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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경골재경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과 흥덕구 남촌동에 있는 골짜기. ‘재경골’은 전국적으로 매우 흔한데, 두 가지 다른 어원과 관련된다. 첫째는 ‘재궁이 있던 골짜기’를 뜻한다. ‘재궁(齋宮)’은 ‘재실(齋室)’과 같은 말로, ‘제사를 지내려고 지은 집’을 말한다. 이런 곳은 대개 ‘재궁곡’·‘재궁촌’·‘쟁골’이란 이름도 함께 쓰이며, 실제로 재실이 있다. 둘째는 ‘경치가 아름다운 골...

  • 자랑스런 문화예술의 도시 청주(-文化藝術-都市淸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청주문화란 청주와 청원 지역에서 축적되고 존재하는 문화이다. 청주문화는 다른 문화와 비교상대적인 문화 개념이다. 청주문화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문화의 독자적인 완결성을 공간적으로 강조할 때 이런 문화단위 개념이 설정될 수 있다. 이 경우 지역의 독자적 문화문법(文化文法)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의 마모를 견디면서 내재하는 문화...

  • 자랑스런 청주의 무형문화재 청주농악(-淸州-無形文化財淸州農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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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농악은 청주시 강서 1동 지동마을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오는 청주지역의 대표적 농악으로 청주시가 지정한 무형문화재 제1호이다. 농악은 농경을 생업으로 하는 농촌의 역사와 그 명맥을 함께 해 온 우리 한민족의 기층문화를 대표하는 종합적 민속예술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 고유의 농민음악인 것이다. 농악의 기원은 아득한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의 옛 선조들은 하늘에 제사를 올릴...

  • 자비도량참법집해(-慈悲道場懺法集解-)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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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비도량참법’의 바른 전달과 배우는 사람들이 이 책에 나오는 어려운 글자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이(集解)한 책. 『직지』를 인쇄한 동일한 금속활자로 찍은 책을 바탕 책(底本)으로 하여 목판으로 다시 인쇄(飜刻)한 책으로, 그 저본은 『직지』보다 먼저 인쇄되었거나 비슷한 시기에 청주에서 간행된 책이다. 자비참도량(慈悲懺道場: 참법(懺法))이란, 밀교적인 경향의 불사(佛...

  • 자연재해(自然災害)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태풍, 홍수, 호우, 폭풍, 해일, 폭설, 가뭄, 지진 또는 기타 이에 준하는 자연현상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피해. 우리나라에서 1990년대에 발생한 자연재해를 분석해 보면 여름철 집중호우와 태풍에 의한 풍수해가 가장 많았고, 다른 자연재해는 미미하다. 이런 현상은 충청북도와 청주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자연재해를 파악할 때, 인명피해, 재산피해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고, 피해건...

  • 자연지리(自然地理)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지표의 자연현상을 지역적인 관점에서 구명하려는 지리학의 한 분야. 인간생활과 관계가 깊은 대기와 육지, 대기와 바다가 만나는 비교적 엷은 접촉대의 환경은 그 구성요소가 어떤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장소마다 달리 나타나며 그것은 인간을 풍요롭게 부양하기도 하고 인간생활에 제약을 가하기도 한다. 환경의 구성요소를 분류하고 지구적인 차원에서 그 분포를 연구하는 것은 자연지리학의 본질적인...

  • 자유민주연합 충북도당(自由民主聯合忠北道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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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민주연합의 충청북도지역을 대표하는 지역당. 자유민주연합에서 충청북도지역을 대표하는 지역당으로 자유민주연합 충북도당이라 한다. 자유민주연합 충북도당은 충청북도 도민을 대상으로 자민련의 정강정책을 기본으로 실천하여 정당의 지지를 넓히고, 자민련 소속의 지역정치인 활동을 지원하고 당원을 비롯한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중앙당의 정강정책 결정과정에 가교적 역할을 하기 위해 설립되었...

  • 자치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는 바위. ‘자치배’는 ‘자치’와 ‘배’로 분석된다. ‘자치’는 ‘자치골’·‘자치내’·‘자치동’·‘자치미’·‘자치밭’·‘자치암’·‘자치울’ 등에서 발견되는데, 그 어원을 알기 어렵다. 다만 음으로 보아, ‘자초’와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자초’는 ‘자초들’·‘자초바위’·‘자초산’ 등에서 발견되는데, 식물 ‘자초(紫草)’와 관련된 유래담...

  • 작은 가좌골가좌골(加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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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있는 마을.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신문왕 9년 청주에 서원경을 두고 성을 축조하여 재발 가능성 있는 북방의 내습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 후 혜공왕 6년에 왕이 서원경을 순행하게 되었다. 왕이 순행한다는 전갈을 받은 성주는 왕을 맞을 준비를 해 놓고 요로에 연락군을 파견하여 왕의 행차과정을 파악하고 있었다. 혜공왕이 조항산성(현 보은의 삼년산성)을...

  • 작은 왕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화계동에 있는 마을. ‘왕암’은 마을 뒷산에 바위가 많아서 붙어진 마을이름으로 규모가 큰 ‘큰왕암’에 비하여 규모가 작다는 의미에서 ‘작은 왕암’이라고 한다. 대부분이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흥덕구 화계동의 으뜸마을인 말골(큰왕암)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에는 청주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제2순환도로가 동서로 달리고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 작은미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과 운동동 사이에 있는 고개. ‘작은미고개’는 ‘작은미’와 ‘고개’로 분석되고, ‘작은미’는 다시 ‘작은-’과 ‘미’로 나뉜다. ‘작은’은 형용사 ‘작다[少]’의 어간이다. ‘미’는 신라어 ‘芼兮’(뫼ㅎ)에서 기원한 것으로, ‘산’을 뜻한다. ‘뫼ㅎ’는 현대 지명에서 ‘뫼’ 외에 ‘미’·‘매’·‘메’·‘모이’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특히, ‘미’로...

  • 작천(鵲川)까치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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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원평동에 있는 미호천(美湖川)을 가르키는 하천. 전설에 따르면 ‘까치내’는 ‘흰 까치가 나타난 합수머리’로 해석된다. ‘까치내’의 ‘까치’를 조류의 ‘까치’로 본 것이다. 지금도 합수머리 근방에는 까치가 많이 날아든다고 한다. 까치내는 17세기 후반에 발행된『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 등과 같은 지리지에서는 줄곧 작천(鵲川)으로 나오고 있다. 작천(鵲川)은...

  • 잠두봉누에머리끝산(-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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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에 있는 산. 산의 모양이 누에의 머리처럼 생겨서 붙어진 이름이다. 누에머리를 줄어서 ‘눼머리’라고도 한다. 누에머리의 한자지명이 잠두(蠶頭)이고 잠두에 봉을 붙어 ‘잠두봉(蠶頭峰)[101m]’이라고 한다. 누에와 관련된 청주지역의 지명은 청원군의 가덕면 병암리 잠두골, 강내면 탑현리 잠두, 오창면 성산리 누에봉 등이 있다. 풍수상으로 잠두형은 앞에...

  • 잠두봉(蠶頭峰)누에머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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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에 있는 산. ‘누에머리’는 ‘누에’와 ‘머리’로 분석된다. ‘머리’는 ‘사람이나 동물의 목 위의 부분[頭]’을 가리키는 말이나 다른 사물에도 전용되어 ‘앞’·‘위’·‘시작’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명에 ‘머리’가 사용될 경우, 대체로 산기슭이나 봉우리가 들판으로 불쑥 튀어 나온 지역이나 특정 지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붙는 경향이 있다. ‘...

  • 잠두봉공원(蠶頭峰公園)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수곡동 일대에 조성된 근린공원. 이 공원은 잠두봉(蠶頭峰)[101m] 일대에 조성된 공원이다. 잠두봉은 산의 모양이 누에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실제로 산 이름을 ‘누에머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도로건설과 택지개발로 머리의 끝 부분이 잘려나갔다. 잠두봉공원은 낮은 구릉인 잠두봉을 중심으로 주변의 산지에 조성되어 있다. 198...

  • 잡지(雜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지역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룬 글과 기사, 그리고 문예물을 모아서 편집한 간행물, 또는 문예지. 청주지역의 잡지는 도시의 규모나 경제력과는 달리 타 지역에 비해 빨리 잡지 간행이 이루어졌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 되었던 1954년 경 당시에는 충북문화사(洪元吉), 주성문화사(柳鳳業), 청주문화사(崔炳柱) 등의 출판사가 있었는데, 이중 주성문화사가 계몽월간지『직업여성』을 발...

  • 장구먹산(-山)장구봉(-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에 있는 산. ‘장구봉’은 ‘장구’와 ‘봉(峰)’으로 분석된다. 지명에서 ‘장구’는 ‘장구논’·‘장구달’·‘장구덤’·‘장구동’·‘장구둠벙’·‘장구매기’·‘장구목’·‘장구배미’·‘장구산’·‘장구실’·‘장구재’ 등에서와 같이 자주 쓰이는 선행 요소 중 하나이다. 여기서 ‘장구’는 타악기의 하나로, 가운데가 잘록한 나무통의 양쪽에 가죽을 메워 만든다. 물론...

  • 장구봉(-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에 있는 산. ‘장구봉’은 ‘장구’와 ‘봉(峰)’으로 분석된다. 지명에서 ‘장구’는 ‘장구논’·‘장구달’·‘장구덤’·‘장구동’·‘장구둠벙’·‘장구매기’·‘장구목’·‘장구배미’·‘장구산’·‘장구실’·‘장구재’ 등에서와 같이 자주 쓰이는 선행 요소 중 하나이다. 여기서 ‘장구’는 타악기의 하나로, 가운데가 잘록한 나무통의 양쪽에 가죽을 메워 만든다. 물론...

