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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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天生 |
영어공식명칭 | Gwak Cheonsaeng |
이칭/별칭 | 덕여(德予),긍당(肯堂),곽우태(又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추학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정춘택 |
출생지 | 곽천생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추학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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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청주 |
[정의]
고려 후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학자.
[가계]
곽천생(郭天生)[?~?]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덕여(德予), 호는 긍당(肯堂)이다. 어릴 적 이름은 곽우태(又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감찰대부 곽예(預)이고, 할아버지는 교서랑 곽운진(雲鎭)이다. 아버지는 공역서령 곽린(郭麟)이고, 어머니는 최알(崔謁)의 딸 함열 최씨(咸悅 崔氏)이다. 부인은 임경보(敬輔)의 딸 일직 임씨(一直 任氏)이고, 아들은 곽식(郭軾)이다. 형은 곽지태(郭之泰)이다.
[활동 사항]
곽천생은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추학리에서 태어났다. 1292년(충렬왕 18) 아버지 곽린이 태복윤 김유성(金有成)의 서장관으로 일본에 갔는데, 여몽 연합군의 일본 정벌에 원한을 품은 일본 정부가 사신 일행을 모두 억류한 채 돌려보내지 않았다. 곽린은 결국 일본에서 사망하였고, 곽천생은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이 깊어서 벼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곽린이 일본으로 떠날 때 곽천생에게 남긴 유서 내용이 손자인 곽존중(郭存中)의 묘비명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