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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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思禹 |
영어공식명칭 | Gim Sau |
이칭/별칭 | 인보(仁父),용암(勇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주성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주희 |
출생 시기/일시 | 1857년 - 김사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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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07년 - 김사우 사망 |
출생지 | 김사우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주성리 |
묘소|단소 | 김사우 묘소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주성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성 |
본관 | 안동 |
[정의]
개항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학자.
[가계]
김사우(金思禹)[1857~1907]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인보(仁父), 호는 용암(勇菴)이다. 아버지는 선공감역 김호벽(金好璧), 어머니는 박호준(朴浩準)의 딸이다.
[활동 사항]
김사우는 1857년(철종 8)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주성리 인곡마을에서 태어났다. 칠팔 세 무렵부터 서당에 다니기 시작하여 날이 궂을 때도 건너뛰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20대 때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고,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평생 고향에서 학문 연구에 힘을 쏟았다. 특히 『소학(小學)』, 『사서(四書)』, 『주자대전(朱子大全)』의 연찬에 힘을 기울였다.
김사우는 학자로서 명성이 알려져 고향 청주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1905년(광무 9)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통분(痛忿)한 나머지 병을 얻게 되었고, 2년 후인 1907년 9월 8일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사우의 저술로는 문집인 『용암유고(勇菴遺稿)』 7권이 전한다.
[묘소]
김사우의 묘소는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주성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