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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781
한자 開新洞遺蹟
영어음역 Gaesin-dong Yujeok
영어의미역 Archeological Site in Gaesin-d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조선/조선
집필자 우종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시기/연도 통일신라시대|조선시대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움집터와 조선시대의 건물지·움집터·기와가마터·움무덤 등 생산·생활·매장유구가 있는 복합유적.

[발굴/조사경위]

대한주택공사가 시행하는 청주 개신지구 택지개발(면적 451,381㎡) 과정에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조사(1996)·시굴조사(1997)·발굴조사(1998)를 실시하였다.

[위치]

53~60m의 낮은 구릉사면부에 자리하며, 개신동 배틔마을 남쪽의 구릉사면과 장고봉(長鼓峰) 남사면의 2개 지점에서 유구가 확인되었다.

[발굴결과]

조사 유구는 통일신라시대 움집터 1기, 조선시대 건물지 3동·움집터 1기·공방지(工房址) 1기·불땐시설 9기·기와가마터[瓦窯址] 1기·움무덤 3기 등 모두 19기이다.

통일신라시대 움집터는 크게 훼손되어 정확한 구조파악이 어려우나 평면 타원형의 움집으로 추정되며, 특별한 시설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고 집터 안에서 불탄 목재와 숯이 많이 출토되어 불탄집 임을 알 수 있다. 유물은 주름무늬병·사면편병[四面扁甁]·큰항아리[大壺] 등이 출토되었다.

조선시대 건물지는 방형구역 내에 긴 중앙석렬(길이 26.2m)를 중심으로 위쪽에 1동(1건물지), 아래쪽에 2동(2·3건물지)의 서로 다른 규모·형태를 지닌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1건물지는 적심석(積心石)이 안정된 상태로 남아 있으며, 건물 규모는 남북 18m·동서 7.5m로 정면 7칸·측면 3칸의 큰 규모의 건물이다. 2건물지는 정면 1칸(370㎝)·측면 1칸(250㎝) 규모의 작은 건물이고, 3건물지는 파괴되어 규모 파악이 어렵다. 건물의 배치상태·규모 등으로 볼 때 공공목적으로 사용된 특수한 건물로 추정된다.

유물은 사발·접시가 대부분인 백자편와 수파문(水波文)·생선뼈무늬가 주류를 이루는 기와편이 많은 양 출토되었다. 도편(陶片) 분석을 통하여 볼 때 중심 제작시기는 16~17세기로 추정됨으로 이 시기에 건물이 존속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 움집터는 평면 네모꼴로 390×350×25㎝ 규모이며, 북동쪽 벽에 붙여서 아궁이시설을 하였다. 공방지는 건물지와 움집터 사이에 위치한다. 기와가마터는 반지하식등요(半地下式登窯)로 연도부·회구부·아궁이 등의 시설이 파괴되어 전체적인 구조파악이 어려우나 남아 있는 규모는 길이 10.9m·최대 너비 2.16m이고, 소성실과 연소실 사이에 68㎝의 단(段)이 형성되어 있는 구조이다. 기와·회백자 사발·분청사기편 등의 출토유물로 볼 때 16세기 무렵에 요업(窯業)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황]

흥덕구 개신동·가경동(佳景洞) 일원에 위치하며, 현재는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유적의 흔적을 전혀 확인할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충청북도 지역에서는 드물게 조선시대 기와가마터가 확인되어 주목되며, 이 지역에서의 요업(窯業) 생산체계와 유통체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확보하였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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