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1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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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 錦城大君 祭壇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대신리 산4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민식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426년 - 금성대군 이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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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457년 - 금성대군 이유 사망 |
조성 시기/일시 | 1738년 - 청주 금성대군 제단 건립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5년 8월 12일 - 청주 금성대군 제단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49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청주 금성대군 제단 충청북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청주 금성대군 제단 충청북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
현 소재지 | 청주 금성대군 제단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대신리 산49 |
성격 | 능묘 |
관련 인물 | 이유 |
봉분 크기/묘역 면적 | 400㎡ |
소유자 | 전주 이씨 금성대군파 종중 |
관리자 | 전주 이씨 금성대군파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북도 문화유산자료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대신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제단.
[개설]
청주 금성대군 제단(淸州 錦城大君 祭壇)은 단종 복위 운동으로 사사된 금성대군 이유(李瑜)[1426~1457]의 제단(祭壇)이다. 금성대군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서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큰형이 제5대 문종으로 즉위하고 2년 2개월 만에 조카 단종에게 왕위가 계승되었으나 둘째 형 수양대군이 왕위를 차지하자 1455년(세조 원년) 배척되어 삭녕과 광주로 유배되었다가, 1456년 단종 복위 계획이 누설되어 다시 경상도 순흥으로 옮겨졌다. 이때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과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 발각되어 1457년 10월 처형되었다. 이후 1528년(중종 23) 신원되었다. 청주 금성대군 제단은 2005년 8월 12일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4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북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북도 문화유산자료로 바뀌었다.
[위치]
청주 금성대군 제단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대신리 산49에 있다.
[변천]
금성대군은 1457년 10월 처형된 후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여 순흥과 청주에 단을 쌓아 제향하고 있다. 1520년(중종 15) 증손 이의(李義)가 억울함을 호소하여 금성대군과 후손의 봉작호가 복원되었다. 1719년(숙종 45) 순흥에 단을 세워 제향하기 시작하였고, 1738년(영조 14) 10세손 이진수(李震秀)가 억울함을 상소하니 왕이 부인 전주 최씨(全州 崔氏) 묘소 옆에 제단을 쌓고 제향하게 하였다. 1739년(영조 15) ‘정민(貞愍)’이라 증시되고, 1740년 청안에 향사를 세웠다.
[형태]
청주 금성대군 제단은 높은 계체석을 쌓아 네모꼴 제단과 부인 전주 최씨 원형분을 나란히 두고 한쪽에 묘비를 세웠다. 계체석 앞으로 상석과 향로석이 있고 앞쪽에 망주석 한 쌍과 문인석 두 쌍을 세웠다. 중앙에 장명등이 있다. 청주 금성대군 제단은 사각분의 형태이다. 잘 다듬은 돌로 주위를 쌓고 흙을 덮어 봉분을 올렸으며 앞쪽에 묘표를 세웠다. 전주 최씨의 묘소는 원형 호석을 두르고 앞쪽에 묘표를 세웠다. 묘소 입구에는 1944년 민명승(閔丙承)[1866~1947]이 지은 신도비를 세웠다.
[금석문]
청주 금성대군 제단 묘표 앞면에 ‘유명조선국금성대군시정민이공지단(有明朝鮮國錦城大君諡貞愍李公之壇) 숭정사임오맹동일입석(崇禎四壬午孟冬日立石)’이라 하였다. 단비는 1822년(순조 22) 10월 세웠다. 또 부인 봉분 쪽에 지붕 모양 덮개돌을 갖춘 묘표가 있는데, 앞면에 ‘금성대군흥록대부정민공신단(錦城大君興祿大夫貞愍公神壇) 완산부부인전주최씨지묘(完山府夫人全州崔氏之墓)’라 하였다.
[현황]
청주 금성대군 제단은 후손들의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져 왔다. 금성대군은 청주 죽계사(竹溪祠)와 청안[증평] 사우에 제향되고 있으며, 영월, 순흥 등에서 따로 제향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금성대군은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인물로, 부인 전주 최씨가 친정인 청주로 돌아오면서 전주 이씨 금성대군파의 세거가 시작되었다. 청주 금성대군 제단은 시신 없는 제단이나 후손들의 제향이 이어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의 제단 형태를 보여 주는 자료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