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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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興雲 |
영어공식명칭 | Gim Heung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광년 |
출생 시기/일시 | 1622년 - 김흥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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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82년 - 김흥운 사망 |
묘소|단소 | 김흥운 묘소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여천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성 |
본관 | 나주 |
대표 관직 | 울산부사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무신.
[활동 사항]
김흥운(金興雲)[1622~1682]의 본관은 나주(羅州)이며, 1622년(광해군 14) 청주에서 태어났다. 1644년(인조 22)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장악원주부·제주판관·곤양군수·숙천부사·나주좌수사·울산부사(蔚山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1656년(효종 7)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麟坪大君)[1622~1658]이 사은사로 중국 연경(燕京)에 다녀오며 남긴 일기인 『연도기행(燕途紀行)』 8월 7일 자 기록에 따르면 인평대군이 서흥부(瑞興府)의 익손당(益損堂)에서 하룻밤 묵어갈 때 당시 재령군수이던 김흥운이 서흥부사와 함께 인평대군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김흥운은 1682년(숙종 8) 사망하였다.
[묘소]
김흥운의 묘소는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여천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