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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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忠秀 |
영어공식명칭 | Gwak Chungs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추학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정춘택 |
출생지 | 곽충수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추학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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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청주 |
대표 관직 | 대사성 |
[정의]
고려 후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문신.
[가계]
곽충수(郭忠秀)[?~?]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교서랑 곽운진(雲鎭)이고, 할아버지는 공역서령 곽린(郭麟)이다. 아버지는 판도정랑 곽지태(郭之泰)이고, 어머니는 첨의정승 허유전(許有全)의 딸 김해 허씨(金海 許氏)이다.
[활동 사항]
곽충수는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추학리에서 태어났다. 1341년(충혜왕 후 2) 성균시에 급제하여 한림이 되었다. 고려 후기 충목왕부터 공민왕 대까지 관직을 역임하였다.
1348년(충목왕 4) 헌납 원송수(元松壽)와 함께 찬성사 정천기(鄭天起)가 고신(告身)[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아치의 임명장]이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곧장 정방(政房)에 들어가 인물을 평가하였다고 탄핵하였지만 오히려 충목왕의 노여움을 사 관직을 박탈당하였다.
곽충수는 이후 충정왕[재위 1349~1351] 때 대간을 역임하였고, 1352년(공민왕 1)에는 감찰집의로서 김두(金㺶) 등과 함께 조일신(趙日新)을 탄핵하였다. 1361년 홍건적이 침입하자 왕을 호종하여 복주로 피난하였으며, 이후 관직이 대사성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