  • 장구봉공원(-峰公園)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개신동에 조성된 근린공원. 장구봉공원은 장구봉(96m) 일대에 조성된 공원이다. 장구봉은 산의 모양이 타악기 장구처럼 두 개의 봉우리가 있고 그 사이가 잘룩한 능선을 이루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구봉공원은 낮은 구릉인 장구봉을 중심으로 주변의 산지에 조성되어 있다. 공원에는 남북으로 두개의 산봉우리가 있는데, 남쪽 봉우리 부분은 1980년대 이후 택지...

  • 장구샘질구샘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있었던 샘. ‘질구샘’은 ‘질구’와 ‘샘’으로 분석된다. ‘질구’는 ‘질곶’에서, 다시 ‘질곶’은 ‘길곶’에서 변한 어형이다. ‘길곶’에서 ‘길-’은 ‘길다[長]’의 어간이다. ‘곶’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 지명에 ‘古次·串’(곶)으로 보이는데, 원래는 ‘입(口)’을 뜻했다. 그러나 현대 지명에서 ‘곶’·‘고지’·‘구지’·‘꼬지’·‘꽁지’...

  • 장군봉맹공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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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남촌동에 있는 산. ‘맹공대’는 ‘맹공’과 ‘대’로 분석된다. ‘맹공대’는 달리 ‘만경대’로도 불리니, ‘맹공’이 ‘만경’의 변화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 ‘만경(萬景)’은 ‘삼라만상의 온갖 경치를 구경함’을 뜻한다. ‘대(臺)’는 ‘전망대’·‘첨성대’에서와 같이, ‘높이 쌓아 사방을 볼 수 있게 만든 곳’을 뜻한다. 그렇다면 ‘맹공대’는 ‘삼라만상...

  • 장기봉석영산(石嶺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는 산. 흥덕구 운천동 연당리와 신봉동 소생이 간의 고개길을 돌고개, 석령, 석령산고개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진 고개가 있다. ‘석령산’의 이름은 돌이 많은 산이라는 의미에서 붙어진 이름이며, 양병산 장기봉 흥덕산이라고도 한다. ‘양병산’은 이 산에 양병사(梁兵使)의 묘가 있어서 붙어진 이름이다. ‘장기봉’은 장기(長基) 또는 장기(場基)라는 것이...

  • 장들(長-)쇠냇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었던 들. ‘쇠냇들’은 ‘쇠내’와 ‘들’이 사이시옷을 매개로 결합된 어형이다. ‘쇠내’는 상당산성에서 발원하여 금천동을 지나 무심천(無心川)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 ‘쇠내개울’·‘금천(金川)’·‘명암천(明岩川)’으로도 불린다. ‘쇠내’는 ‘쇠’와 ‘내’로 나뉘는데, 여기서 ‘쇠’는 두 가지로 다르게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금(金)’으로 보아,...

  • 장바위장수바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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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장암동과 주중동에 있는 산과 바위. ‘장수(將帥)바위’는 조선 영조 때 장암리 노씨(盧氏)의 조상인 노긍(盧兢)이라는 장수가 근처에 살았다는 전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으나, 단순히 외관상 우람하게 큰 바위에 붙여진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장바위’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장’은 將 또는 長을 뜻할 것으로 추정되나, 장암동(壯岩洞)이라는 지명에서...

  • 장범(張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本貫)은 인동(仁同)이며, 자(字)는 의중(儀仲)이고, 거주지는 청주 가산리(駕山里)이다. 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장우신(張禹臣)이며, 동생으로는 장윤(張輪), 장량(張車量), 장복(張輻), 장원(張轅)이 있었다. 청주 가산리(駕山里)에 세거하기 시작한 문충공(文忠公) 장덕생(張德生)의 5세손이다. 1546년(명종 1) 소과에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 장사훈(張師勛)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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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자, 음악인. 경상북도 영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를 거쳐 청주대학교 명예교수를 지냈다. 1961년 일본에서 개최된 동아음악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으며 국립국악원 도일(渡日)공연 및 일본 초청 강연을 가졌다. 세종(世宗)대왕 아악실위원, 한국국악교육연구회장, 서울대학교 부설 동양음악연구소장, 청주대학교 민족음악자료관장을 지냈다. 1968년에는 서울대학교에서 「보호자와...

  • 장성동(長城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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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미분장동에 속하는 법정동. ‘장승’이 서 있던 곳이어서 붙어진 이름이다. ‘장승’의 원말은 ‘장생(長栍)’인 데 이것이 ‘장승’, ‘장성’ 등으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장성’을 장성(長城)으로 쓰고 있다. 궁뜰(궁뜨리, 궁평, 궁평리)은 궁궐이 들어 설만한 규모의 들이라서 붙어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궁궐에 살다가 내려온 사람들이 농사를 지은 ‘들...

  • 장성동 박복영 가옥(長城洞朴福永家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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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장성동에 있는 근대의 가옥. 흙벽돌집으로 소유자에 의하면 이 건물의 신축시기는 1900년대 이전이라고 한다. 흥덕구 장암동의 강태숙 가옥과 마찬가지로 ‘一’자형의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강태숙 가옥과 다른 점은 이 가옥의 위치가 평지라는 것이다. 안채는 부엌, 방, 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퇴를 갖고 있다. 사랑채는 측간, 헛간(외양간), 방과 쪽...

  • 장성동 이중설 가옥(長城洞-家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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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장성동에 있는 근대에 건립된 가옥. 이 가옥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지어진 근대 한옥이다. ‘ㄱ’자형 안채가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면으로 대문간과 광이 있다. 이 가옥의 측면과 후면에는 감나무 등으로 조성된 넓은 정원이 있다. ㄱ자형 안채는 가운데 대청마루를 두고서, 방들이 연결되어 있다. 지붕형태는 합각이다. ㄱ자형 안채 한쪽 편으로 아궁이가...

  • 장수바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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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장암동과 주중동에 있는 산과 바위. ‘장수(將帥)바위’는 조선 영조 때 장암리 노씨(盧氏)의 조상인 노긍(盧兢)이라는 장수가 근처에 살았다는 전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으나, 단순히 외관상 우람하게 큰 바위에 붙여진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장바위’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장’은 將 또는 長을 뜻할 것으로 추정되나, 장암동(壯岩洞)이라는 지명에서...

  • 장수바위(將帥-)자치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는 바위. ‘자치배’는 ‘자치’와 ‘배’로 분석된다. ‘자치’는 ‘자치골’·‘자치내’·‘자치동’·‘자치미’·‘자치밭’·‘자치암’·‘자치울’ 등에서 발견되는데, 그 어원을 알기 어렵다. 다만 음으로 보아, ‘자초’와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자초’는 ‘자초들’·‘자초바위’·‘자초산’ 등에서 발견되는데, 식물 ‘자초(紫草)’와 관련된 유래담...

  • 장순신(張舜臣)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자는 우경(虞卿), 호는 우헌(愚軒)이다. 거주지는 청주 남일면 가산리(駕山里)였으며, 아버지는 장회(張淮), 동생으로 참봉(參奉)을 지낸 장우신(張禹臣)이 있다. 청주 가산리에 세거하기 시작한 문충공(文忠公) 장덕생(張德生)의 4세손이다. 성종조에 사마시(司馬試) 및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다. 관직은 교서관권지(校書館權...

  • 장승제선도산 산신제(仙到山山神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정월대보름에 선도산 산신에게 올리는 산신제. 정월대보름날 아침 10시경부터 선도산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제를 올린다. 이때 이 두 산신을 상징하는 것은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 두 기의 장승이다. 동네 주민 중 깨끗한 한 가구를 제주로 선정하여 제를 준비산다. 제주로 선정되면 금연, 금색, 금주하고 목욕재계하여 제수를 마련한다. 제수는 삼색실과, 돼지머리, 술...

  • 장승제용정동 천지신단(龍亭洞天地神壇)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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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었던 신당. 용정동 이정골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동제를 지낸다. 동제는 천제당에서 먼저 제사를 올린 후 산제당으로 내려와 산신제를 지내고, 마지막으로 마을 앞에 있는 선돌에 장승제를 지낸다. 제일은 보통 정월 열 나흗날이거나 보름이 택일된다. 낙가산 중턱에 있는 천제단에서 천신제를 지내고, 50m 내려와 위치한 산제당에서 산신제를 지낸 후 마을로...

  • 장암동(壯岩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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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미분장동에 속하는 법정동. 장암(壯岩)은 방축말방죽 옆의 개울가에 있는 높이 4m, 둘레 10m의 큰 바위인 ‘장수(將帥)바위’ 혹은 ‘장바위’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장바위’의 ‘장’은 將 또는 長을 뜻할 것으로 추정되나, 여기서는 壯으로 쓰고 있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남일하면(南一下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가암리(佳...

  • 장암동 강태숙 가옥(壯岩洞-家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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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장암동에 있는 근대에 건립된 가옥. 2005년 현재 85세인 강태숙에 의하면, 큰아버지(백부)가 산을 지키기 위한 거처(산직집)의 용도로 축조하였고 건축된지는 100여년이 넘었다고 한다. 나지막한 언덕에 위치하며, 서남향을 하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 기타 부속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부엌, 안방, 웃방으로 구성되며 전면으로 반 칸 폭의 툇마루가 설치되어...

