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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325
한자 西原京
영어음역 Seowon-gyeong
이칭/별칭 서원소경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이우태양기석

[정의]

685년(신문왕 5) 충청북도 청주 지방에 설치된 신라시대 5소경(五小京)의 하나

[형성]

신라는 삼국통일 후 전국을 9주(州)와 5소경(小京)으로 재조직하였다. 전국을 9주로 나누고, 주 밑에 군(郡)·현(縣)을 두었으며, 주에는 총관(摠官:후에 都督으로 개칭), 군에는 군수(郡守), 현에는 현령(縣令)을 두었다. 또한 수도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는 소경을 두었다. 소경제는 512년(지증왕 13)에 아시촌소경(阿尸村小京)을 설치한 것이 시작이다.

[변천]

그 후 557년(진흥왕 18)에 충주에 국원소경을 설치하고, 639년(선덕여왕 8)에 강릉에 북소경(北小京)을 두었으며, 금관소경은 680년(문무왕 20), 서원소경은 685년(신문왕 5)에 각각 설치하였다. 그 후 757년(경덕왕 16)에 이르러 소경(小京)을 경(京)으로 이름을 고쳤다.

[위치]

서원경 중심지의 위치에 대해서는 아직 학자들 사이의 견해가 일치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청주시 중심부인 용두사지(龍頭寺址) 철당간 부근일 것으로 짐작되며, 그 뒤의 우암산(牛岩山)[338m] 토성 및 상당산성과 연계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소경의 내부에도 왕경(王京)과 마찬가지로 6부(部)의 행정구역을 두었다. 이는 청주 상당산성 부근에서 발견된 ‘사량부속장지일'명 기와편과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에 강수(强首)중원경(中原京) 사량부 사람이라고 한 것 등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소경에는 장관에 해당하는 사신(仕臣) 또는 사대등(仕大等)과 이들을 도와 일하는 사대사(仕大舍) 등의 관료가 있었다.

[의의와 평가]

소경의 설치 목적은 국토의 한쪽으로 치우친 수도의 편재성을 극복하고 지방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와 아울러 지방세력 특히 통일과정에서는 신라에 흡수된 고구려·백제·가야의 세력을 견제하거나 회유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도 있었다고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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