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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군 산내이하면산성 보국사 중건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528
한자 -淸州郡山內二下面山城輔國寺重建記-
영어음역 Cheongjugun Sannaeihamyeon Sanseong Boguksa Junggeongi
영어의미역 Record of the Reconstruction of Boguksa Temple in the Sannaeiha-myeon Mountain Fortress in Cheongju-gun
이칭/별칭 남악사(南岳寺)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강민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연도/일시 1892년 2월연표보기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산성 내에 있었던 보국사와 관련된 기록.

[개설]

청주 상당산성에 위치한 보국사의 연원을 적은 기록이다. 상당산성은 1716년(숙종 42)에 대대적인 수축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고, 1721년(경종 1) 산성의 관리를 위해 구룡사(九龍寺)와 남악사(南岳寺)를 건립하였다. 이 후 구룡사(九龍寺)는 완전히 파괴가 되었고 남악사만 홀로 남게 되었는데, 1885년(고종 22) 남악사를 보수하고 이듬해 보국사(輔國寺)라 이름을 고치고 다시 1890년 사찰의 규모를 갖추고 운영케 하였다는 내용이다.

[서지적 상황]

조선총독부 내무부 지방국(朝鮮總督府 內務部 地方局)에서 1911년에 편찬한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에 전하는 것으로 상·하 2책 인쇄본이다.

[내용]

청주 상당산성은 관방의 중요성으로 인해 1716년에 대대적인 수축이 이루어졌으며, 1721년 산성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산성 안쪽에 구룡사(九龍寺)와 남악사를 건립하였다. 두 사찰에는 승려가 거주하면서 수행과 함께 산성의 보수와 기물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으나, 이후 구룡사(九龍寺)는 완전히 폐허로 변한고 남악사만이 남게 되었다.

1885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이민응(李敏應)이 부임하여 남악사에 거주하던 청한노사(淸閑老師)에게 보수를 명하였고, 이듬해 병마절도사로 부임한 홍재희(洪在羲))가 절을 고치고 보국사라 이름하고 승장(僧將)을 도내총섭(道內摠攝)으로 삼았다.

그해 9월에는 삼도육군통어사(三道陸軍統禦使) 민응식(閔應植)이 부임하여 도내총섭을 삼도도총섭(三道都摠攝)으로 승진시켰다. 1890년에는 박제관(朴齊寬)이 부임하여 산성 보수를 완료하였는데, 이 때 보국사에 군량미 등을 지원하고, 별관(別館) 2칸, 칠성각(七星閣) 3칸, 외삼문(外三門) 칸을 새로이 건립하여 사찰의 규모를 갖추게 하였다.

그러나 1895년 상당산성이 폐쇄되면서 산성은 크게 퇴락하고 성내의 관아 건물은 뜯기어 용화사(龍華寺) 신축의 부재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박문호(朴文鎬)의 ‘유상당산성남악사(遊上黨山城南岳寺)’에 따르면 1907년 보국사는 다시 남악사로 바뀌어 불리며 그 때까지도 명맥을 유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절터는 농경지로 변하여 주변에서 기와편 등이 출토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청주의 중요한 관방시설인 상당산성의 운영과 보수 기록, 그리고 산성 운영의 실질적인 노동력을 제공했던 사찰과 관련된 귀중한 기록이다. 이를 통해 상당산성과 관련된 사실과 산성내의 사찰의 건립, 운영에 관한 자료를 얻을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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