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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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泰休 |
영어공식명칭 | Shin Taehyu |
이칭/별칭 | 치용(致用),고재(孤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광년 |
[정의]
개항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무신.
[가계]
신태휴(申泰休)[1859~1935]의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치용(致用), 호는 고재(孤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신광록(申光祿)이고, 할아버지는 신병모(申秉模)이다. 아버지는 내부대신 신성구(申聖求)이고, 어머니는 정대무(鄭大武)의 딸 나주 정씨(羅州 鄭氏)이다. 부인은 현감 김태현(金泰鉉)의 딸 광산 김씨(光山 金氏)이고, 아들은 신석우(申錫雨)·신용우(申用雨)이다.
[활동 사항]
신태휴는 1859년(철종 10) 청주에서 태어났다. 1884년(고종 21)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청군을 도와 개화당을 공격하였고, 1885년(고종 22) 병 때문에 체직(遞職)을 청하면서 관인(官印)을 던졌다 하여 파면되었다. 1886년 광양현감을 거쳐 1887년 함종부사·개천군수로 부임하였다. 1888년 남포현감·내금위장·대부도첨사, 1889년 창성부사·수안군수를 역임하였다. 이후 첨지중추부사와 부호군을 지냈다.
대한제국 개국 후 신태휴는 경무사·농상공부협판·비서원승·중추원의관·법부협판·육군참장·육군법원장·의정부찬정 등을 거쳐 경상북도관찰사·평안북도관찰사를 역임하면서 재판소판사를 겸임하였다. 신태휴는 1907년(순종 원년) 궁내부특진관이 되었고,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양주(楊州)에서 지내다가 1935년 사망하였다.
[묘소]
신태휴의 묘소는 경기도 평택시 청북읍 고렴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