  • 장암동 서낭당(壯岩洞-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장암동에 있는 돌탑. 방죽말에서 서낭제를 지내던 돌탑으로, 정월 열 나흗날 동제를 올리던 신당이다. 상당구 장암동 방죽말 용주사 입구에 있다. 장암동 방죽말에서 지내던 동제가 없어진 뒤 용주사에서 매년 정월 열 나흗날 고사를 지낸다. 제수는 삼색과일, 떡, 포, 돼지머리를 마련하여 오후에 약식의 굿 형식으로 고사를 지내고 있다. 돌로 타원형의 탑을 쌓은 후...

  • 장암산소의 뚝심을 닮은 청주의 진산, 우암산(-淸州-鎭山-牛岩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북 청주시 상당구 동편에 위치하는 청주의 진산이며 문화유적의 보고. 청주시의 동편에 위치하는 우암산(牛岩山)[338m]은 청주의 진산(鎭山)으로 청주시의 명암동, 내덕동, 우암동, 수동, 대성동, 문화동, 용암동에 걸쳐 있고 그 지맥이 탑동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해발 338m의 정상을 중심으로 남과 북 3좌의 연봉과 중앙초등학교 동쪽의 당산(唐山)에까지 이르고 있는 산이다. 청...

  • 장암산우암산(牛岩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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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의 우암동, 내덕동, 대성동, 용담동, 명암동에 걸쳐 있는 산. 이 산은 삼국시대에는 백제 상당현의 치소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신라 신문왕 9년(689)에는 우암토성을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은 정상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의 3개 봉우리를 거쳐 남서방향으로 뻗어 내린 서쪽의 능선, 그리고 정상에서 동쪽으로 분기했다가 서쪽의 능선과 거의 평행으로 당...

  • 장언린(張彦隣)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자(字)는 덕부(德夫)이고, 거주지는 청주이다. 아버지는 충좌위(忠佐衛)의 어모장군(禦侮將軍)·부사직(副司直)·장예원(掌隷院)의 판결사(判決事)를 역임한 장근(張瑾)이고, 동생은 장언붕(張彦朋), 할아버지는 지평(持平)을 지낸 장공손(張恭孫)이다. 1546년(명종 1) 소과에 급제하여 생원이 되었고 훈도(訓導)를 지냈다. 1562년에 실시...

  • 장일환(張一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19년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장터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순국한 독립운동가. 1919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활약한 한봉수(韓鳳洙)[1883~1972]로부터 고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부탁받고, 동지들과 상의하여 3월 30일 미원장터의 만세시위를 주도하기로 결의하고 부락민을 동원하였다. 그는 이날 미원장터에서 1천여 명의 시위군중 앞에서 「독립선...

  • 장자골(長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었던 골짜기. ‘장자골’은 ‘장자’와 ‘골’로 분석된다. ‘장자(長者)’는 ‘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이다. 지명에서 ‘장자’는 단독 또는 선행 요소로 매우 빈번히 사용되니, ‘장자’·‘장자거리’·‘장자고개’·‘장자곡’·‘장자골’·‘장자논’·‘장자동’·‘장자리’·‘장자못’·‘장자물’·‘장자바우’·‘장자방죽’·‘장자밭’·‘장자불’·‘장자산’·‘...

  • 장자납(長者-)장자늪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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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촌동에 있는 늪. ‘장자늪’은 ‘장자’와 ‘늪’으로 분석되는데, ‘장자(長者)’는 ‘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이다. 지명에서 ‘장자’는 단독으로, 또는 선행 요소로 매우 빈번히 사용된다. ‘장자’·‘장자거리’·‘장자고개’·‘장자곡’·‘장자골’·‘장자논’·‘장자동’·‘장자리’·‘장자못’·‘장자물’·‘장자바우’·‘장자방죽’·‘장자밭’·‘장자불’·‘장자산’...

  • 장자늪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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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촌동에 있는 늪. ‘장자늪’은 ‘장자’와 ‘늪’으로 분석되는데, ‘장자(長者)’는 ‘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이다. 지명에서 ‘장자’는 단독으로, 또는 선행 요소로 매우 빈번히 사용된다. ‘장자’·‘장자거리’·‘장자고개’·‘장자곡’·‘장자골’·‘장자논’·‘장자동’·‘장자리’·‘장자못’·‘장자물’·‘장자바우’·‘장자방죽’·‘장자밭’·‘장자불’·‘장자산’...

  • 장자늪 설화(-長者-說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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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늪의 형성 및 지명유래 전설. 예전에 충청북도 청원군 강내면 신촌리(지금의 흥덕구 신촌동)에 장자늪으로 불리는 못이 있다. 옛날, 이곳에 천석의 부호가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장자는 인색하기 이를 데 없어 늘 마을 사람들로부터 빈축의 대상이 되었다. 며느리는 이제는 좀 이웃에게 나누어 적선하기를 권했으나 그럴 때마다 장자는 호통을 쳤다. 어느 날 스님 한 분이 시...

  • 장재늪장자늪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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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촌동에 있는 늪. ‘장자늪’은 ‘장자’와 ‘늪’으로 분석되는데, ‘장자(長者)’는 ‘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이다. 지명에서 ‘장자’는 단독으로, 또는 선행 요소로 매우 빈번히 사용된다. ‘장자’·‘장자거리’·‘장자고개’·‘장자곡’·‘장자골’·‘장자논’·‘장자동’·‘장자리’·‘장자못’·‘장자물’·‘장자바우’·‘장자방죽’·‘장자밭’·‘장자불’·‘장자산’...

  • 장전(長田)긴밭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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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성화동에 있는 마을. ‘긴밭재’는 1차적으로 ‘긴밭’과 ‘재’로 분석된다. ‘긴밭’은 다시 ‘긴’과 ‘밭’으로 나뉜다. ‘긴-’은 ‘길다[장(長)]’의 관형형이니, ‘긴밭’은 ‘길게 늘어진 밭’으로 풀이된다. 또한 ‘재’는 ‘고개’이니, ‘긴밭재’는 ‘길게 늘어진 밭에 있는 고개’로 해석된다. 고개가 기다란 밭과 연결되어 그 고개를 그냥 ‘긴밭재’라 부른...

  • 장터(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에 있는 남주동시장의 옛 이름. ‘새장터’는 남주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같은 구역 안에 있던 ‘장터’에서 이전하여 새로운 ‘장터’가 조성되자 그 지역을 ‘새장터’라고 한 것이다. ‘새장터’가 생기자 이전하기 전의 ‘장터’는 자연스럽게 ‘구장터’가 되었다. 구장터는 석교정에 있었으나 1906년 대홍수로 없어졌다. ‘구장터’ 대신에 남문로 남단의 무...

  • 장학회(獎學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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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이나 재단법인 또는 사단법인으로서 학자금, 장학금의 보조나 지급을 목적으로 하는 공익법인. 공익법인은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의거 설립된 재단 또는 사단으로 사회일반의 이익에 공여하기 위하여 학자금, 장학금, 연구비의 보조나 지급 또는 학술·자선에 관한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 법인을 의미한다. 2005년 3월 현재 충청북도 청주시에 15개 재단법인...

  • 재경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과 흥덕구 남촌동에 있는 골짜기. ‘재경골’은 전국적으로 매우 흔한데, 두 가지 다른 어원과 관련된다. 첫째는 ‘재궁이 있던 골짜기’를 뜻한다. ‘재궁(齋宮)’은 ‘재실(齋室)’과 같은 말로, ‘제사를 지내려고 지은 집’을 말한다. 이런 곳은 대개 ‘재궁곡’·‘재궁촌’·‘쟁골’이란 이름도 함께 쓰이며, 실제로 재실이 있다. 둘째는 ‘경치가 아름다운 골...

  • 재너머(현암동)(-玄岩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현암동에 있는 마을. ‘재너머’의 ‘재’는 고개이다. 마을이 고개너머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라기 맞은 편에 있는 마을로, 청주가로수길을 따라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 방향으로 가다가 휴암과 강촌교회를 지나면 강촌에 이른다. 여기서 좌측으로 유성길을 지나 수의를 가면 현암에 이른다. 지금은 몇가구가 살고 있는데, 진다리, 고라기, 재너머로 된 마을이다....

  • 재떨이유정리(有亭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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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마을. 이정골은 용정동 서쪽에 있는 마을로 유정골(有亭골), 유정리(有亭里)라고도 한다. 유정골과 유정리의 유정은 유정(有亭)으로 이해된다. 마을에 실제 느티나무 정자가 있으므로 유정이라는 이름이 근거가 있는 셈이다. 유정골은 마을에 느티나무 정자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정리(有亭里)는 골을 리로 한자화한 지명이다. 이정골은 유정골의 변...

  • 재떨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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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마을. ‘재떨이’는 전국에서 유일한 지명이기 때문에 어원 파악이 매우 어렵다. 다만 ‘고개’를 뜻하는 ‘재’와 관련된 지명으로 추정된다. ‘재’ 또는 ‘잿’은 ‘재건너’·‘재깟’·‘재껄’·‘재끝’·‘재너머’·‘재뜸’·‘재미’·‘재밑’·‘잿고개’·‘잿골’·‘잿들’·‘잿말’ 등 많은 지명을 만들어낸다. ‘재떨이’는 소리나는 대로 적은 어형으로,...

  • 잼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에 있는 마을. ‘잼말’은 ‘잿말’이 자음동화에 의해 변형된 이름으로서 ‘잳말’을 거쳐 ‘잼말’이 된다. ‘잿말’은 ‘재(고개)’와 ‘말(마을)’이 사이시옷을 매개로 연결된 어형이니 ‘고개에 있는 마을’로 해석된다. 마을이 고개 아래에 형성되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비룡봉(飛龍峰)[76m], 또는 비루봉)의 남동쪽 골짜기에 위치한다. 마을의...

