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051 |
---|---|
영어공식명칭 | Solmyeong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신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근용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신대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솔명이는 ‘송망리(松望里)’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송망리는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 처음 언급되었는데, 『여지도서』 기록에 의하면 송망리는 강내이면(江內二面) 지역으로, 청주 관문에서 북쪽으로 30리 떨어져 있으며, 호수는 11호이고 남자 16명, 여자가 18명이 있었다. 또한 『부안임씨세보(扶安林氏世譜)』에서는 임선회의 아들 임완정(林完延)[1680~1733]에 대하여 ‘묘 청주내 송망동후 건좌쌍봉 유상석(墓 淸州內 松望洞後 乾坐雙封 有床石)’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임완정의 묘소는 현재 마을 뒷산에 있다. 즉, 솔명이는 예전에 송망리 또는 송망동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안임씨세보』는 임명조(林命神)의 세 아들 중 임노훈(林魯訓)[1867년 생]·임노기(淋魯基)[1870년 생]까지만 실려 있고, 임노근(淋魯根)[1876년 생]은 실려 있지 않음을 고려할 때, 1870~1876년 사이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당시까지 솔명이는 송망리로 불렸고, 간혹 송망동으로도 불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송망리에서 ‘송(松)’은 고유어 ‘솔’로 바뀌고 ‘망(望)’은 한자어로 남았으며, ‘리(里)’는 ‘이’로 바뀌어 ‘솔망이’가 된 다음, 다시 ‘망’이 ‘명’으로 변하여 ‘솔명이’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임완정의 묘가 있는 마을 뒷산에는 1945년 8·15해방 직후만 하여도 둘레가 몇 아름 되는 소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고 한다. ‘송망리’란 마을 이름이 생겼을 당시에도 이미 정자를 이룰 만큼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송망리는 송정리(松亭里)와 거의 같은 뜻으로 ‘소나무 정자에서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마을’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자연환경]
솔명이는 논으로 이용되는 평야 지대에 있다.
[현황]
솔명이는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신대리의 신대2구에 해당하며 바깥솔명이와 안솔명이로 구분할 수 있다. 산지 당산으로부터 서쪽으로 뻗어 내린 산등성이를 기준으로 안솔명이와 바깥솔명이로 구분한다. 한자로는 ‘송현(松晚)’이라 쓰는데 송현은 안솔명이만을 지칭하거나, 바깥솔명이만을 지칭하거나, 둘을 묶어 지칭하거나 모든 경우에 사용된다. 바깥솔명이는 안솔명이 남쪽, 산지 당산 남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