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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804
한자 淸州井北洞土城
영어음역 Cheongju Jeongbuk-dong Toseong
영어의미역 Mud Rampart in Jeongbuk-d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북동 351-3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이양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9년 10월 28일연표보기 - 청주 정북동 토성 사적 제415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청주 정북동 토성 사적 재지정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건립시기/연도 삼국시대
둘레 655~689m
높이 3.4m
길이 675.5m
너비 8~13m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북동에 있는 삼국시대 성지.

[건립경위]

청주 정북동 토성미호천변 평야의 중심에 자리한 평지형 토성이다. 정확한 축조연대를 알 수 없으나, 다만 1744년(영조 20)에 상당산성의 승장으로 있던 영휴(靈休)가 쓴 『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신라 말에 궁예(弓裔)양길(梁吉)의 부하로 있다가 군사를 나누어 동쪽을 공략할 때에 지금의 상당산성을 쌓고 근거지로 삼았다. 후에 후백제의 견훤(甄萱)궁예상당산성을 빼앗고 작강, 즉 까치내 옆에 토성을 쌓고 창고를 지어 부세(賦稅)를 거두어 쌓아 두었다가 상당산성 안으로 운반해 들였다. 이러한 이유로 후세 사람들이 시로 읊기를 들판의 토성은 백제 때를 지나오고, 암자의 금부처는 삼한(三韓) 때를 거쳤다고 하였다.”

이로써 청주 정북동 토성이 후삼국의 항쟁기인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하였으나, 평지에 축조된 방형 토성이라는 사실과 돌화살촉과 돌창, 돌칼 등의 출토유물로 보아 삼국시대의 전·중기에 축성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발굴/조사경위]

1996~1997년 충북대학교 호서문화연구소에서 서쪽 성벽 일부와 서문터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1999년에는 성내 동반부와 남반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성벽의 벽체부분은 안팎으로 나무기둥을 세워서 내부를 다지는 공법이 채택되고, 기단을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벽체의 안팎에 다시 기둥을 세워 축조한 방식을 취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서문터는 굴립주에 의한 문이 있었다가 후대에 냇돌적심을 이용한 초석 기둥으로 대체되었다. 그 외에도 성안에서 주거유구, 기둥구덩유구, 길 유구, 냇돌무더기 유구 등이 확인되고, 성외 동남부 및 남문 바깥에서 해자가 확인되었다.

[위치]

상당구 미호천변 평야 팔결들의 남쪽에 치우쳐 있다.

[형태]

청주 정북동 토성은 남북이 약간 긴 사각형이며, 성안의 중심부에 동서로 가로질러 농로가 있다. 이 농로의 북쪽은 20여호의 민가가 있고, 남쪽은 경작지로 되어 있다. 성벽은 단면이 사다리꼴로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으며, 4곳 모서리 부분은 약간 높고 바깥으로 돌출되어 치성 또는 각루의 시설이 있었던 듯하다.

4면 성벽의 중간쯤에는 문터로 보이는 절단부가 있으며, 이들 가운데 동·서·북의 것은 지금도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남문터와 북문터는 좌우의 성벽이 엇갈리게 축조된 독특한 형태로서 옹성(甕城)의 초기 형식으로 주목된다.

배수문제는 서쪽이 약간 높은 지세에 따라 서문으로 물의 유입을 막고, 성안의 물을 동쪽으로 흘려 동문으로 배수시켰다. 성안에서 빠져나간 물은 성밖을 둘러싼 해자(垓字)로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의 높이는 3.5m~5.5m, 성벽의 윗부분 폭은 2m, 성벽의 밑 부분은 11.9m이다. 성벽의 길이는 동벽 185.5m, 서벽 165m, 남벽 155m, 북벽 170m로 전체 675.5m이다.

[현황]

1990년 12월 14일 충청북도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되었다가 1999년 10월 28일 사적 415호로 승격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청주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현존 유구의 상태가 가장 완전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토성의 구조나 출토 유물 등으로 미루어 한국 초기의 토성 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영문본문]

This is a mud castle on the plain around Mihocheon River. Its exact built date is unknown but we could assume that the mud castle was built between the late 9th Century and the early 10th Century, when Three Dynasties fought each other, based on the records from Sangdangsanseonggogeumsajeokgi or the History of Sangdang Mountain Castle saying Gyeonhwon built a mud castle, believed to be Jeongbukdong Mountain Castle, here after he took Sangdang Mountain Castle built and used as the capital by Gungye. However it could be older than assumed, considering its location, the excavations from the site and its excavated facilities very similar to those found from the older castles. The castle is 675m long, 3.5m tall and 8 to 13m wide. On the castle site the old habitats, the holes for the poles, the roads and the pile of stone have been excavated, and on the outside of the castle the partial traces of a moat have been found. With its structure and excavated vestiges, the mud castle has given a quite valuable clue for the research on the fortification of the ancient Korea.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5.04.15 항목명 수정 정북동토성->청주 정북동 토성(201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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