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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749
한자 尹暉
영어음역 Yun Hwi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규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1571년연표보기
몰년 1644년연표보기
본관 해평(海坪)
정춘(靜春)
장주(長洲)|천상(川上)
아버지 윤두수(尹斗壽)
시호 장익(章翼)
추증/추서 영의정(領議政)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해평(海坪)이고, 자는 정춘(靜春)이며, 호는 장주(長洲)·천상(川上)이다. 영의정 윤두수(尹斗壽)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589(선조 22)에 진사가 되고, 1594년 별시문과에 문과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이 되었다가 1596년 병조좌랑을 거쳐 이듬해 병조정랑이 되고 이어 사서·장령·필선·사간 등을 거쳐, 전라도와 경상도 관찰사로 나가 치적(治積)을 올렸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에 관련, 벼슬에서 쫓겨났다가 뒤에 다시 등용되었고, 1618년 동지 겸 진주사(冬至兼陳奏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공조·예조의 참판을 거쳐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때 장흥, 아산 등지에 유배되었다가 1627년 정묘호란 때 기용되어 한성부좌윤, 청주목사, 호조와 형조의 참판을 지냈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왕을 남한산성에 호종하고, 특명전권대사로 적진에 출입하면서 강화조약을 체결하였다.

환도 후 도승지에 임명되어 청나라와의 외교를 전담하였고, 한성부판윤, 형조판서를 거쳐 1639년 우찬성으로서 주청사(奏請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오고, 1641년 공조판서가 되었다.

[상훈과 추모]

죽은 뒤 아들 윤면지(尹勉之)의 공훈으로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장익(章翼)이다.

[학문과 사상]

글씨를 잘 썼으며,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저술]

『장주집(長洲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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