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867
한자 金士廉
영어음역 Kim Saryeom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이병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본관 안동(安東)
출신지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평장사(平章事) 김방경(金方慶)의 손자이다. 지금의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출신이다.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문장에 능하였으며, 공민왕 초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안렴사(按廉使)에 이르렀다.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1328~1396]과 친교가 두터웠으며 함께 직간(直諫)으로 이름이 높았다.

1365년(공민왕 14) 왕이 신돈(辛旽)을 총애하여 신돈에게 벽상삼한삼중대광 집현전대학사를 더하고 공신의 호를 내리자, 김사렴은 그가 고려의 사직을 위태롭게 할 인물이라고 탄핵하였다. 조야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 김사렴이 홀로 탄핵을 한 것이다.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하자 충신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 하여 청주에 은거하였다. 태조(太祖)가 수차례에 걸쳐 불렀으나 거절하고 도산(陶山)으로 옮겨 두문불출하였다.

죽음에 임하여 “고려의 구신이 고려와 함께 순국하지 못하였으니 무슨 면목으로 죽어 선왕과 선인들을 대하리오. 내가 죽거든 심산에 묻고 봉분을 하지 말고 평무덤으로 하라”고 유언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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