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0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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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星里 |
영어음역 | Munseong-ri |
이칭/별칭 | 들성,평성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문성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연정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조선 초기부터 아홉 개의 독립된 자연마을이 있었는데 그중 한 마을이 이름 높은 선비들이 많이 나와서 문성동리(文星洞里)라고 하였다. 이를 자랑으로 여겨 1914년 마을을 통합하면서 마을 이름을 문성리로 통일하였다고 한다. 아홉 개 자연마을의 지명 유래는 다음과 같다.
문성(일명 들성, 평성)은 개미산이 들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성을 이룬 것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는 들에 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지내(池內)는 마을 앞에 여우못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김병용(金秉庸)·김하용(金夏容) 부자가 학문과 덕을 베풀었던 마을이다. 옛날에는 신천강씨(信川康氏)들이 많이 살았으나 지금은 옮겨 갔다. 터지실은 1896년 마을에 신작로가 생긴 뒤 한두 집이 이사와 터를 잡고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거리는 송림리·다식리·괴평리의 갈림길일 뿐 아니라 짓골나루를 건너 멀리 해평·한양 등을 오가는 갈림길이므로 삼거리에 주막들이 들어섰는데, 점차 인가가 늘어나 마을을 이루면서 마을 이름이 되었다. 가좌골은 평성방을 보좌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남평리는 평성방 남쪽, 동평리는 평성방 동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전리는 남강서원(南崗書院) 앞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인서골[仁恕谷]은 “어질고 착하여 용서해 준다”는 뜻으로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이름이다. 고려 후기에 선산임씨(善山林氏)가 모여 살다가 조선 건국과 함께 다른 곳으로 옮겨 갔고, 조선 후기부터 문화유씨(文化柳氏)의 세거지가 되었다. 마을 앞으로 인노천이 흐르고 봉곡동과 괴평리를 잇는 도로가 개설되는 등 주거지로 발전하고 있는 마을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 태종 이후 평성방(坪城坊)에 속한 23개 마을 중 인서동리(仁恕洞里), 도곡동리(道谷洞里), 지내동리(池內洞里), 문성동리, 남산리(南山洞里), 가좌촌동리(加佐村洞里), 남평동리(南坪洞里), 동평동리(東坪洞里), 원전동리(院前洞里) 등 아홉 개 마을로 나뉘어 있었다.
1896년 평성방이 평성면(坪城面)이 되면서 일부 마을이 다른 곳으로 편입되고 문성동리, 동평동리, 지내동리, 도곡동리, 인서동리 등 다섯 개 마을로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망장면(望長面)·평성면·서내면(西內面)이 고아면(高牙面)으로 통합됨에 따라 고아면 문성동이 되었고, 1988년 동이 리(里)로 바뀜에 따라 고아면 문성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마을 오른쪽으로 접성산 줄기인 매봉재(일명 인서봉)가 있고, 문성2리 뒷산인 굴암산을 진산으로 하여 왼쪽에 원사고개·안가좌골·감나무골·당산·배고개 독구말랭이, 오른쪽에 앞산 개구리바위가 있다. 들성, 발갱이들, 독보들, 저들이들, 진다락굼들, 탁주들 등의 들이 펼쳐져 있다.
[현황]
고아읍사무소 남쪽 6㎞ 지점에 있는 마을로, 2009년 1월 현재 면적은 4.70㎢이며, 총 798가구에 2,450명[남 1,248명, 여 1,20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문성1리에서 4리까지 네 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 송림리, 서쪽으로 원호리, 남쪽으로 지산동, 북쪽으로 산을 경계로 송림리·봉한리와 접한다. 국도 33호선이 남북으로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인노천이 동서로 마을 한가운데를 흐른다.
주요 산업은 농업과 과수업이다. 1967년경 인노천 물길을 샛강 방면에서 괴평리 방면으로 흐르게 하면서 주변 모래밭에 과수업을 시작하였고, 1969년에서 1971년 사이에는 옛 선산군 내에서 가장 먼저 꽃 재배를 시작하기도 하였다. 국도 33호선 부근을 중심으로 대형 물류 창고, 상가, 소규모 부품 공장들이 들어서 있고, 2004년부터 대규모 택지 조성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주거 환경이 크게 개선되고 있다.
주요 시설로 2000년에 문을 연 구미농수산물도매시장이 있다. 83,047.93㎡의 터에 연면적 23,83㎡ 규모로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이루어졌으며, 1일 평균 200여 톤의 농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문화재로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7호인 「구미 발갱이들 소리」(예능 보유자 백남진)가 있고, 유적으로 김종무(金宗武)·김공(金羾)·김양(金瀁)·박진경(朴晋慶)·김경 등을 배향한 남강서원, 김유수(金裕壽, 1695~1761)를 기리기 위한 만산정(晩山亭), 김언(金漹)과 김상주(金相胄)를 배향한 원당재(元堂齋)를 비롯하여 영모재(永慕齋), 일성재(一誠齋), 서산재 등이 있다.
이 밖에 이우(李瑀, 1542~1609)와 예강리에 살던 이우 후손들의 과거 급제 교지(敎旨), 첩지(牒紙), 호구단자, 과거시험시권(科擧試驗試券), 호패, 서책 등이 덕수이씨 종가에 보관되어 있다. 해마다 정월 14일 밤 여우못 둑에 있는 패고나무 앞에서 동제를 지내다가 1990년 마을 앞 도로를 포장할 때 나무를 베어 내고는 동제를 지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