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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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儉世里 |
영어공식명칭 | Geomse-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검세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기혁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검세리(儉世里)는 삼랑진읍의 동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 안태리와 양산시 원동면이 있으며, 서쪽으로 송지리와 구릉성 산지로 경계를 이루고 있다. 검세리 남쪽은 낙동강 유로를 사이에 두고 김해시 생림면 도요리와 마주 보고 있다. 검세마을과 송원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명칭 유래]
『호구총수(戶口總數)』와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는 지금의 검세리 지역에 해당하는 ‘작원리(鵲院里)’ 지명이 실려 있다. 까치원의 금조(金鳥)가 날아들어 ‘금새’로 불렀으며 이후 ‘검세’로 바꾼 후 마을이 부유해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검세리, 안태리 일부를 병합하여 경상남도 밀양군 하동면 검세리로 개설되었다. 1928년 경상남도 밀양군 삼랑진면 검세리로 개편되었다. 1963년 1월 1일 경상남도 밀양군 삼랑진읍 검세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밀양군, 밀양시 통합으로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검세리로 개편되었다.
검세리의 취락은 북부 산지의 산록과 삼랑진 철도역 인근에 형성되어 있다. 중심 마을인 검세는 북쪽 산지의 산록에 있으며 ‘큰검새’로도 부른다. 마을 앞으로 우곡천이 흐르고 동쪽에서 안태천과 합류한다. 작은검새, 후검새로 나뉘어 진다. 송원마을(松阮마을)은 신송(新松)과 작원(鵲院)을 포함한다. 조선시대 대부분 저습지대로 개간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일제강점기에 제방이 축조되면서 농사가 시작되었다. 신송은 1910년 경 일본인이 정착하여 과수원을 일구어 ‘송지원(松旨園)’이라 부른 데서 마을이 생겨났다. 작원은 낙동강을 낀 천험의 요새로 일찍부터 신라와 가야 세력이 충돌하는 곳이었다. 작원관을 중심으로 마을에는 역원과 나룻터 객주집, 주막이 있었다.
[자연환경]
검세리 동쪽의 양산시 원동면과의 경계를 이루는 시루봉 일대는 낙동강의 침식 사면을 이루어 산지가 하천에 임박해 있다. 북쪽에서 우곡천과 안태천이 마을을 감싸고 흘러 동쪽에서 합류한 후 낙동강으로 유입한다. 하천의 합류 지점에는 너른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철도가 지나는 제방 건너에는 저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안쪽의 농지도 원래 범람이 잦은 수해 지구였으나 제방 축조 후 농경지로 변모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김해부를 잇는 도요나루가 있었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346세대, 609명[남자 303명, 여자 30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검세리의 농업은 하천 유역에 형성된 충적지를 바탕으로 벼농사와 시설농업이 행해진다. 마을 앞에는 경부선 철도가 지나며, 지방도 제1022호선은 서쪽으로 삼랑진읍과 동쪽의 양산시로 이어진다. 낙동강 변에는 작원관지가 조성되어 있다. 작원관지는 과거 영남로에 위치하여 통행객들과 수운 화물을 검문하는 곳이었으며, 임진왜란 때 밀양부사 박진(朴晉)[1560~1597]이 왜군과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