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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127
한자 鐵器文化
영어음역 cheolgi munhwa
영어의미역 Iron Cultur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선사/철기
집필자 박중균

[정의]

철로 만든 도구를 사용하던 시대의 문화.

[개설]

한국의 철기문화는 중국 전국시대의 철기문화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으며, 철기의 자체적인 생산은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여진다. 철기생산의 본격화 및 현지화, 제조기술의 발전은 다른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쳐 새로운 토기의 출현, 생산력의 증대와 같은 결과를 낳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통합이 가속화되어 국가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변천]

청주지역의 철기문화는 지금까지 발굴조사 된 자료를 통해 보면, 기원후 3세기경부터 나타나고 있으며, (덧)널무덤, 장방형주거지, 타날문토기, 철제 농공구와 무기의 출현을 특징으로 한다. 그 특징은 환원소성에 의해 만들어진 회색토기, 타날문토기, 경질무문토기 등의 토기류와 철로 만들어진 농공구와 무기 등 철기류의 출현, 그리고 널무덤(木棺墓), 덧널무덤(木槨墓), 주구토광묘(周溝土壙墓) 등의 묘제(墓制)와 타원형 혹은 장방형 집터의 출현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청주지역에서는 청주 비하동 부모산 산기슭에서 석곽묘(돌덧널무덤)로 추정되는 유구내에 점토대토기, 흑도장경호, 세형동검 등의 유물이 출토된 것 외에는 청동기시대 후기에서 기원후 2세기에 해당하는 유적이 아직 조사된 예가 없기 때문에 청동기문화에서 철기문화로의 변화과정과 철기문화의 유입과정을 파악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지금까지 발굴 조사된 기원후 3~5세기대의 고분과 주거유적, 그리고 유적내 출토유물 등 고고자료(考古資料) 통하여 청주 지역 철기문화의 양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세기 후반~4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시기의 고분유적으로는 송절동유적, 봉명4지구유적이 있다. 송절동유적은 3세기대의 고분유적으로, 조사결과 널과 덧널을 매장주체시설로 한 단장묘(單葬墓), 합장묘(合葬墓), 무덤주위로 도랑을 돌린 주구토광묘(周溝土壙墓) 등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로는 회흑색 혹은 회(백)색을 띠며 돗자리문(繩蓆文), 문살문(格子文), 종집선문(縱集線文) 등의 문양이 타날된 원저단경호(圓底短頸壺)와 심발형토기 등 토기류와 철촉(鐵鏃), 철모(鐵矛), 철극(鐵戟), 철착(鐵鑿) 등 철제 농공구와 무기류, 유리제 구슬 등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철기의 부장이 빈약하다.

이후 3세기 후반~4세기 후반 대에 해당하는 봉명4지구유적이 조사되면서 청주지역의 철기문화 양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봉명4지구유적에서는 240기 정도의 토광묘(土壙墓)가 조사되었다. 이들 토광묘는 이전시기의 청동기시대 주거지를 파괴하고 조성되었으며, 널과 덧널을 매장주체시설로 하였다.

[봉명4지구 유적]

토광묘의 형식을 세분하여 보면, 시신을 홀로 묻기 위한 단장묘, 부부 합장묘, 길이 5m 이상의 대형토광묘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 철기류, 청동기, 칠기, 유리제 구슬 등이 있다. 토기류는 종집선문·문살문 등이 타날된 원저단경호와 심발형토기가 기본조합상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평저직구호(平底直口壺), 바가지형토기, 소반형토기(小盤形土器), 삼각투창대부호(三角透窓臺附壺) 등이 등장하고 있다.

철기류는 농공구와 무기, 마구 등이 있다. 농공구는 주로 손칼, 끌, 낫, 도끼 등이 부장되었으며, 무기는 화살촉, 창, 고리손잡이 큰칼, 투구편이 부장되었다. 마구는 재갈과 등자편이 있다. 청동제품으로는 마형대구(馬形帶鉤)와 대길명청동방울이 있다. 봉명4지구 유적을 통해 보면, 청주 지역은 4세기대로 넘어가면서 토기의 기종이 다양해지고, 철기의 부장이 이전의 송절동단계보다 늘어난 변화상을 보이고 있다.

