 딱딱한 엿이나 얼어서 딱딱하여진 무를 깨물기도 하였다.
[연원]
부럼 의 정확한 유래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조선 후기에 나온 여러 세시기나 가사 등의 기록에 작절(嚼癤)·고치지방(固齒之方)·종과(腫果) 등의 이름으로 사례가 확인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오랜 기간 광범위하게 전승되어 온 민속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1925년에 발행된 『해동죽지(海東竹枝)』에 따르면 “옛 풍속에 정월대보름날 호두와 잣을 깨물어 부스럼이나 종기를 예방하였다. 궁중에서는 임금의 외척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일반 시정에서는 밤에 불을 켜 놓고서 그것을 팔았는데 집집마다 사가느라 크게 유행하였다”라고 하여 부럼을 깨무는 풍속이 일반 백성은 물론이고 궁중에서까지도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부럼은 부스럼을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행하여지기 전에, 본디 이를 튼튼하게 하려는 주술적 목적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의 민속 해설서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의주(義州) 풍속에 젊은 남녀들이 새벽에 엿을 깨무는 것을 치교(齒交)라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러한 치교는 누구의 이가 튼튼한지를 내기로 겨룬다는 뜻이다. 이러한 치교는 이를 튼튼하게 한다고 하여 대보름날 이굳히산적을 만들어 먹는 것과도 유사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1882년 간행된 시문집 『담정유고(潭庭遺藁)』에 보이는 “호두와 밤이 어금니를 단단하게 하니, 오이처럼 부드럽게 부스럼을 깨무네”라는 시구도 이런 관념이 오래전부터 널리 인정되어 왔음을 말하여 준다.
[놀이 방법]
부럼 으로는 날밤·호두·은행·잣·땅콩 등 껍질이 딱딱한 것을 이용하며, 때로는 그보다 부드러운 무를 대용하기도 한다. 부럼에 이용되는 견과류의 종류로는 어느 한 가지를 쓰기도 하지만, 대개는 여러 가지를 함께 골고루 마련하여 가족 구성원의 능력과 취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용한다. 이러한 견과류를 집집마다 대보름 전날 미리 물에 씻어 준비하여 두었다가 보름날 아침에 식구 각자가 이것을 어금니로 힘주어 단번에 깨물면서 “부럼 깨물자!”라거나 “올 한 해 무사태평하고 부스럼 안 나게 하여 줍소사”라고 하는 주언(呪言)이나 축원사를 함께 외운다. 부럼깨기는 자기 나이 수대로 하기도 하지만 두세 번 거듭하는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보통이다. 대개 첫 번째 깨문 것은 주언과 함께 마당이나 지붕에 던지고 두 번째 것부터는 버리지 않고 껍질을 깬 뒤에 먹는다.
[현황]
청주 지역에서는 1990년대만 하더라도 대보름날 아침에 일어나면 한 해 동안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껍질이 단단한 호두나 은행 잣 또는 엿을 깨물어 먹었다고 한다. 세시풍속으로 먹던 견과류는 2010년대 이후로는 견과류가 건강에 좋다 하여 다양한 견과류를 한입에 먹을 수 있는 소포장 형태의 견과류 상품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처럼 최근에는 대보름날 세시풍속이 아닌 일상적 식품으로서 견과류를 섭취하고 있다. 청원구의 대표적인 전통 시장인 북부시장과 내덕자연시장[밤고개자연시장] 등지에서는 부럼용 견과류를 상시적으로 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