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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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之泰 |
영어공식명칭 | Gwak Jita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추학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정춘택 |
출생지 | 곽지태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추학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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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청주 |
대표 관직 | 판도정랑 |
[정의]
고려 후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문신.
[가계]
곽지태(郭之泰)[?~?]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감찰대부 곽예(郭預)이고, 할아버지는 교서랑 곽운진(雲鎭)이다. 아버지는 공역서령 곽린(郭麟)이고, 어머니는 최알(崔謁)의 딸 함열 최씨(咸悅 崔氏)이다. 부인은 첨의정승 허유전(許有全)의 딸 김해 허씨(金海 許氏)이고, 아들은 곽충수(郭忠秀)이다.
[활동 사항]
곽지태는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추학리에서 태어나 문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이 판도정랑에 이르렀다. 1292년(충렬왕 18) 아버지 곽린이 태복윤 김유성(金有成)의 서장관으로 일본에 갔는데, 여몽 연합군의 일본 정벌에 원한을 품은 일본 정부가 사신 일행을 모두 억류한 채 돌려보내지 않았다. 곽린은 결국 일본에서 사망하였고, 곽지태는 아버지를 슬퍼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깊어서 벼슬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곽린이 일본으로 떠날 때 곽지태에게 유서를 남겼다는 내용이 곽존중(郭存中)의 묘비명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