[기승마구]

특히, 4세기대에는 청주지역에 기승마구가 등장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기승마구의 등장은 전술상의 변화와 함께 정복전쟁이 가속화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마형대구는 북쪽으로는 경기도 안성부터 천안, 미호천(美湖川)유역의 청주·청원, 충주, 상주, 김해 등 내륙지역의 중요 교통로상에 위치한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상 3~4세기 대의 고분자료를 통해 살펴본 결과 청주지역의 철기문화는 널무덤·덧널무덤·합장묘 등의 묘제와 칠기(漆器), 대길명청동방울(大吉銘小銅鐸), 돗자리문(繩蓆文)·문살문(格子文) 등이 타날된 원저단경호, 평저직구호(平底直口壺) 등은 낙랑군지역과의 문화적 연관성이 엿보인다.

또한 마형대구가 주로 육상 교통로 상에 위치한 지역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당시 청주지역은 교통로 상에 위치한 중요 거점지역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마구는 계통상 중국 동북지역의 선비(鮮卑)계통으로 보는 데는 이견이 없고, 대길명청동방울 또한 선비계통으로 보는 견해가 있어 4세기대의 마구의 유입경로와 과정을 밝히는 것이 청주지역 철기문화의 한 계통을 밝히는데 중요한 열쇠라고 여겨진다.

[주거유적]

주거유적으로는 봉명 1·5지구 유적, 명암동유적, 송절동유적이 있다. 이중 봉명1지구의 주거지는 기원후 1~3세기에 해당하며, 나머는 주거유적은 4세기대로 편년되고 있다. 주거지는 입지상 구릉지대에 자리하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주거지의 구조와 형태를 보면, 봉명1지구에서 확인된 주거지는 평면 형태가 장방형 내지 타원형에 한쪽 벽의 중앙부가 돌출된 ‘凸’자형을 띠고 있으며, 4세기대로 편년되는 주거지들은 장방형 혹은 방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장방형 혹은 방형계 주거지는 기둥구덩이의 배치에 따라 경사면 위쪽의 벽면을 따라 기둥구덩이 있는 것과 양쪽 벽을 따라 각 3개의 기둥구덩이가 대칭으로 있는 것이 있다. 주거지 내부시설로는 화덕이 확인되고 있다. 화덕은 진흙으로 만든 것으로 봉명5지구유적에서는 일부 부뚜막시설로 볼 수 있는 것이 있는데, 형태는 대체로 ‘ㄱ’·‘ㅁ’형을 띠고 있다. 부뚜막식 화덕시설은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북한강·남한강유역, 경기북부지역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봉명5지구유적은 유적을 둘러싸고 있는 위쪽 능선상에 목책을 세우기 위한 기둥구덩과 도랑[溝]이 확인되었다. 결국 봉명5지구 유적을 통하여 4세기대 청주지역의 주거양상을 보면, 능선사이의 아늑한 곡간부에 마을이 형성되고, 능선상에는 목책과 도랑 등의 방어시설을 만들어 외부로부터 마을을 방어할 수 있게 한 방어취락(防禦聚落)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백제의 영향]

4세기 후반경에 이르면 청주지역은 백제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으로 여겨진다. 4세기 후반~5세기 후반대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백제고분군인 청주 신봉동 고분을 통해 보면, 묘제는 이전의 토광묘 전통이 지속되는 가운데, 5세기 중후반경에 이르러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 등장하고 있다.

무덤 내 출토유물은 고배·삼족토기·광구호 등 한성백제양식의 토기가 등장하고 있으며, 철제 마구와 무기의 부장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철제 마구와 무기가 많이 부장되고 있는 것은 당시 백제가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백제의 지방으로서 청주지역이 군사적으로 중요시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유물 중에는 가야와 왜, 신라계 유물이 포함되어 있어 이들 지역과 교류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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