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3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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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민식 |
[정의]
충청북도 청주 지역의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신하.
[개설]
전통 시대 충(忠)·효(孝)·열(烈)은 왕조를 유지하기 위한 절대적인 덕목이었다. 조정에서는 이를 적극 권장하고 해당 인물에 대하여서는 포상이 뒤따랐다. 효와 열은 가문의 유지와 현창에 대응하였으며, 충은 안팎의 위기로부터 나라와 왕실을 지킨 바탕이었다. 조선 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뿐 아니라 청주는 이인좌의 난을 거치며 순절과 의병 활동으로 포상된 경우가 많아서 지리지와 읍지에 많은 충신이 수록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신 조]
『여지도서』 청주목 충신 조에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병자호란 때 순절한 청주 지역의 인물들이 수록되어 있다.
나사종(羅嗣宗)[1440~1491]은 1491년(성종 22) 여진족에 맞서 싸우다 순절하여 벼슬과 정려가 내려졌고 충신문이 건립되었다. 김선복(金善復)은 임진왜란 때 금산에서 순절하여 충신문[문의문화재단지 이전]이 전하며, 박우현(朴佑賢)은 청주성 전투에서 전사하여 복호되었다. 박춘란(朴春蘭)·박춘련(朴春蓮) 형제는 부모와 형 부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왜군 두 명을 죽여 벼슬이 내려졌다. 정응구(鄭譍龜)는 왜군 장수의 목을 베어 바쳐 정려가 내려졌다. 김시약(金時若)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1627년 정묘호란 때 사로잡혀 절개를 굽히지 않고 죽어 증직되고 정려가 내려졌다.
지여해(池汝海)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적을 막다가 순절하여 관직이 제수되고 복호되었으며 충신문이 전한다. 송시영(宋時榮)[1588~1637]은 강화도가 함락되자 순절하여 시호가 내려지고 부조묘가 전한다. 김언(金琂)은 적을 막다가 순절하여 정려가 내려졌다. 이건(李健)은 남한산성 밖 험천(險川)에서 순절하여 벼슬이 내려졌다. 오대남(吳大男)은 병자호란 때 순절하여 정려되었다.
이 밖에 효자 조의 연최적(延最績)[1663~1693]은 효행과 더불어 인현왕후를 구하려다 장살되어 충신 정려가 내려졌고, 열녀 조의 김씨(金氏)는 시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남한산성에서 순절한 남편 강득룡(姜得龍)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를 치러 정려되고 부부 충렬문이 남아 있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충신 조]
1931년 간행된 『조선환여승람』에는 『여지도서』에 수록된 충신을 포함하여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는 인물들을 수록하였다. 『조선환여승람』 청주군 충신 조에는 임진왜란·병자호란에 더하여 사화(士禍)와 1728년 이인좌의 난 때 순절한 인물 다수를 수록하였다.
고려 때 안조동(安祖同)은 우왕을 위하여 순절하였다. 한충(韓忠)은 신사무옥으로 억울하게 죽어 벼슬과 시호가 내려지고, 신항서원에 배향되었다. 유인숙(柳仁淑)은 1545년(인종 1) 무고로 네 아들과 함께 억울한 죽임을 당하여 복권되고 벼슬과 시호가 내려졌다. 송인수(宋麟壽)[1499~1547]는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죽임을 당하여 벼슬과 시호가 내려졌다. 송상현(宋象賢)[1551~1592]은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로 순절하여 벼슬과 시호, 정려가 내려졌다. 이경욱(李慶郁)은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박동명(朴東命)·최흥허(崔應虛)·경지연(慶之衍)·최난선(崔蘭善)은 병자호란 때 순절하여 벼슬과 정려가 내려졌다. 오서종(吳瑞鍾)은 신임사화 때 장살되었다가 증직되었다. 이봉상(李鳳祥)·남연년(南延年)·홍림(洪霖)·김상남(金尙男)·김한정(金漢廷)은 이인좌의 난 때 순절하여 벼슬과 시호, 정려가 내려졌다.
[현존 충신문]
현재 나사종·김선복·송상현·김시약·지여해·박동명·오대남·이봉상·남연년·김상남·김한정의 충신문과 연최적 충효양전문, 강득룡부부 충렬각이 청주 지역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