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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3199
한자 淸州 礪山宋氏 旌閭閣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상로 26[수의동 182]|강상로 27[수의동 177-1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민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95년연표보기 - 청주 여산송씨 정려각 건립
이전 시기/일시 1704년 - 청주 여산송씨 정려각 개건
문화재 지정 일시 2011년 7월 29일연표보기 - 청주 여산송씨 정려각 충청북도 기념물 제151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청주 여산송씨 정려각 충청북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현 소재지 청주 여산송씨 정려각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상로 26[수의동 182]지도보기|강상로 27[수의동 177-10]지도보기
성격 정려
양식 맞배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여산송씨 종중
관리자 여산 송씨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북도 기념물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여산 송씨의 정려각.

[개설]

청주 여산송씨 정려각(淸州 礪山宋氏 旌閭閣)은 충렬각과 2기의 효부각 등 3기이다.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송상현(宋象賢)[1551~1592]과 한금섬(韓金蟾), 이양녀(李良女) 두 부인의 충렬을 기리기 위한 충렬각과 후손 밀양 박씨(密陽 朴氏)와 연일 정씨(延日 鄭氏)의 효부각 등 일문삼려(一門三閭)를 말한다. 송상현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동래부사로 왜군의 투항 요구를 거부한 채 순절하였고, 한금섬은 동래성에 함께 목숨을 잃었다. 이양녀는 왜에 끌려가 끝까지 정절을 지키다 죽었다. 충렬각은 1595년 명정된 후 1704년 청주로 옮겨 고쳐 세웠다. 충렬각 좌우에 각각 효부각 1기씩이 있다. 서쪽 효부각의 주인공 밀양 박씨는 송현기(宋鉉器)[1684~1750]의 부인으로 시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다 남편이 죽자 다음 날 목을 매 죽어 1855년(철종 6) 효열로 명정되었다. 동쪽 효부각의 주인공 연일 정씨는 송명휘(宋明輝)[1757~1793]의 부인으로 시부모에 효를 다하다 병환으로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였고, 상례와 제사도 소홀함이 없어 1841년(헌종 7) 명정되었다. 청주 여산송씨 정려각은 2011년 7월 29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북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위치]

청주 여산송씨 정려각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상로 26[수의동 182]과 강상로 27[수의동 177-10]에 있다.

[변천]

송상현과 두 부인의 충렬각은 1595년 부산 동래읍성 앞에 세웠다가 1704년 청주로 옮겨 왔다. 청주는 송상현의 부인 성주 이씨(星州 李氏)의 고향으로, 1595년 송상현의 묘소도 함께 이장하였다. 후손 밀양 박씨의 효열각은 1855년 세워졌고, 연일 정씨의 효열각은 1841년 세워졌다.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강상마을 입구에 나란히 세워져 있고 나중에 주변을 정비하였다.

[형태]

송상현과 두 부인의 충렬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정려이다. 밀양 박씨와 연일 정씨의 효열각은 사방 1칸의 맞배지붕 정려이다.

[현황]

청주 여산송씨 정려각은 마을 입구에 동쪽부터 연일 정씨 효열각, 송상현 충렬각, 밀양 박씨 효열각 등 3기가 나란히 있다. 밀양 박씨 효열 안쪽에 ‘효열녀(孝烈女) 성균진사 송현기 처 공인 밀양 박씨지려(成均進士 宋鉉器 妻 恭人 密陽 朴氏之閭) 숭정기원후삼을묘 명정(崇禎紀元後三乙卯 命㫌) 손상휘 처 채씨 동이 열행 명 복호(孫尙輝 妻 蔡氏 同以 烈行 命 復戶)’라 쓴 편액을 걸고 뒤쪽에 중수기(重修記)와 정려기(旌閭記) 현판이 있다. 석축 기단 위에 세운 충렬각은 동쪽부터 ‘충신(忠臣) 통정대부 행동래부사동래진병마첨절제사(通政大夫 行東萊府使東萊鎭兵馬僉節制使) 증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지경연사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지춘추관성균관사(贈崇政大夫 議政府左贊成 兼 判義禁府事 知經筵事 弘文館大提學 藝文館大提學 知春秋館成均館事) 시충렬공 송상현지려(諡忠烈公 宋象賢之閭) 만력이십삼년을미 명정(萬曆二十三年乙未 命㫌) 숭정칠십칠년갑신 개립(崇禎七十七年甲申 改立)’ 이라 쓴 편액과 중수기 현판을 걸었다. 다음 칸에 ‘열녀(烈女) 한소사금섬지려(韓召史金蟾之閭) 숭정칠십칠년갑신오월일 명정’이라 쓴 편액과 중수기 현판, 가장 서쪽 칸에 ‘열녀 이소사지려(李召史之閭) 숭정칠십칠년갑신오월일 명정’이라 쓴 편액을 걸었다.

[의의와 평가]

청주 여산송씨 정려각은 충효열을 바탕으로 청주 지역에서 차지하는 여산 송씨의 위상을 대표하는 유산이다. 송상현의 순절은 선조의 의심과 명군의 참전을 이끈 계기가 되었고, 더불어 죽은 두 여인의 순절과 절개도 추앙받았다. 밀양 박씨와 연일 정씨는 강상의 도리를 다한 시대적 표상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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