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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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鳴洞松節洞- |
영어음역 | Bongmyeong-dong Songjeol-dong Jipjari |
영어의미역 | Dwelling Sites in Bongmyeong-dong and Songjeol-d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송절동 |
시대 | 선사/석기,선사/청동기 |
집필자 | 박중균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송절동에 있는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집자리.
[개설]
흥덕구 봉명동과 송절동 일원에 위치한 청주 봉명동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집자리와 청동기시대의 집자리가 조사되어 청주지역의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의 문화상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위치]
신석기시대 집자리는 청주지역에서 처음으로 조사된 것으로 행정구역상 송절동에 해당하는 봉명동 4지구 유적의 C구역에서 2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가 위치한 곳의 지형은 북향 가지능선 최 하단의 평탄부 즉, 하천변 충적대지로 이어지는 구릉의 능선 하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집자리의 형태는 비교적 형태가 양호하게 남은 1호 집자리의 경우 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으며, 크기는 직경 370㎝이며, 남아있는 깊이는 25~38㎝ 이다. 집자리 내외에는 다수의 기둥구덩이 발견되었으며, 내부의 중앙부에 소토층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화덕시설을 갖추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출토유물로는 빗살무늬토기편과 석재 그물추·갈판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의 집자리는 봉명동 유적의 2지구에서 2기, 4지구에서 38기가 조사되어 청동기인들이 집단 취락을 이루고 살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집자리의 형태는 네모꼴과 둥근꼴이 같이 존재한다. 청동기시대 전기의 비교적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네모꼴 집자리는 2지구에서 2기, 4지구에서 17기가 조사되었다.
네모꼴 집자리들이 주로 구릉의 사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둥근꼴 집자리에 비하여 움을 깊게 파내지 않은 것으로서 얕게 암반풍화토인 이른바 석비례층을 파내어 움을 만든 것이다. 집자리 내부에는 중앙 근처에 불땐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며, 가장자리 쪽으로 작은 움을 더파기한 저장구덩이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집자리의 크기는 일률적이 않은데, 가장큰 규모인 봉Ⅱ-8호는 길이 660㎝, 너비 645㎝로 청동기시대의 집자리로서는 큰 편에 속한다. 네모꼴 집자리들은 아직 둥근꼴의 집자리처럼 定型이 없는 상태이지만, 기둥과 천장을 결구하는 목재가 이미 간석기에 의하여 어느정도 가공되었을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출토유물은 변형팽이형토기, 민무늬토기 옹(甕)·발(鉢), 붉은간토기, 돌끌, 돌대패, 갈판, 돌칼, 가락바퀴 등이 있다.
둥근꼴 집자리는 봉명동과 송절동의 구릉지대에 걸쳐 청동기시대의 집터가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다. 특히 송절동을 향한 서북향 능선 위에서 집중적으로 집자리가 모여 있어서 취락을 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15기 이상의 둥근꼴 집자리가 조사되었는데, 이 중 14기가 소위 ‘송국리형 주거지’로 밝혀졌다.
가장 전형적인 것은 깊이가 55㎝에서 97㎝에 달하도록 석비례층을 깊게 파낸 움이다. 이러한 것으로서 둥글게 직경이 4m 혹은 5m의 규모로 바닥을 평평하게 파낸 다음, 중앙에 타원형의 좀더 깊은 구덩을 두고, 이 구덩의 양쪽 끝에 직경 20~25㎝크기의 깊이가 50㎝에 달하는 깊은 기둥구덩을 파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런 유형의 움집 유형은 일찍이 서산 해미의 휴암리와 부여 초촌의 송국리에서 조사되어, 휴암리식, 혹은 송국리형 주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유형의 특징은 움의 중앙에 타원형의 구덩이 있고, 이구덩 양쪽 끝에 두 개의 깊은 구덩이 있으며, 별도로 집자리 안에 화덕시설이 없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들 집자리에서는 갈판과 돌칼, 홈대패, 돌대패날, 돌화살촉 등과 함께 대형의 토기와 작은 바리모양토기들이 홍도와 함께 출토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목재를 다듬기 위한 돌연모의 발달을 알려주며, 따라서 기둥과 천정의 결구가 단순하지 않았음을 알려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