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8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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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盧章遇 |
영어음역 | No Jang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양수 |
[정의]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유학자.
[가계]
본관은 교하(交河)이고, 자는 명보(明甫)이며, 호는 금사(錦史)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신송리 출생으로 체화당(棣華堂)의 사촌동생인 서암(西庵) 노덕원(盧德元)의 12대 손이다.
[생애]
어려서부터 어질고 총명하여 소년기에는 매은(梅隱) 오영호(吳榮鎬)와 소강(小康) 이인상(李寅尙), 남계(楠溪) 신창모(申昌模)의 문하에서 경학을 공부하고 스승의 유지(遺旨)에 따라 일제하에서 학업을 단념하고, 오직 유학의 길만을 걸었다. 스스로 수양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효도하고 친우와 화목하는 등 유학자의 풍속을 지켰다.
[활동사항]
각 서원의 원장(院長)과 청주향교 장의(掌議)에 세 번 선출되었고, 성균관 전학(典學)을 역임하고 유학의 발전에 많은 공을 세웠다.
[저술]
『금사문집(錦史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