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2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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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文粹 卷一~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운천동 866]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강보승 |
간행 시기/일시 | 1488년 - 『동문수』 권1~10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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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0년 3월 6일 - 『동문수』 권1~10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94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동문수』 권1~10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동문수』 권1~10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
소장처 | 청주고인쇄박물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운천동 866] |
성격 | 고문서 |
저자 | 김종직 |
편자 | 김종직 |
권책 | 10권 3책[목판본]|10권 5책[필사본] |
규격 | 25.5㎝[세로]|17.6㎝[가로]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문선집.
[개설]
조선 전기 문신이자 학자인 김종직(金宗直)[1431~1492]이 편집하여 간행한 문선집으로 신라의 최치원부터 조선 성종 초까지 명사(名士)의 글을 선별하여 수록하였다. 성삼문 등이 편집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한 『동인문보(東人文寶)』를 김종직이 개편·증수하여 간행하였다. 10권 3책 목판본으로 인쇄본은 국립중앙도서관에, 목판은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20년 3월 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9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저자]
김종직은 조선 세조부터 성종 시기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계온(季昷), 호는 점필재(佔畢齋)이다. 아버지 김숙자(金叔滋)는 길재(吉再)의 제자이며, 김종직은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김일손(金馹孫) 등의 스승으로 사림파(士林派)의 사조가 되었다. 사후 6년 뒤 1498년(연산군 4) 제자 김일손이 사초(史草)에 수록한 「조의제문(弔義帝文)」을 빌미로 훈구파가 무오사화(戊午史禍)를 일으켜 김종직은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다. 중종 즉위 후 복권되었고, 1709(숙종 35)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성삼문을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은 신라부터 조선 초까지 명사의 문장을 선별하여 편집하고 『동인문보』라고 이름을 붙였으나 완성하지 못하였다. 성종 대에 와서 김종직이 『동인문보』를 본 후 완성의 필요를 느껴 내용을 증수하고 개편한 후 『동문수(東文粹)』로 개칭하여 간행하였다. 여기에 신종호(申從濩)가 조선 초기 글을 추가하여 1488년(성종 19)에 재편하였다. 신종호는 「동문수발(東文粹跋)」에서 “『동문수』는 예전에 집현전 학자들이 편집하여 비각(秘閣)에 소장한 것을 김종직이 보고 좋게 여겨 완성한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용재총화(慵齋叢話)』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서는 성삼문이 처음 편집한 것을 김종직이 완성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형태/서지]
목판본은 10권 3책이며, 필사본은 10권 5책이다. 크기는 세로 25.5㎝, 가로 17.6㎝이고, 총 512면이다.
[구성/내용]
신라 최치원부터 조선 초 이승소에 이르기까지 29명의 역대 학자, 문인들의 산문을 선별하여 수록하고 있다. 작품을 문체별로 분류하지 않고 작자별 시대순으로 분류하였다. 문체별로는 묘지(墓誌) 4편, 명(銘) 5편, 찬(贊) 6편, 논(論) 8편, 설(說) 15편, 표(表) 2편, 기(記) 21편, 서(書) 5편, 서(序) 38편, 전(傳) 4편, 대(對) 1편, 잡저(雜著) 1편, 문(文) 4편, 부(賦) 5편, 변(辨) 2편, 사(辭) 3편, 장(藏) 2편, 송(頌) 2편, 소(疏) 3편, 지(志) 1편, 전(箋) 1편, 비명(碑銘) 1편, 원(原) 1편 등이다.
[의의와 평가]
16세기 인물인 권응인(權應仁)[?~?]은 『송계만록(松溪漫錄)』에서 “모래를 일어내고 금을 가려내듯 좋은 문장을 정선하여 『동문수』를 편찬하였다”라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성현(成俔)[1439~1504]은 『용재총화』에서 “김종직은 번화한 문장을 싫어하여 온후(醞厚)한 문장만 취하였으므로 규범에는 맞을지라도 메마르고 기세가 없어 볼 만하지 않다”라고 평가하였다. 서거정(徐居正) 등이 엮은 『동문선(東文選)』이 대표적인 관선(官選) 선집(選集)이라면, 『동문선』보다 10년 뒤에 완성된 『동문수』는 사선(私選) 선집으로 『동문선』에 대응하는 성격의 책으로 볼 수 있다. 『동문선』의 편자인 서거정이 다양하고 흥미로운 문장을 선호하는 관료 문인인 데 반하여, 『동문수』의 편자인 김종직이 유교 사상과 역사 의식에 투철한 학자이자 관료인 점에서도 두 책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분량이 많지 않고 수록된 문장이 제한적이지만, 최치원 이후 조선 초까지의 주요 문장을 유학자의 시각에서 정리하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