  • 잿말잼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에 있는 마을. ‘잼말’은 ‘잿말’이 자음동화에 의해 변형된 이름으로서 ‘잳말’을 거쳐 ‘잼말’이 된다. ‘잿말’은 ‘재(고개)’와 ‘말(마을)’이 사이시옷을 매개로 연결된 어형이니 ‘고개에 있는 마을’로 해석된다. 마을이 고개 아래에 형성되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비룡봉(飛龍峰)[76m], 또는 비루봉)의 남동쪽 골짜기에 위치한다. 마을의...

  • 잿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과 용담동 사이에 있는 마을. ‘잿말’은 ‘재’와 ‘말’이 사이시옷을 매개로 결합된 어형이다. ‘잿말’은 네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는 ‘재’를 ‘고개’로 보아, ‘고개 밑에 있는 마을’로 푼다. ‘영촌(嶺村)’·‘산치(山峙)’·‘치동(峙洞)’·‘현촌(峴村)’·‘티촌’이란 이름도 함께 쓰인다. 둘째는 ‘재’를 ‘잣’의 변화형으로 보아, ‘성 안에 있는...

  • 잿바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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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미평동에 있는 마을. ‘잿바티’는 미평동에서 산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밑에 조성된 마을이다. 그렇다면 ‘잿바티’는 ‘잿밭에’의 변화형으로 추정된다. 즉 ‘잿밭에’에서 부사격 조사 ‘-에’가 ‘-이’로 바뀌어 ‘잿바티’로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잿밭’은 ‘재’와 ‘밭’이 사이시옷을 매개로 결합된 어형이니, ‘고개 아래의 밭’을 뜻한다. 그렇다면 ‘잿밭...

  • 저수지(貯水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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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수도와 발전 및 농업용수 공급 등을 위해 하천의 물을 일시적으로 모아 두는 못. 저수지의 위치는 어느 정도 댐의 위치로 좌우되지만 가능하면 댐은 낮고 작으나 대용량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좋다. 그 밖에 댐 지점의 지질과 축조 재료의 구득이 용이한가 등도 문제가 된다. 저수지의 밑바닥 토지는 물을 통과시키지 않는 지질이 효과적이다. 상수도용 저수지의 목적은 하천을 수원으로 하는 상...

  • 적암바위(赤岩-)자치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는 바위. ‘자치배’는 ‘자치’와 ‘배’로 분석된다. ‘자치’는 ‘자치골’·‘자치내’·‘자치동’·‘자치미’·‘자치밭’·‘자치암’·‘자치울’ 등에서 발견되는데, 그 어원을 알기 어렵다. 다만 음으로 보아, ‘자초’와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자초’는 ‘자초들’·‘자초바위’·‘자초산’ 등에서 발견되는데, 식물 ‘자초(紫草)’와 관련된 유래담...

  • 전 운호학원(雲湖學園)서원학원(西原學園)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모충동에 있는 학교법인. 서원학원의 교육이념은 2012년 3월 27일 부임한 손용기 이사장이 합리적 혁신, 사랑과 행복, 최선의 노력으로 제정하여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1954년 7월 22일 설립자 강기용(康基用)[1917~1978]에 의해 재단법인 신라학원이 설립인가되어 초대 이사장에는 정현모가 취임하였다. 1954년 9월 1일 신라여자고등공민학교 설...

  • 전교조 충북지부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북지부(全國敎職員勞動組合忠北支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교직원 권익단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충청북도 지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 확립과 교육민주화 실현을 위해 단결하며, 교직원의 사회·경제적 지위향상과 민주적 권리의 획득 및 교육여건 개선에 모든 노력을 다한다. 또한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서 자주적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에 앞장서며 자유·평화·민주주의를 사랑하는 국내 여러 단체 및 세계교원단체와 연대한다. 1986년...

  • 전교조청주지회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청북도지부 청주지회(全國敎職員勞動組合忠淸北道支部淸州支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교직원 권익단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북지부의 청주시 지회. 1987년 ‘민주교육을 위한 충북교사협의회(충교협)’을 거쳐 민족·민주·인간화교육과 참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1989년 5월 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1989년 6월 10일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북지부가, 6월 22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청북도지부 청주지회가 창립되었다. 1987년 11월 21일 민주교육을 위한...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북지부(全國敎職員勞動組合忠北支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교직원 권익단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충청북도 지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 확립과 교육민주화 실현을 위해 단결하며, 교직원의 사회·경제적 지위향상과 민주적 권리의 획득 및 교육여건 개선에 모든 노력을 다한다. 또한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서 자주적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에 앞장서며 자유·평화·민주주의를 사랑하는 국내 여러 단체 및 세계교원단체와 연대한다. 1986년...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청북도지부 청주지회(全國敎職員勞動組合忠淸北道支部淸州支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교직원 권익단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북지부의 청주시 지회. 1987년 ‘민주교육을 위한 충북교사협의회(충교협)’을 거쳐 민족·민주·인간화교육과 참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1989년 5월 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1989년 6월 10일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북지부가, 6월 22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청북도지부 청주지회가 창립되었다. 1987년 11월 21일 민주교육을 위한...

  • 전국어린이집연합회 충청북도지부(全國-聯合會忠淸北道支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는 영유아 교육단체. 어린이집의 정체성과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민간보육운동의 활성화와 보육활동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민간보육시설의 질적인 향상을 위해 시설간 교류와 연합 활동, 전국어린이집연합회와의 연대활동을 통하여 민간 보육시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90년 7월 청주시 놀이방 협의회로 발족하고 1...

  • 전국주부교실중앙회 충청북도지부(全國主婦敎室中央會忠淸北道支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여성소비자단체 전국주부교실의 충청북도 지부. 경제사회의 변화에서 오는 생활양식과 생활관, 가정관 등의 변화를 포함한 현 상황에 대응해서 가정인, 직업인, 사회인으로서의 주부들이 인간적인 유대를 기초로 한 상호학습(주부교실)을 통해서 연대의식과 프론티어로서의 봉사정신을 함양함으로써 주부의 사회성을 개발하고 가정과 지역사회의 복지향상에 기여함과 동시에 사회의 동향과 그 속에서 감당해야...

  • 전병화 처 김씨(全炳華妻金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의 열녀.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아버지는 김계선(金啓先)이고, 남편은 성산전씨(星山全氏) 전병화(全炳華)이다. 1911년에 출생하였으며 일찍 아버지를 여의자 홀로 남으신 어머니를 위하여 효를 다하였다. 16세에 성산인(星山人) 전병화에게 출가하여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남편이 일본에 갔다 와서 병을 얻어 여러 달 고생을 하였는데 부인은 지성으로 약을...

  • 전의현(全義縣)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청주(淸州) 속현(屬縣)의 하나. 백제 때 구지현(仇知縣)으로 불리다가 신라 경덕왕 때 금지현(金池縣)으로 고쳐 불렀으며, 웅주(熊州) 대록군(大麓郡)[충청북도 천안시 목천면]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 때 전의현으로 고쳐 청주(淸州)의 속현(屬縣)으로 삼았다. 1395년(태조 4) 처음 감무(監務)를 두어 다스리게 하였으며, 1414년(태종 14) 연기(燕岐)를 합하여 전기...

  • 전절군(全節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려 전기 절도사의 칭호. 995년(성종 14) 전국의 12개 주에 절도사(節度使)를 두면서 청주에도 절도사를 두게 되었다. 그때 청주의 절도사를 전절군(全節軍)이라 부르고, 중원도(中原道)에 소속하게 하였다. 1012년(현종 3)에 이르러서 12주의 절도사를 폐지하니, 청주에도 역시 절도사가 폐지되면서 전절군이라는 칭호도 사라지게 되었다. 고려 성종(成宗) 대에 12주(州)를 설...

  • 전주이씨 영모당(全州李氏-永慕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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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휴암동에 있는 전주이씨(全州李氏) 문중의 사당. 1634년(인조 12)에 세운 전주이씨 문중의 사당(祠堂)이다. 영모당(永慕堂)이라는 명칭은 “후손들에게 선인의 글을 익히고 선인의 예를 배워 행하며 ‘추원영모(追遠永慕)’하는 정성으로 대대손손 효도를 기리게 한다”는 의미에서 따왔다고 한다. 전주이씨 경녕군(敬寧君) 후손의 세거지(世居地)였던 상당구 용정동에...

  • 절도사 구완식 불망비(節度使具完植不忘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는 구완식의 비석. 조선 고종대에 충청절도사(忠淸節度使)를 지낸 구완식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1893년에 세운 비석이다. 상당구 우암동 우암산 순회도로 청주대학교 부근의 속칭 비선거리에 있는 8기의 비석 중 왼쪽부터 세 번째에 있다. 사각의 화강암 받침돌 위에, 높이 132㎝, 폭 45㎝, 두께 25㎝의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 점운(點雲)점운리(點雲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장성동에 있는 마을. 점운리(占雲里)는 옛날에 운하(雲霞: 구름과 안개)가 늘 끼어 있어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하나 그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이곳은 장성동의 북동부에 위치하며, 점운리의 동쪽에는 윗궁뜰, 북쪽에는 아래궁뜰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교통로는 청남로(17번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가다가 하미평에서 남동쪽으로 갈라지는 길(미장남로)을 따라 들...

  • 점운리(點雲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장성동에 있는 마을. 점운리(占雲里)는 옛날에 운하(雲霞: 구름과 안개)가 늘 끼어 있어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하나 그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이곳은 장성동의 북동부에 위치하며, 점운리의 동쪽에는 윗궁뜰, 북쪽에는 아래궁뜰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교통로는 청남로(17번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가다가 하미평에서 남동쪽으로 갈라지는 길(미장남로)을 따라 들...

