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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764
한자 伊昕巖
영어음역 Yi Heunam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태봉
집필자 이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미상
몰년 918년연표보기
아내 환씨(桓氏)

[정의]

태봉~고려 초의 무신.

[활동사항]

일찍이 궁예(弓裔)를 섬겨 은밀한 일을 탐지해 바치는 것으로 신임을 얻음으로써 무관에 등용되었다. 궁예 말년에 이르러 웅주(熊州)를 습격해 빼앗았으므로 그대로 그곳을 지키게 하였는데,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즉위한 소식을 듣고 몰래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 부르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 떠나오니, 그 수하의 병사들이 대부분이 도망해 버리게 되어 웅주는 다시 후백제의 영토가 되었다.

한찬(韓粲) 수의형대령(守義刑臺令) 염장이 이흔암과 서로 이웃에 있다가 그 음모를 알고 태조에게 상세히 보고하였으나, 태조는 “이흔암이 지키는 땅을 버리고 제 마음대로 와서 변방(邊方)의 강토를 잃었으니 그 죄는 실로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나와 함께 전 왕을 섬겼으며, 평소의 정분도 있어 죽일 수는 없으며, 또 아직은 반역한 행적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반드시 변명할 핑계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염장이 은밀히 사람을 보내서 그 동정을 살필 것을 청하였으므로 태조가 나인(內人)을 염장의 집으로 보내어 장막 속에서 동정을 살피게 하였는데, 이흔암의 처 환씨(桓氏)가 뒷간에 갔다가 그곳에 사람이 없을 줄로 알고 탄식하면서 “우리 남편의 일이 만약 성공하지 못하면 나도 화를 당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이 말을 듣고 나인이 사실대로 왕께 아뢰었으므로 흔암을 옥에 가두니 자백을 하므로 백관들로 하여금 그 죄를 의논하게 하였다.

모두가 “죽여야 한다”라고 말을 하였으므로, 태조가 친히 이흔암을 꾸짖어 이르기를 “네가 평소부터 흉한 마음을 품고 있다가 네 스스로 죽을죄에 빠졌구나. 국법이란 천하에 공정한 것이므로 사정으로써 법을 굽힐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이흔암은 그저 눈물만 흘리었다. 이 일로 인하여 918년(태조 원년) 6월 기사일에 반역을 도모한 죄로 저자(市)에서 죽음을 당하고 가산은 몰수되었다.

[의의와 평가]

이흔암은 어려서부터 무예에 뛰어나 활을 잘 쏘고, 말을 잘 탔기 때문에 무관으로서 높은 지위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다른 재주나 식견이 없이 이득을 밝히고 직위에 욕심을 부려 반역을 꾀하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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