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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036
한자 郭在驥
영어음역 Gwak Jaegi
이칭/별칭 김광삼(金光三),김재만(金在萬)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박걸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1893년연표보기
몰년 1952년연표보기
경(敬)
출신지 충청북도 청주시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

[정의]

의열단 단원으로 의열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일찍이 상경하여 경신학교(儆新學校)를 졸업하고 귀향하여 청주 청남학교(靑南學校) 교사로 재직한 바 있다. 일제 강점기 내내 독립운동에 헌신하였고, 해외로 망명하였다가 광복 후 귀국, 사업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1909년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의 당원이 되어 국내외에서 독립을 위한 지하공작을 전개하였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동지들과 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1919년 7월 만주로 건너가, 동년 11월 9일 김원봉(金元鳳) 등과 일제의 관리·밀정·관공서 등을 주살·파괴함으로써 항일정신을 고취하고 무력으로써 독립을 쟁취하고자 강력한 비밀결사인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하였다.

그는 의열단 투쟁방침에 따라 폭탄을 구입, 비밀리에 국내로 보낸 후 서울에 잠입하여 계획을 실행하고자 기회를 엿보던 중 1920년 7월, 이 사실을 탐지한 경기도 경찰부에 동지와 함께 피체되어 징역 8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0년 다시 국외로 망명하여 만주·상해·노령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945년 광복을 맞이하여 귀국하였다. 귀국 후 한국 에스페란토어 학회를 운영하는 한편 교육사업에 종사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묘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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