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8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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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和 |
영어음역 | Gwon Hwa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신호철 |
성별 | 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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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 미상 |
몰년 | 미상 |
본관 | 안동(安東) |
아버지 | 권희(權僖) |
[정의]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검교정승 권희(權僖)의 아들이다.
[생애]
1386년(우왕 12) 전법판서(典法判書), 동북면 안무사(東北面按撫使)를 거쳐, 1388년 밀직부사, 청주목사 겸 원사를 지냈다. 조선건국 후인 1396년(태조 5)에 삼사 우복야(三司右僕射)가 되었다.
[활동사항]
고려 말 우왕 때 권화가 청주목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 고성(固城)의 이금(伊金)이라는 자가 미륵불이라 칭하고 대중을 현혹하여 말하기를, “귀신에게 제사지내거나 말과 소의 고기를 먹거나 남에게 재물을 주지 않는 사람은 모두 죽을 것이며, 내가 산천의 귀신을 동원하여 왜적을 사로잡겠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이금을 부처님처럼 섬기고 무뢰배들이 제자라 일컬으며 따라다니며, 수령들도 나가 맞이하며 객관에 두고 대접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이들 이금의 무리들이 청주에 이르렀을 때 청주목사 권화가 이들 두목 5명을 잡아가두고 조정에 보고하니 도당에서 각도에 이첩하여 그 일당을 모조리 잡아 사형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