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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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俗談 |
영어음역 | sokdam |
영어의미역 | proverb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언어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식 |
[정의]
옛말, 오랜 생활 과정에서 얻어진 경험과 지혜를 간결하고도 비유적으로 형상적인 언어 형식으로 표현한 구비단문의 한 형태.
[속담의 유형]
속담은 표현과 기능에 따라 격언(格言)과 이언(俚諺)으로 나눌 수 있다. 격언은 사회·역사적인 경험이 정식화된 것으로서 실천적인 규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격언은 그 자체로서 완전한 문장을 이루고 있으며 대개 교훈적인 내용을 주제로 삼고 있다. 격언은 서술문, 명령문, 의문문 등으로 표현된다. “시작이 반이다.”, “아는 길도 물어가라.”, “공든 탑이 무너지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청주지역의 속담에서 격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방아다리에 가서 방아 찧는 소리 마라”가 있다. 지명의 역사·문화적 사실을 통해 ‘자숙하라’는 실천적인 규범과 교훈을 지역민에게 제시하고 있다.
이언은 주로 현실을 비유하는 데 사용될 뿐 교훈적인 내용은 담고 있지 않다. 이언은 대체로 사물이나 현상의 실태나 본질, 또는 직접적인 형상을 짧은 언어 형태로서 비유하고 형용하기 때문에 불완전한 문장으로 표현된다. “옷이 날개.”, “그림의 떡.”, “약방에 감초.”, “개밥에 도토리”, “벙어리 냉가슴 앓듯”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청주지역의 속담에서 이언에 해당하는 것으로써 “안덕벌 떼과부”가 있다. 실제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고달픈 과부의 삶’이라는 어떤 현상의 본질이나 상태 또는 특징을 서민적인 감각에 의해 생동감 있게 비유하고 있다.
[속담의 특성]
속담은 현실을 묘사하는 방식과 기능, 그리고 역할에서 다른 구비문학 장르와 변별되는 특성이 있다. 속담은 설화, 민요, 무가, 판소리, 민속극 등과 달리 일상적인 언어 생활의 한 부분으로써 창조되고 전승되는데, 그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속담은 장구한 역사적 삶을 통해 획득한 어떤 경험이나 교훈 또는 사상적 지향 등을 집약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생활의 오랜 체험에서 생겨나고 거듭된 체험에 의해서 획득한 진리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인정하게 되고 또 그 가치를 시인하게 된다.
둘째, 속담은 순간적 판단에 의해 사용되고 순간적 판단에 따라 받아들여지지만, 촌철살인(寸鐵殺人)할 수 있는 날카로움이 있다. 몇 개의 단어가 결합된 형태의 짧은 말로서 깊고 넓은 의미를 압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속담은 일상적인 삶의 과정에서 전승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그리고 사회적 소산으로서 뚜렷한 창작자가 없다. 그저 일상적인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여 자연스럽게 전승된다.
넷째, 속담은 영구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한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 추이에 따라 효용 가치가 퇴색할 수도 있고, 또 새로이 부각될 수도 있다. “안덕벌 떼과부” 등이 그것이다.
[전승 내력]
삼국시대의 속담은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온달전(溫達傳)」에 “한 말의 곡식도 찧어서 함께 먹을 수 있고 한 자의 베도 기워서 같이 입을 수 있다.”라는 속담은 가난한 생활 속에서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나가는 과정에서 체험한 생활의 교훈이 담겨있다. 그리고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수로부인전」에 “뭇 사람의 말은 쇠까지 녹일 수 있다.”는 속담은 대중의 말이 씨가 되고 힘이 된다는 일종의 주술성을 보여주는 속담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삼국 당시에 전했던 속담들은 대개가 일상 생활의 체험과 거기에서 획득한 어떤 교훈이나 진리 등을 담고 있다.
통일신라 및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속담은 더욱 활발하게 창조되었으며, 주제도 매우 다양해졌다. 예컨대 발해사람들이 창조한 “발해사람 셋이면 범 한 마리를 당한다.”라든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통일신라의 속담 “내일 바빠 한댁 방아.”라든가, 『위앙전에 대한 평론』에서 인용한 고려시대의 속담 “원수의 말을 어찌 믿으랴.”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자료를 통해 당대 사회의 역사·문화적 현상 등을 추적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역사적으로 전승되어 왔던 속담들을 정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현존하는 자료의 실정에서 성현(成俔)[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를 속담 정리본의 가장 고형으로 볼 수 있다. 성현은 이 책에서 같은 의미를 가진 속담들을 한데 묶어서 소개하고 있다. “하루 내내 걱정거리는 이른 아침에 먹은 술이요, 일년 내내 걱정거리는 발에 맞지 않는 신이요, 일생 내내 걱정거리는 성질 사나운 아내라.”고 하였고, “세상에 쓸모 없는 것은 배부른 돌담, 수다한 아이, 손큰 아낙네.”라고 하면서 “말은 비록 상스러우나 역시 격언이다.”라고 하였다. 성현의 뒤를 이어서는 어숙권[?~?]의 『패관잡기(稗官雜記)』에서, 홍만종[1643~1725]의 『순오지(旬五志)』에서, 이덕무[1741~1793]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속담의 정리가 속속 이루어졌다.
