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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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心寺 靈山會 掛佛幀 |
영어공식명칭 | Buddhist Painting of Ansim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사동길 169-28[사동리 27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서지민 |
제작 시기/일시 | 1652년 -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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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78년 10월 27일 -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 지정 |
문화재 해지 일시 | 1997년 9월 22일 -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 지정 해제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7년 9월 22일 -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 국보 제197호로 승격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 국보로 변경 지정 |
현 소장처 | 안심사 -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사동길 169-28[사동리 271] |
성격 | 불화|괘불탱 |
작가 | 신겸(信謙)|덕희(德熙)|지언(智彦)|진성(眞性)|신율(信律)|삼인(三印)|경원(敬元)|명계(明戒)|혜월(惠月) |
서체/기법 | 삼베바탕에 채색 |
소유자 | 안심사 |
관리자 | 안심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보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사동리 안심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괘불도.
[개설]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에서 사용하는 예배용 대형 불화를 괘불이라 한다. 괘불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은 항마촉지인의 석가불좌상이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영산회를 표현한 것으로, 1652년(효종 3)에 신겸(信謙), 덕희(德熙), 지언(智彦), 진성(眞性), 신율(信律), 삼인(三印), 경원(敬元), 명계(明戒), 혜월(惠月) 등 9명의 승려가 그렸다.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은 1978년 10월 27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었다. 1997년 9월 22일 국보 제297호로 승격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국보로 변경되었다.
[형태 및 구성]
화면 중앙의 석가모니불은 보개를 갖춘 낮은 사각 연화 대좌에 결가부좌하였고,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편단우견의 법의를 걸쳤다. 그리고 반원형의 옷자락이 대좌 앞으로 늘어져 있다. 둥근 얼굴은 근엄하며, 넓은 어깨와 팔·손 등에 부피감이 느껴진다. 수인은 왼손은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내려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협시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석가모니불의 좌대 앞쪽에 나란히 서 있다. 협시보살 좌우에는 사천왕이 배치되고, 그 위로 범천과 제석천이 석가모니불을 바라보며 서 있다. 또 석가모니 주위를 제자들, 용왕과 용녀, 팔부신중, 타방불이 대칭을 이루면서 에워싸고 군도를 이루고 있다. 부처와 보살의 신체에는 금채를 대신하여 황색을 사용하였고, 붉은색과 녹색 위주로 황색·감색·흰색이 사용되었다. 제자의 안면에 요철을 나타내기 위하여 채색한 수법이 특징적이다.
[특징]
‘순치구년임진사월일안심사괘불탱(順治九年壬辰四月日安心寺掛佛幀)’이라는 화기의 내용을 통해 1652년(효종 3)에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삼베 바탕에 채색하여 그린 것으로, 크기는 가로 486.5㎝, 세로 741㎝이다.
[의의와 평가]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은 보살사 영산회 괘불탱[보물]과 함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의 대표적인 괘불탱으로서, 불교 회화사에서 주요한 화승으로 손꼽히는 신겸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수화사인 신겸과 덕희, 경윤은 1649년 청주 보살사 영산회 괘불탱 제작에도 참여한 바 있어 당시 충청북도 청주 지역 불화를 연구하는 데도 중요하다. 1652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어서 17세기 중엽의 특징이 반영된 기준작으로 불교 회화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의 가치와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