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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504
한자 淸州趙憲戰場記蹟碑
영어음역 Jo Heon Jeonjang Gijeokbi
영어의미역 Monuments to  the Military Achievement of Jo Heon
이칭/별칭 문열공조선생기적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92-6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신호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12월 31일연표보기 - 청주 조헌 전장기적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6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청주 조헌 전장기적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관련인물 조헌(趙憲)[1544~1592]
건립시기/연도 1710년연표보기
높이 230㎝
두께 37㎝
너비 84㎝
소유자 충청북도
금석문찬자 김진규(金鎭圭)
금석문서자 이수당(李秀棠)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의병장 조헌(趙憲)[1544~1592]의 비석.

[건립경위]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조헌청주성 탈환을 기념하기 위한 전적비(戰蹟碑)로 그가 죽은 지 약 120년 뒤인 1710년(숙종 36)에 세워졌다.

[위치]

상당구 서문동에 세웠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옮겨, 현재는 상당구 남문로2가 중앙공원(中央公園)의 동쪽 출입구의 오른쪽 화단에 서향으로 있다.

[형태]

사각형의 밭침돌 위에 높이 230㎝, 폭 84㎝, 두께 37㎝의 몸돌을 세우고 그위에 머릿돌을 얹었으며, 주위에 12개의 시멘트 기둥을 세우고 철제로 보호 난간을 둘렀다. 비문은 윗부분이 풍화로 인하여 많이 훼손되어 글자를 알아보기 어렵다. 비석의 앞에는 1974년 비문을 요약하여 세운 안내 표석이 있으며, 표석은 오석(烏石)의 화강암으로 규모는 가로 98㎝, 세로 81㎝이다.

[금석문]

비의 제목은 “文烈公趙先生紀蹟碑(문열공조선생기적비)”로, 비문은 김진규(金鎭圭)가 짓고, 이수당(李秀棠)이 썼으며 이방언(李邦彦)이 새겼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 때 왜적이 침입하자 옥천에 은거하고 머물고 있던 선생께서 이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의병을 일으켜 16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청주성에 웅거하고 있던 왜군을 무찌르고 이어 금산전투에서 적과 맞아 싸우다가 순절한 내용과 이를 기념하는 4언 시(사:辭)에, 이어 “崇禎紀元後八十三年庚寅 立(숭정기원후팔십삼년경인 입)” 이라 하여 이 비의 건립 년대(1710년)를 기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때 육전(陸戰)에서의 최초의 승리인 청주성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비석은, 1710년에 세워진 조헌의 기적비 외에도 승군을 이끌었던 영규대사(靈圭大師)[?~1592]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1974년에 세워진 ‘영규대사 전장기적비(靈圭大師 戰場紀蹟碑)’, 향토의병을 이끌었던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88년에 세워진 ‘박춘무 전장기적비(朴春茂 戰場紀蹟碑)’ 등 3개의 비석이 중앙공원(中央公園) 안에 함께 있어, 이곳을 찾는 이에게 선조들의 외세침략에 대한 항전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어 그 의의가 높다. 청주 조헌 전장기적비는 1984년 12월 3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영문본문]

This stele is in memory of Jo Heon(1544-92), an official of the Joseon Kingdom(1392-1910) who played a key role in recapturing the Cheongju Fortres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1592-98) led by Yoyotomi Hideyoshi. After passing a state civil examination in 1567, the 22nd year of the reign of King Myeongjong(1545-67), Jo Heon served in a number of government posts while continuing his scholarly pursuits. At the outbreak of the Japanese Invasion, he organized a volunteer force at Okcheon and along with the Monk General, Yeonggyu, recaptured the Cheongju Jo Heon and Yeonggyu led 700 volunteers into a showdown at Geumsan. They were heavily outnumbered and all were killed after dealing a big blow to the enemy. The stele was erected in 1710, the 36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ukjong(1674-1720), at the site of Jo Heon's victory in Cheongju. The epitaph was written by Kim Jingyu and the calligraphy done by Yi Sudang.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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