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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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 壤城山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미천리 산44-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양시은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2년 8월 16일 - 청주 양성산성 충청북도 기념물 제125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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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3년 6월 6일~2003년 8월 22일 - 청주 양성산성 발굴 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청주 양성산성 충청북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청주 양성산성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미천리 산44-1 |
성격 | 관방 |
양식 | 석축산성 |
크기(높이,길이,둘레) | 1,030m[둘레]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북도 기념물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미천리의 양성산에 있는 삼국 시대 석축 산성.
[개설]
청주 양성산성(淸州 壤城山城)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에 있는 양성산[높이 297m]과 주변 봉우리를 둘러싸고 축조한 둘레 1㎞ 내외의 전형적인 신라의 석축 산성이다. 성벽과 문지, 집수 시설, 수구, 건물지 등이 있다. 성내 원형 집수 시설에 대한 발굴 조사에서 신라 시대부터 통일 신라 및 고려 전기로 편년되는 토기와 기와가 출토되었다. 문헌 기록을 통하여 신라 일모성(一牟城)으로 비정된다. 2002년 8월 16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2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북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건립 경위]
『삼국사기』에는 신라 자비마립간 17년(474) 일모(一牟)를 비롯한 6개의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문의현에 양성산성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문의현은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에는 연산군이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일모산군(一牟山郡)을 신라의 경덕왕이 연산군으로 개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위치]
청주 양성산성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미천리 산44-1에 있다. 금강 본류의 북쪽 연안으로, 동쪽에는 남천(南川)이 흐르고 서쪽에는 낮은 구릉성 산맥이 남북으로 지나간다. 금강의 상류 지역에서 하류로 내려가거나 한반도의 동남쪽과 서남쪽에서 청주를 거쳐 북상할 때 통과하여야 하는 주요한 교통로를 통제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형태]
청주 양성산성은 높이 297m의 양성산 정상부와 인근의 두 봉우리 그리고 동쪽 및 북쪽 계곡의 상단부를 둘러싸고 성벽을 쌓은 관계로, 평면 형태는 남동쪽이 길게 튀어나온 부정형이다. 산성은 둘레 1㎞가량 되는 신라의 석축산성이다. 성벽과 문지[남문지, 동문지], 집수 시설, 수구, 차단벽 및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석축 성벽은 지형과 경사면에 따라 축조 방법을 달리하였는데, 계곡부와 편평한 곳은 내외겹축[협축, 양면쌓기]으로, 경사면은 내탁[단면쌓기]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또한 기초부에는 성벽을 덧대어 체성벽을 지지하는 보축 성벽도 확인되며, 체성벽에는 들여쌓기를 한 것과 아닌 부분이 모두 확인된다. 성 내부 집수지는 지름 23m인 대형의 원형 석축 시설로, 3차례 개축이 이루어졌음이 발굴 조사를 통하여 밝혀졌다. 집수지 외측에는 수로와 토사의 유입을 막는 보호 석축 시설이 확인되었고, 집수 시설은 생토면을 굴착하여 조성하였는데, 내측은 계단식으로, 외측은 얇은 판석으로 5층의 기단을 만든 다음 위로는 약간 들여쌓기를 하였다.
[현황]
청주 양성산성은 2003년 6월 6일부터 2003년 8월 22일까지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청주 양성산성에서는 신라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의 토기와 기와, 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에 해당하는 토기, 기와, 자기 등이 확인되어 신라가 처음 축조하여 고려 전기까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청주 양성산성은 신라 석축산성의 전형적인 특징이 잘 남아 있어 신라의 일모성으로 비정된다. 고려 전기에도 태조가 직접 후백제 세력과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삼국 시대뿐만 아니라 고려 전기까지도 군사적으로 중요한 산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