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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724
한자 韓鳳洙
영어음역 Han Bongsu
이칭/별칭 봉수(奉洙),봉서(鳳瑞),봉용(奉用),봉용(奉龍)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박걸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1884년연표보기
몰년 1972년연표보기
본관 청주
청암(淸巖)
출신지 충청북도 청주
아버지 한진영(韓震英)
어머니 경주이씨(慶州李氏)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1963년]

[정의]

한말에는 의병장으로 국권회복운동을 하였으며 3·1운동 때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1907년 의병투쟁에 나선 이후 1910년 5월 일제에 피체될 때까지 충청북도 일원은 물론 경상·강원지역 등 광범한 지역을 무대로 20여회에 걸쳐 격렬한 투쟁을 벌인 중부지방의 후기 의병장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한봉수(韓鳳洙)[1883~1972]는 평민으로 구성된 소규모의 부대를 이끌고 민중적 기반에서 호응을 받으며 활동하였는데, 번개대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신출귀몰한 유격전의 명수였다. 그의 투쟁 유형은 일본인 자산가와 친일파 처단, 밀정과 변절자의 응징, 일본군과의 직접 교전, 군자금 모금, 우편행랑의 습격 등 다양하였다.

1910년 피체된 한봉수는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합방대사령(合邦大赦令)으로 면소되어 출옥하였다. 이후 1919년 거족적인 독립운동인 3·1운동이 발발하자 4월 1일 고향인 세교리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이튿날에도 내수보통학교 학생들과 장꾼들을 주도하여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피체되어 다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묘소]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 학평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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