  • 접시꽃 당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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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종환[1954~ ]의 초기시. 「접시꽃 당신」은 시인 개인의 슬프고 아픈 경험을 형상화한 시이다. 시는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다’는 고통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곧 다가올 아내의 죽음에 대한 부정과 그 죽음에 대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죄책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시인은 슬픔과 아픔과 절망 속에 빠져들어가지 않고 한 가닥 희망을 건져올리려 한다. 시인은 지난 일을 회고하고...

  • 정검 처 지씨(鄭儉妻池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중기의 열녀.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아버지는 장령(掌令)을 지낸 지전(池筌)이고, 남편은 통정대부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추증된 충의위(忠義衛) 정검(鄭儉)이다. 부인은 하늘로부터 타고난 효성스러운 성품을 지녔으며, 하동정씨(河東鄭氏) 정검에게 시집을 가서는 지극한 정성으로 시부모님을 섬겼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왜적을 피해 딸과 함께 마을 뒤 응봉산(鷹峯山)으로 피신하...

  • 정기(鄭磯)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자견(子堅)이고, 거주지는 청주(淸州)이다. 아버지는 중훈대부로 개령현감을 지낸 정인형(鄭仁亨)이고, 할아버지는 정호(鄭浩)이며, 아들로는 지평(持平)을 지낸 정사현(鄭思顯)이 있다. 1507년(중종 2)에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진사(進士)가 되었으며 성균관(成均館)에 입학하였다. 성균관에 있을 때 유생들을 이끌고 요망한 중...

  • 정당(政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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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정한 정치이상의 실현을 위해 정치권력의 참여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단체. 오늘날 민주정치는 정당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정당정치를 한다. 대의제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정당이 필수불가결한 존재이고 국가와 시민사회를 연결시키는 매개역할을 수행한다. 정당은 선거에 후보자를 내세워 당선시킴으로써 공직에 앉히고 권력을 획득하려고 노력하는 집단이다. 정당은 공직을 차지한 원내...

  • 정렴(鄭𥖝)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중기의 유의(儒醫). 본관은 온양(溫陽)이며, 자는 사결(士潔), 호는 북창(北窓)이다. 내의원제조(內醫院提調) 정순붕(鄭順朋)의 아들이다. 1537년(중종 32)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또한 음률에 밝고 현금에도 정통하여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로서 가곡의 장단을 지도하는 한편, 천문과 의술에도 이치가 밝아 관상감(觀象監)과 혜민서(惠民署)의 교수를 역임했다. 그 후에 포천현...

  • 정말궝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에 있는 마을. 현재의 영운동 2통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는 영운동에서 금천동으로 넘어가는 소로에 있었다고 한다. 정말이라고도 한다. 궝말의 ‘궝’은 중세국어 ‘구 (구석)’으로까지 소급한다. ‘구 ’이 ‘구억’으로 변한 뒤 축약되어 ‘궉’이 되고 이어서 ‘말’의 ‘ㅁ’에 동화되어 ‘궝이 된 것이다. 구 〉구억〉궉〉궝의 변천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 정무섭(鄭武燮)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19년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장터의 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30일 청원군 미원 장터에서 1천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때 인근의 미원 헌병주재소에서 헌병이 출동하여 주도자를 연행하여 갔다. 이에 격분한 그는 군중들과 함께 주재소로 쇄도하여 투석전을 전개하며 격렬하게 항의하였다. 사태의 위급함...

  • 정문연최적 충효양전문(延最績忠孝兩全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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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에 위치한, 연최적(延最績)의 충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문. 연최적은 사헌부감찰로 재직 중 사직하였다가 다시 기용되었으나,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파직되었다. 1693년에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위의 부당성과 화를 당한 서인(西人)들의 용서를 구하는 여섯 가지 항목의 상소를 올렸다가 일곱 번의 심한 고문을 받아 옥사하였다. 갑술환국 이...

  • 정봉동(丁峯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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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1동에 속하는 법정동. 지형이 고무래 ‘정’(丁)자처럼 생겨서 정봉(丁峰)이라고 하였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이하면(西江內二下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학동리(鶴東里) 일부를 병합하여 정봉리(丁峰里)라 명명하고 강내면(江內面)에 편입되었다. 1987년 1월 1일 정봉리가 청주시에 편입되어 강서1동 관할의 법정동이 되...

  • 정봉역(丁峰驛)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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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정봉동에 있었던 역. 정봉이라는 이름은 지형이 고무래 정(丁)자처럼 되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 역은 충청북도 청원군 강내면 정봉리에 있는 충북선의 기차 정거장으로 1921년 11월 1일에 준공 개통되었다. 원래 충북선은 연기군의 조치원에서 제천시 봉양까지 연결한 산업철도이다. 즉, 충청북도의 북부 지방과 강원도 남부 지방에서 많이 산출되는 석탄과...

  • 정북동(井北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근장동에 속하는 법정동. 정상리(井上里)에 있는 ‘큰샘’ 북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정북리라 하였다. 본래 청주군 북강내일면(北江內一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정상리(井上里) 일부와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의 정북리(井北里)를 병합하여 정북리(井北里)라 하여 북일면(北一面)에 편입되었다. 1990년 8월 1일 정북리도 청주시에 편입...

  • 정북동 보호수(井北洞保護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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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상동에 있는 버드나무. 수령은 약 150년 정도이고 높이는 약 25m, 근원경은 5.6m 정도이다. 상당구 정상동 논 가운데 있는 버드나무로 자동차로는 정북에서 철도로는 오근장역에서 가깝다. 이곳을 경지 정리할 때 베어져 없어질 수도 있는 것을 살려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82년에 청주시에서 보호수로 지정하고 마을 나무로 관리하고 있다. 나무는 논에서...

  • 정북동들머그때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북동에 있는 들. 일명, 정북지구들 또는 정북동들이라고도 하며, 머그때는 ‘머굿대’, ‘머귀대’, ‘동죽(桐竹)’, ‘오죽(梧竹)'이라고도 한다. 머굿대는 토성리 남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머굿대는 ‘머구’와 ‘대’가 합쳐진 말이다. ‘머구’는 오동나무를 뜻하는 ‘머귀’의 변형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머귀’, ‘머구’, ‘머구나무’를 포함하는 지명은...

  • 정북동토성(淸州井北洞土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북동에 있는 삼국시대 성지. 청주 정북동 토성은 미호천변 평야의 중심에 자리한 평지형 토성이다. 정확한 축조연대를 알 수 없으나, 다만 1744년(영조 20)에 상당산성의 승장으로 있던 영휴(靈休)가 쓴 『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신라 말에 궁예(弓裔)가 양길(梁吉)의 부하로 있다가 군사를 나누어 동쪽을 공략...

  • 정북지구들머그때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북동에 있는 들. 일명, 정북지구들 또는 정북동들이라고도 하며, 머그때는 ‘머굿대’, ‘머귀대’, ‘동죽(桐竹)’, ‘오죽(梧竹)'이라고도 한다. 머굿대는 토성리 남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머굿대는 ‘머구’와 ‘대’가 합쳐진 말이다. ‘머구’는 오동나무를 뜻하는 ‘머귀’의 변형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머귀’, ‘머구’, ‘머구나무’를 포함하는 지명은...

  • 정사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정동에 있었던 마을. ‘정사간’은 ‘정’과 ‘사간’으로 분석된다. 여기서 ‘정’은 ‘진주정씨(晉州鄭氏)’를 말한다. ‘사간(司諫)’은 ‘사간원(司諫院)의 종3품 벼슬로, 1466년(세조 12)에 지원사(知院事)를 고친 이름’이다. 이 곳은 조선 성종 때 대사간(大司諫: 정3품)을 지낸 정설(鄭泄)이 낙향한 마을로, ‘정설’과 ‘대사간’을 따서 ‘정사간’으...

  • 정상(井上)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마을. 일명 ‘삼위’라고도 한다. ‘삼위’는 ‘샘 위’의 뜻이다. 마을이 샘 위쪽에 있어서 붙어진 이름이다. 그러나 지금은 샘이 있지 않다. 샘의 위쪽에 있는 마을은 마을을 지시하는 ‘뜸’을 첨가하여 ‘샘위뜸’이라고도 한다. 정상(井上)은 ‘샘 위’에 대한 한자지명이다. 흥덕구 수의동 동부 가마골 동쪽 끝에 있는 마을로, 북쪽에 청주가로수길이...

  • 정상동(井上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근장동에 속하는 법정동. 돌꼬지(石花)마을에 있는 큰샘의 위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인근의 정하동(井下洞)과 정북동(井北洞)도 그 큰샘을 기준으로 한 위치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북강내일면(北江內一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봉정리(鳳亭里)와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의 정북리(井北里) 일...

  • 정상동 돌꼬지 - 개관(井上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행정명은 청주시 상당구 오근장동 8통이고, 법정명은 청주시 상당구 정상동 돌꼬지이다. 정상동은 본래 청주군(淸州郡) 북강내일면(北江內一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1914년 일제(日帝)가 행정 구역을 통폐합하면서 봉정리(鳳亭里)와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의 정북리(井北里) 일부를 병합하여 정상리(井上里)라 명명하고 북일면(北一面)에 편입하였다. 정상리(井上里)는 이 지역이 '큰샘...

