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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7연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565
한자 忠北七聯隊
영어공식명칭 7th Regiment in Chungbuk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양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창설연도/일시 1945년 2월 7일연표보기

[정의]

미군정 시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 있었던 군대.

[개설]

미군정의 군창설 시도는 1946년 3월 국내경비부로 바뀌면서 그해 말까지 9개 연대를 편성, 5천 병력을 확보하였다. 충청북도에는 1946년 3개 대대를 편성하고, 1947년 1월 15일 민기식 정위가 연대장이 되었다. 1949년 2월 이후에는 강원도 원주를 거쳐, 춘천으로 이동하여 38선 경비를 맡았다.

[제7연대의 창설]

충청북도에서는 1946년 2월 7일 제7연대가 창설되어 청주군 사주면 개신리(현 충북대학교 농과대학교 자리)에 본부를 두었고, 초대 중대장에 민기식 참위가 임명되었다. 부임 후 민기식 참위는 모병활동을 통하여 A중대를 편성하였고, B중대를 창설하여 중대장이 되었다. 12월에는 3개 대대의 편성을 완료하여 1947년 1월 15일 민기식 정위가 연대장이 되고 이후 연대장에 이병주, 채원개, 심언봉 소령이 부임하였다.

[제7연대의 38선으로의 이동]

제7연대는 1947년 12월 1일 제1여단에 편입되었다가 1948년 6월 14일 제4여단으로, 1949년 2월 1일 제6여단으로 편입되었다. 1949년 2월 20일 제7연대는 주둔지인 청주에서 강원도 원주로 이동하였고, 5월 3일에는 다시 춘천으로 이동하여 38선 경비를 담당하였다.

1950년 7월 6일 제7연대는 개전 이래 처음으로 음성지구(陰城地區) 전투에서 적 1개 사단을 섬멸하는 전과를 올렸다. 전군 이래 최초로 연대 전원이 1계급 특진의 영광을 안았다. 제7연대는 인천상륙작전과 더불어 국군의 선봉으로 북진을 계속 초산(楚山)까지 진격, 압록강물을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에게 바쳐서 초산부대로 불렸다.

[의의와 평가]

광복 직후의 혼란기에 국토방위의 임무를 띠고 충청북도에서 창설된 제7연대는 후퇴와 북진을 거듭하는 영욕이 교차되는 전투를 하면서 용맹을 떨쳤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고** 저는 고향이 영동이고 지금은 서울사는 베트남참전 국가유공자입니다
저의 매형은 7연대창설맴바로 6,25전쟁중 제주도 훈련소가 창설되어 연대인사계(특무상사)로 54년8월전역하셨습
니다 제주도에서 난 생질녀가 59살이요 매형은98년도에 고인이되셨지요 살아계실때 7연대이야기 많이하셨는데...
이세상에 전쟁은사라지고 영원히 평화만있길~~~군번170038* 청성부대 7연대는 전군최고 화이팅
201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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