이후 속담의 수집 및 정리는 정약용[1762~1836]에 의해서 크게 진전되었다. 정약용은 당대 서민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속담을 수집·정리하였고, 이를 『이담속찬(耳談續纂)』으로 편찬하였다. 이 자료에 210여 편의 속담을 싣고 있는데, “농사꾼은 굶어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 “말 잃고 외양간 고친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내 배 부르면 종이 배고픈 줄 모른다.”, “사흘 굶어 도적질 안 하는 놈 없다.”, “지렁이도 디디면 꿈틀한다.” 등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승되고 있는 자료들이 많다. 『청주읍지(淸州邑誌)』의 “청주 추동 곽씨(郭氏)네 살이”처럼 검소성을 강조한 말도 보인다. 이들 속에 통시적으로 청주의 속담을 제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현황]
근래에 편찬된 『속담사전』에는 약 10,000여 수에 가까운 속담이 수록되어 있다. 한국의 속담이 얼마나 풍부한지를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청주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속담은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한국 속담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충청도 양반”, “자린고비”, “양반은 짚불 쬐지 않는다.”, “선비는 개헤엄 치는 법이 아니다.” 등을 많이 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몇몇 속담은 청주지역 고유의 역사 및 문화를 배경으로 형성하여 전승되고 있다. 이런 옛말 속에 청풍명월의 인성 탓으로 여유와 품격을 통해 적당히 즐기는 백약지장(百藥之長)의 멋이 들어 있다.
첫째, “안덕벌 떼과부.”라는 속담이 전승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한봉현(남, 1903년 출생,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의 제보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전쟁 때 보도연맹 사건 때 이 동네 약 40여 명 장정이 죽거나 북한으로 끌려갔어. 그래 과부가 많이 생겨서 인근에서 애기 들쳐업고 두부장사 하는 여자들을 그렇게 불렀어.” 제보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안덕벌의 남성들이 보도연맹 사건에 연루되어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었고, 이후 여성들은 생계를 위해 더한 역경을 헤쳐야 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고달픈 과부의 삶’ 또는 ‘역경을 헤쳐나가는 억척 여성’을 비유하는 말로서 “안덕벌 떼과부”라는 속담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여주 이천 사람들이 청주 사람들보다 먼저 죽는다.”는 속담이 전승되고 있다. 이에 대한 이원길(남, 1917년 출생, 청주시 상당구 정상동)의 제보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난리통에 여주, 이천 사람들이 우암산(牛岩山)[338m] 인근의 산골로 피난을 왔었는데, 여주나 이천은 원래부터 땅이 좋아서 농사가 잘 되니께 배불리 잘 살았던 부자 동네 사람들이었어. 평소 어디 굶어 보기를 했겠어. 그러니께 난리통에 배고파서 청주 사람들보다 먼저 굶어 죽는다 그런 말을 했지.” 제보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우암산(牛岩山)[338m]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피폐했던 삶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속담으로 상정하기에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지역의 생활 체험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써 속담의 언어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데에서 속담으로서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셋째, “방아다리에 가서 방아 찧는 소리 마라!”는 속담이 전승되고 있다. 잘 아는 곳에 가서 까불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한 정연승(남, 1958년 출생,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 거주)의 제보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잘난 척 하는 사람들한테 빗대어서 ‘방아다리에 가서 방아 찧는 소리 마라’고 하셨어요. 방아다리 쪽에 방앗간이 많았대요. 청주대를 설립한 분도 이 곳에서 큰 방앗간을 했었다고 하잖아요. 뭐 그래서 생긴 말 같기는 한데…….” 제보를 통해 지명의 유래나 지역의 생업활동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지역의 고유성과 ‘입방아 찧지 마라’는 언어전승이 적절하게 결합하여 인간의 그릇된 본성을 경계하고 있다고 하겠다.
청주지역 속담은 옛말인 속담 자체가 그러하듯이 지역성을 담지한 것이 뚜렷하게 있지 않다. 다만 흔히 쓰는 속담에 충주 사람들의 기질이 배어 있다. 충주 말씨처럼 충청도 양반 이미지 곧 직설적인 어투보다 속담의 비유적 입심을 통해 아량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