  • 정상동 돌꼬지 - 교육·문화(井上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시대 후 근대 교육을 받기 시작한 세대는 청주대성학교와 북일초등학교를 다녔다. 북일초등학교는 인근 학생들이 모두 다녀서 한 때 학생수가 2,000여 명이나 되어 오후반이 개설될 정도였다. 그러나 현재는 주민이 줄어들어 학생수가 100여 명 정도라서 폐교된다는 말이 있다. 현재 돌꼬지마을 아이들은 새터초등학교를 다닌다....

  • 정상동 돌꼬지 - 민간신앙(井上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돌꼬지[石花] 마을에는 용출수인 우물이 마을 입구에 있다. 이 우물로 인해 정상동, 정하동, 정북동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할 정도로 인근에서는 유명한 우물이다. 실제로 농업용수가 개발되기 전까지 이 물은 농업용수로, 식수로도 쓰여 주민들의 생활을 유지시켜 주는 우물이었다. 이런 고마운 우물에 동네 주민들은 샘제(용왕제)를 지낸다. 돌꼬지 동제는 세 군데서 지냈다. 우선 돌꼬지...

  • 정상동 돌꼬지 - 민요(井上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이거리 저거리 닷거리 / 천두 만두 저만두 쫙 벌려 소양강 / 오리진치 살어육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우리 애기 잘두 잔다 검둥개도 잘두 잔다 흰둥이도 잘두 잔다 자장자장 자장 자장 앞집 강아지 잘두 잔다 (아이를 눕히거나 무릎에 올려 앉고 ) 엄마 손은 약손이고 네 배는 똥배 썩 나려 가그라 떨크덩 떨크덩 찧는 방아 언제나 다 찧고 밤마실 가냐 시어머니 시집살이 할제는 좋기두(싫기...

  • 정상동 돌꼬지 - 산업·교통(井上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돌꼬지마을 교통은 편한 편은 아니다. 대중교통편인 시내버스는 하루 몇 번 운행되지 않는데 이는 대부분 시내버스 종착점이 밑에 마을인 정하동이기 때문이다. 마을 앞까지 오는 시내버스 첫차는 여섯 시에 있고, 막차는 열한시에 있다 일제시대 때는 마을에 국철이 개통되었고, 청주역이 생기면서 1980년대 철도 복선공사로 인해 마을 앞 도로를 넓힐 수 없어 1차선 도로가 현재까지 사용된다...

  • 정상동 돌꼬지 - 생활상(井上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청주시에 편입된 동이지만 마을의 형태는 농촌의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생활의 흐름도 농사일에 맞춰 진행된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농사 준비해서 가을걷이로 마무리한다. 특별히 특용작물을 재배하지도 않기 때문에 겨울에는 한가로이 쉬면서 지낸다. 동네에 인구밀집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생필품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없어 하루에 한 번 정도 들어오는 이동식 슈퍼인 트...

  • 정상동 돌꼬지 - 세시풍속(井上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이날은 정월 내 띄우던 연을 날려버리는 날이다. 연줄에 솜방망이를 달아 솜방망이에 불을 피워 띄우면 어느 정도 날아가다가 대추나무에 걸린다. 이를 보고 “대추나무 연 걸린 듯하다”라고 했다. 정월대보름에는 열 나흗날 농사 떡(고사떡)을 해놓는다. 돌꼬지마을 정월고사는 동제를 지낸 다음 날부터 지낼 수 있다. 산제가 열사흘이면, 열 나흗날 떡을 해서 고사를 올린다. 한 해 동안 집안...

  • 정상동 돌꼬지 - 자연환경(井上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정상동 돌꼬지마을은 들판에 위치한 마을이다. 마을 앞 들판은 농지정리가 잘 되어 경작하기 편하게 되어 있고, 마을 앞으로 무심천(無心川)이 흐르고, 북쪽으로청주 정북동 토성이 자리 잡고 있고, 마을 입구에 낮은 야산이 위치한다. 이 산에 돌꼬지의 유래가 된 하얀 돌이 있었다고 한다....

  • 정상동 돌꼬지 - 통과의례(井上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현재 마을에서 출산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출산을 할 연령대의 주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출산 풍속이 바뀌어 조산원이나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 제보자들은 모두 자신의 집에서 출산을 했다. 산모가 진통을 시작하면 방에 미리 추려 놓은 짚을 깔거나 회푸대 종이를 깔아 삼자리를 마련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산파가 탯줄을 자르는데, 아이의 배꼽에서 넉넉하게 한 뼘 되...

  • 정세윤(鄭世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세조(世祖)대 영의정까지 오른 명신 정인지(鄭麟趾)의 후손이다. 정행민(鄭行旼)이라고도 한다. 동생 정계윤(鄭季胤) 또한 무신란에 가담하여 참형되었다. 양성현에 거주하던 양반으로 무신란의 청주성 장악에 가담한 인물이다. 정세윤은 청주성 장악을 위하여 박필현(朴弼顯), 안엽(安燁)과 함께 사람을 모았으며, 3월 15일 청주성 장악에도 적극...

  • 정시선(鄭是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아버지는 1657년(효종 8)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정랑을 지낸 정재해(鄭載海)이고, 할아버지는 정만화(鄭萬和), 증조할아버지는 정광성(鄭廣成)이며, 외할아버지는 김일(金逸)이다. 아들은 정석조(鄭錫祚), 정석범(鄭錫範), 정석년(鄭錫年)이 있다. 음관(蔭官)으로 청주목사를 지냈다. 1696년(숙종 22) 전국적으로 큰 흉년이 들었을 때...

  • 정시엽(鄭始燁)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중기의 효자.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부모가 병을 앓을 때에 의원이 말하기를 잉어를 써야 한다 하여 겨울날 못에 나가 울었더니 얼음을 뚫고 잉어가 나와 약으로 쓰니 효과를 거두었다. 또 어머니가 병을 앓아 잉어가 생각난다 하니 크게 가물어 물이 말라 구하기가 어려웠다. 하늘을 보고 울자 갑자기 큰 비가 내려 돌길에 두 마리의 잉어가 튀어 나왔다. 거두어 약으로 쓰니 효과를...

  • 정신보건복지청원군 정신보건센터(淸州市上黨精神健康福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에 있는 정신건강증진을 위한 기관. 만성정신장애인의 사회복귀와 재활, 삶의 질 향상과 지역 주민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하여 청원군 보건소와 충북대학교병원이 협력하여 설립하였다. 1999년 5월에 청원군 보건소와 충북대학교병원이 협력하여 개소하였다. 청주시 상당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만성정신보건사업, 아동·청소년 정신보건사업, 자살예방사업 등을 실시하고 있...

  • 정오(鄭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려 후기의 문신. 청주사람으로서 본관은 청주이며, 자(字)는 사겸(思謙), 호는 설헌(雪軒)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장경공(章敬公) 정해(鄭瑎)이고, 아버지는 청하군(淸河君) 정책(鄭幘)이며, 동생은 좌사간(左司諫) 정포(鄭誧)이다. 과거에 급제하고, 1330년(충혜왕 즉위년)에 성균관승(成均館丞)을 지내었으며, 이어 감찰장령(監察掌令)이 되었으나, 내인 최안계(崔安桂)가 “정오(...

  • 정월고사(正月告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정월 보름에 지내는 제사. 정월고사의 내용은 일정치 않다. 마을마다 또 가정마다 조금씩 다르다. 흥덕구 수의동 강촌마을에서는 고사를 지내기 위해 팥 시루떡과 쌀을 준비한다. 시루떡 가운데에 쌀을 담은 주발을 올리고 주발에 초를 꽂아 불을 밝힌 다음 고사 상을 성주 아래에 놓고 부부가 같이 지낸다. 상당구 월오동 서원마을에서는 백설기를 쪄서 그 안에 쌀을 담은 사발에 촛불을 밝히고...

  • 정위상(鄭渭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후기의 효자. 판서 정사호(鄭賜湖)의 증손으로, 사인(士人) 정의창(鄭儀昌)의 아들인데 그의 모친 채씨는 효부로 정려(旌閭)되었다. 정성과 공경으로 부모를 섬기고 부친 병환에 손가락을 잘랐으며, 상고(喪故)에 죽은 이를 슬퍼하고 그리워함이 도를 넘고 여막(廬幕) 삼년간 주야로 울며 조밥과 맨소금으로 집상(執喪)하더니 복상(服喪)이 끝나고 쓰러졌다. 모자 양대의 효행이 조정에 알...

  • 정응구(鄭應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의 충신. 임진왜란 때 왜군이 청주지역을 지날 때 왜장을 사살하여 그 목을 용만(龍灣) 행재소(行在所)에 바쳤는데, 이것이 왜장을 목 베인 처음 일이라 선조(宣祖)는 매우 기뻐하였다. 그 후 종군하여 순국하니 명나라 조정에까지 알려졌으며, 선조대에 오근촌(梧根村)에 충신의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 정의(鄭顗)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려 전기의 무신. 본관이 청주(淸州)이며, 어릴 때 이름은 준유(俊儒)이다. 그의 아들은 정현(鄭儇)으로 벼슬이 감찰어사에 이르렀으나, 일찍 사망하였다. 고종(高宗) 때 서경 어사대리(御史臺吏), 섭중낭장(攝中郞將), 장군, 시랑(侍郞), 대장군(大將軍)을 지냈다. 청주사람으로 1217년(고종 4) 어사대(御史臺)의 관리로서 서경을 책임지고 있었는데, 거란 병이 침입하여 서경병마...

  • 정의창 처 채씨(鄭儀昌妻蔡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시대 효녀이며 효부. 사인(士人) 정의창(鄭儀昌)의 처로서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아버지의 병에 단지(斷指)한 일이 있었고, 출가한 뒤 병든 시어머니를 젖을 짜 봉양하여 수명을 연장하였다. 이 행위로 정려(旌閭)되었다....

  • 정종현(鄭宗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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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의 무관. 조선 후기 충청병영의 영장을 지낸 무관이다. 정종현(鄭宗鉉)은 고종 때 충청병영(忠淸兵營)의 영장(營將)을 지냈다. 그는 성품이 온화하고 청렴하였으며 공평하게 일처리를 하여 청주 백성들의 신망을 많이 받았다. 그가 다른 곳으로 이임할 때는 청주의 백성들이 매우 애석하게 여겨 가는 길을 막기까지 하였다. 그의 선정(善政)을 기리기 위해 1864년에 선정비를 세웠다...

  • 정지신 처 이씨(鄭之信妻李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 선조대의 열녀. 열녀 이씨는 정지신(鄭之信)의 부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을 만나자 자결하여 정려가 내려졌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호서읍지(湖西邑誌)』,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이씨의 열행이 기록되어 있다. 남편 정지신도 이름난 효자로 청주목 남이면 노천동리에 효자 정려를 건립했다. 현재 정려는 모두 남아있지 않다....

  • 정진교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돌다리 남석교(-南石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의 육거리시장 내의 도로 지하에 매몰되어 있는 돌다리 남석교(南石橋)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재래시장인 육거리시장 내의 도로 지하에 매몰되어 있는 돌다리로서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조선시대 이전의 다리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석교이다. 옛 청주읍성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성안길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무심천(無心川)을 만나게 되는데...

  • 정진원터(情盡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시대의 숙박시설 정진원(情盡院)이 있던 터 원(院)이란 전국 각 역(驛)에 둔 숙박시설로 정진원(情盡院)이 이에 해당한다. 원의 설치목적은 공무연락자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공적임무를 띤 사람에게 편의를 제공하는데 있었다. 정진원은 청주에서 회인-보은- 문의-부강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숙박시설이었다. 정진원은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남쪽 남석교 건너에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

  • 정총(鄭憁)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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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말·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만석(曼碩), 호는 복재(復齋)이다. 정당문학(政堂文學) 정추(鄭樞)[일명 公權]의 아들이며, 조선개국공신 정탁(鄭擢)[1363~1423]의 형이다. 1376년(우왕 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19세로 춘추관검열이 되고, 대간·응교·사예를 거쳐 대호군에 이르고, 1389년(공양왕 1) 병조판서에 승진되었으며, 1391년 이조판서를...

  • 정춘서(鄭春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의병항쟁을 하다가 피체되어 순국한 독립운동가. 1907년 4월 초에 고향 청주에서 한봉수(韓鳳洙)[1883~1972]와 함께 의병으로 봉기하여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하였다. 5월 10일(음력)에는 괴산군 서면 모래재[沙峙]에서 한봉수와 함께 일본 수비대 2명이 우편물을 호위하며 통과하는 것을 확인하고 습격하여 일본군 2명을 사살하고, 다수의 물품을 노획하였다. 한편 청주군 북강...

  • 정춘서(鄭春西)정춘서(鄭春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의병항쟁을 하다가 피체되어 순국한 독립운동가. 1907년 4월 초에 고향 청주에서 한봉수(韓鳳洙)[1883~1972]와 함께 의병으로 봉기하여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하였다. 5월 10일(음력)에는 괴산군 서면 모래재[沙峙]에서 한봉수와 함께 일본 수비대 2명이 우편물을 호위하며 통과하는 것을 확인하고 습격하여 일본군 2명을 사살하고, 다수의 물품을 노획하였다. 한편 청주군 북강...

  • 정치(政治)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국가의 주권자가 그 영토 및 국민을 통치하는 행위, 즉 국가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 지역적으로는 시민에게 삶의 질 향상과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주민참여 속에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고 중앙과의 연계속에서 청주시가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일을 추진하는 일체의 정치적 행위를 의미한다. 흥덕구 송절동의 경사진 지형에서 경사방향을 따라 만든 토광묘는 배수와 묘역의 구획...

  • 정치인(政治人)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정치하는 사람 또는 정계(政界)에서 활약하는 사람. ‘청주의 정치인’이란 청주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정치인을 말할 수도 있고 청주 출신일 수도 있으나 전자로만 한정한다. 또한 직선이냐 간선이냐 하는 문제에선 당연히 직선만으로 한정한다. 예를 들어 시·도교육위원이나 각 기관단체의 위원들 그리고 행정구의 구청장은 제외된다. 또한 지역구의 선거에서 전체로 볼 때 극히 적은 영향력을 행사...

  • 정치화(鄭致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성능(聖能)이며, 호는 기주(棋洲)이고,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5대손으로 형조판서 정광성(鄭廣成)의 아들로, 어머니는 황근중(黃謹中)의 딸이다. 정치화는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鄭太和)의 동생으로 정치적으로는 서인(西人)이다. 부인은 오위장 남정(南瀞)의 딸 의령남씨(宜寧南氏)로 아들을 얻지 못하여 형 정태화의 막내아들 정재륜(鄭...

  • 정탁(鄭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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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자정(子精), 호는 약포(藥圃), 백곡(栢谷)이다. 예천 출신으로 현감 정원로(鄭元老)의 증손자로 정이충(鄭以忠)의 둘째아들이다. 1552년(명종 7) 성균생원시를 거쳐, 1558년 식년문과에 급제, 1565년 정언을 거쳐 예조정랑·헌납 등을 지냈다. 1568년(선조 1) 춘추관기주관을 겸직하고, 『명종실록(明宗實錄)』 편찬에 참여...

  • 정태성(鄭泰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청주 출신의 상공인, 정치인 청주중학교을 거쳐 연희대학 경제과를 졸업하였다. 어릴 때부터 총명한 재질로 사람들의 기대를 모으고, 한때 향토 일간지인 국민일보사에 입사하였다. 제2세 교육을 위해 청주공업고등학교, 청주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뒤 충북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5·16군사혁명 이후 충청북도 민주공화당을 창건하는데 협조하고, 1963년에는 청주에서 제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

  • 정하동(井下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근장동에 속하는 법정동. 정하동(井下洞)은 돌꼬지(石花)마을에 있는 큰샘의 아래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인근의 정상동(井上洞)과 정북동(井北洞)도 그 큰샘을 기준으로 한 위치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북강내일면(北江內一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정상리(井上里) 일부를 병합하여 정하리(井下里...

  •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井下洞磨崖毘盧舍那佛坐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하동 마을 앞 도로변의 바위에 조각된 마애불. 청주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은 문헌기록이 없어 자세한 내력을 알 수 없다. 속칭 돌산으로 불리는 바위산에서 돌출된 판석형의 자연암반에 선각(線刻)으로 조성한 마애불로서 조각양식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며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불상의 윗부분 바위에 보를 끼우기 위한 홈이 파인 점...

  • 정하리 마애비로자나불좌상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井下洞磨崖毘盧舍那佛坐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하동 마을 앞 도로변의 바위에 조각된 마애불. 청주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은 문헌기록이 없어 자세한 내력을 알 수 없다. 속칭 돌산으로 불리는 바위산에서 돌출된 판석형의 자연암반에 선각(線刻)으로 조성한 마애불로서 조각양식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며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불상의 윗부분 바위에 보를 끼우기 위한 홈이 파인 점...

  • 정하역(井下驛)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정하동에 있었던 역. 정하는 ‘큰샘’ 가운데 있는데, 샘의 규모가 크기 때문이고, 이 역이 정하동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충북선 철로가 정하마을에서 정차를 하였던 역으로 동쪽으로는 주중동, 서쪽으로는 무심천(無心川)을 건너 문암동, 남쪽으로는 사천동, 북쪽으로는 정상동과 각각 접하고 있다. 청주역이 내덕동 문화방송 자리에 위치하고 있을 당시 무심천(無心川...

  • 정행민(鄭行旼)정세윤(鄭世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세조(世祖)대 영의정까지 오른 명신 정인지(鄭麟趾)의 후손이다. 정행민(鄭行旼)이라고도 한다. 동생 정계윤(鄭季胤) 또한 무신란에 가담하여 참형되었다. 양성현에 거주하던 양반으로 무신란의 청주성 장악에 가담한 인물이다. 정세윤은 청주성 장악을 위하여 박필현(朴弼顯), 안엽(安燁)과 함께 사람을 모았으며, 3월 15일 청주성 장악에도 적극...

  • 정환범(鄭桓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의열단에 참여하고, 구미 열강을 상대로 외교활동을 벌인 독립운동가. 일찍이 만주로 건너갔다가 1919년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신규식(申圭植)[1879~1922]의 밀명을 받고 국내에 들어와 스코필드 박사가 촬영한 일제의 학살 장면 등의 사진 50매를 임시정부에 전달하여 일제의 잔인성을 세계에 폭로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활동과 연유해서 1919년 11월 그는...

  • 제사관구 경찰청(第四管區警察廳)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에 있는 충북지방경찰청의 전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법과 질서를 수호하고 충청북도 지역의 치안행정 서비스를 담당하기 위해 국립경찰 창설이후 1946년 제4관구경찰청을 두었다. 1945년 10월 21일 국립경찰을 창설한 이래 1946년 4월 1일 국립경찰조직에 관한 건에 의하여 도 경찰부가 관구경찰청(管區警察廳)으로 개칭되면서 충북경찰부는 제...

  • 제석신앙(帝釋信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하늘을 다스리는 제석을 모시는 신앙. 제석(帝釋)은 범어 Sakra devanam Indra-석가제환인타라(釋迦提桓因陀羅)의 한자말로 불교에서 수미산 꼭대기 희견성에 있으면서 32천을 다스리는 하늘의 신이다. 사찰에서는 제석을 ‘곡식의 신’이라 하여 곡간에 “제석환인지위(帝釋桓因之位)”라는 위패를 모셔놓고 쌀을 넣고 꺼낼 때마다 예배를 한다. 우리나라 민간에서는 일반적으로 조상신으...

  • 제석풀이(-帝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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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삶을 주재하는 수복신(壽福神) 또는 생산신(生産神)의 내력담(來歷譚), 무속신화며 동시에 구비서사시. 「제석풀이」는 「제석굿」, 「세존굿」, 「생굿」 등의 무의식(巫儀式)에서 구연되며, 여주인공의 명칭에 따라 흔히 '「당금애기」·「서장아기」·「제석님네 따님아기」'로도 통용되고 있다. 전국에 걸쳐 30여 종의 이본(異本)이 이미 채록된 바 있다. 청주지역 유진찬(兪鎭贊)[19...

  • 제승당(制勝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상당산성의 서쪽에 있는 군사시설로 지휘관이 올라가서 명령하던 곳. 청주시의 인구증가와 국내외 관광객의 증가로 상당산성을 찾는 관광객이 대폭 증가하여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여 1995년부터 상당산성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발굴조사지역은 산성동 산 28-1[성내로124번길 14] 임야에 속한 지역으로 서장대 터와 산성동 175번지, 산성동 177번지, 산성동 178번지 밭 일대로...

  • 제이공립보통학교(第二公立普通學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현 교동초등학교의 전신학교. ‘새롭게 생각하고, 고운 마음으로 실천하며, 건강하게 꿈을 키우는 어린이’를 이상으로 삼아 행복한 학생, 보람을 갖는 교사, 만족하는 학부모, 즐거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1933년 6월 1일 청주보통학교에서 여자부를 분립하여 제2보통학교로 명칭하고 381명 7학급이 개교하여 초대 노무라[野村高哉] 교장 등 6명...

  • 제이순환도로(第二循環道路)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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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 주성사거리에서 방서동 청주시수도사업소 사이에 있는 도로. 충북도로관리사업소~제4산업단지~맥슨전자까지의 북부우회도로 7.5㎞는 2000년 8월에 개통되었고, 맥슨전자~가경3지구까지의 서부우회도로 4.1㎞는 1999년 10월에 개통되었으며, 가경3지구~세광중학교·세광고등학교~청주시수도사업소까지의 남부우회도로 7.4㎞는 2001년 12월에 개통되어 시가지...

  • 제이운천교(第二雲泉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과 흥덕구 운천동을 연결하는 다리. 운천교는 1970년대 초 총 폭 12m로 완공되었으나 그 후 자동차 교통량의 증가와 노후로 인한 구조적 결함으로 하류 쪽 17.5m, 상류 쪽 5.5m를 확장하였다. 재 교량 양측 교대의 흉벽 사이를 교량 중심축에 따라 측정한 교장(橋長)은 22m, 교량 상부구조에서 교축 직각방향으로 최연단까지의 폭인 총 폭은 35...

  • 제이운천소교(第二雲泉小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과 흥덕동 사이의 무심천(無心川) 위에 있는 다리. 흥덕구 운천동 동쪽의 무심천변에 위치하며, 제1운천교가 가설된 이후에 건설된 작은 교량이라서 붙어진 다리이름이다. 북부지역의 내덕동 일대의 교통편의를 위하여 건설되었다. 청주시에서 발주하고 동원건설㈜에서 시공하여 1989년 12월 31일에 준공하였다. 길이 22m, 높이 4.5m, 전폭 35m, 상행...

  • 제일순환도로(第一循環道路)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 사천교 삼거리와 방서동 방서사거리 사이에 있는 도로. 제1순환도로는 청주시 중심부의 교통정체를 해결하기 위하여 1980년대 후반에 완공되었다. 제1순환도로는 공항로의 사천교 삼거리를 기점으로 하여 청주농업고등학교를 지나 시영아파트 앞으로 통하는 동안, 내세로, 향군로, 무심동로와 각각 교차하고, 제2운천교를 건너면 신봉동에서 무심서로 및 사운로와 각...

  • 제일운천교(第一雲泉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과 흥덕구 사직동과 운천동을 연결하는 다리. 흥덕구 운천동 옆에 놓이게 되어 운천교가 되었다. 1990년 8월에 준공된 다리로, 길이는 129m이며, 폭은 25m로 상행과 하행이 각각 4차선으로 되어 있다. 공법은 상부는 PSO Beem이며, 하부는 라멘식으로 되어 설계하중은 DB-24로 걸설되어 있다. 이 다리는 사직동의 예술1로, 직지로, 흥덕로,...

  • 조강(趙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숙거(叔擧), 호는 모계(慕溪)이다. 조순생(趙順生)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조승윤(趙承胤), 어머니는 조황(趙璜)의 딸 평양조씨이다. 처음 정사현(鄭思顯)에게 글을 배웠고, 뒤에 성제원(成悌元)과 송인수(宋麟壽)[1487~1547]를 사사하였다. 성리학(性理學)에 통달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일찍이 어머니의 병에 들오리(野鴨...

  • 조경모(趙景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의 효자. 1799년(정조 23)에 출생하였으며, 효행이 뛰어나 1892년(고종 29) 동몽교관(童蒙敎官)이 증직(贈職)되었다....

  • 조계종(曹溪宗)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한국불교의 대표적 종단의 명칭. 신라말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구산선문(九山禪門)에 기원하며, 그 명칭은 고려시대에 이르러 구산선문을 통합하여 조계종(曹溪宗)이라 한데서 비롯된다. 조계는 중국 선종의 제6조 혜능(慧能)[638~713]이 머물던 산의 이름으로 종단의 이름을 조계종이라 한 것은 그의 선풍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고려시대 보조국사의 결사도량 수선사가 있는 곳을 조계산...

  • 조광조한충(韓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서경(恕卿), 호는 송재(松齋)이다. 1486년(성종 17) 주부(主簿) 한창유(韓昌愈)의 아들로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1510년(중종 5) 생원이 되고, 1513년 별시문과(別時文科)에 장원하여 전적(典籍)을 거쳐 정언(正言)·이조정랑(吏曹正郞)·응교(應敎) 등을 역임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도량이 크며 독서를 즐겼다. 그는...

  • 조구명(趙龜命)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의 문인. 본관은 풍양(豊壤)이고. 자는 석여(錫汝) 또는 보여(寶汝)이며, 호는 동계(東谿), 건천자(乾川子)이다. 첨정 조태수(趙泰壽)의 아들이다. 재종형인 조문명(趙文命)의 딸이 진종(眞宗)의 왕비로 간택되는 등 조선 후기 소론의 벌열가문인 풍양조씨에서 태어났으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오로지 문장으로 자처하였다. 특히, 산문에 특장이 있어 당시 팔문장(八文章)으로...

  • 조동식(趙東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강내면에서 횃불시위를 주도하여 인근지역의 만세시위를 파급시킨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23일부터 3일간에 걸쳐 밤마다 청원군 강내면 태성리 산위에서 부락민 수십명과 함께 횃불을 올리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첫날인 23일에는 면내의 18개 부락과 인접한 강외·옥산·남이면 등지에서도 호응하여 횃불을 올리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에 일제는 청주와 조치원 등지의 경찰·헌병...

  • 조뢰(趙賚)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조인옥(趙仁沃)의 아들이다. 어려서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어 무과에 급제하였다. 관직에 나가 상호군, 전성진첨절제사, 옹진진절제사, 우군동지총제, 공조참판, 경기감사, 평안도도관찰출척사, 충청도와 경상도의 도절제사, 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435년(세종 17) 병으로 벼슬을 사퇴하고 양주 서산(西山) 선영 옆에 살다 76세에 죽었다...

  • 조명(趙銘)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세종~단종 때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경부(警夫), 호는 인촌(仁村)이다. 태조 배향공신이며 개국공신인 조인옥(趙仁沃)의 증손이며,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조뢰(趙賚)의 손자이며, 이조참의(吏曹參議) 조순생(趙順生)의 아들이다. 음보로 세종 때 여러 벼슬을 거쳐 병조정랑이 되었다. 한번은 병조의 군적이 분실된 일이 있어 담당자들이 모두 죄를 입을까 두려워하였다...

  • 조병천(趙炳天)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시대의 효자.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선현을 본 삼기에 힘썼다. 50세에 상고(喪故)를 당하자 여막(廬幕)생활 3년동안 한서풍우(寒暑風雨)를 무릅쓰고 공산(空山)에 홀로 거처하여 생식(生食)하였다. 원근이 그의 효행에 감탄하였으며, 청원군수는 그 독행을 표창하였다....

  • 조빈(趙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고려말의 권문세족이었던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정숙공(貞肅公) 조인규(趙仁規)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상장군(上將軍)을 지낸 조충산(趙忠山)이고, 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조율(趙溧)이다. 1431년(세종 13)에 소과에 급제하여 생원이 되었고, 음사(蔭仕)로 여러 군읍의 수령을 지냈다. 관직은 숭록대부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경기도 광...

  • 조선운송주식회사(朝鮮運送株式會社)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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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2가에 있는 (구)조선운송주식회사 건물. (구)조선운송주식회사는 1921년 7월 청주에서 5인, 조치원에서 2인, 경성에서 1인의 상인을 중심으로 발기하여 10월에 조선운수창고주식회사 본점으로 개업하였다. 1921년경 이미 당시로서는 현대적인 사무소와 여러 동의 창고를 세워 (건축물 관리대장에는 1930년으로 등재되어 있음) 운수창고업과 미곡, 관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