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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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뒷산인 과상미에 관한 전설. 조선 중기에 청주를 향해 가던 보부상(褓負商)들이 백봉산(白峰山)[지금의 果商山]에 이르니, 날이 저물었다. 그래서 산 밑에 모여서 잠을 자게 되었다. 밤이 깊어 삼경이 되자 어디서 활시위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쪽을 살펴보니 백봉산 중턱에서 무사 다섯 명이 달빛을 받으며 활을 쏘고 있다. 무사들은 활쏘기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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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문신 이승소(李承召)[1422~1484]의 시문집. 1514년(중종 9) 간행본, 1535년 간행본 2종이 전해온다. 1535년 간행본은 이수동이 충청관찰사로 재직할 당시 청주목(淸州牧)에서 총 15권으로 편집한 목판본(木版本)으로 제9권부터 제15권까지의 2책이 전해오고 있으며,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첫째, 시(詩)에는 미인도(美人圖)·병풍화(屛風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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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宋)나라 위경지(魏慶之)가 편찬한 시문집(詩文集)으로 1439년(세종 21)에 청주에서 판목으로 간행한 책. 이 책은 중국 송(宋)나라 때의 위경지가 편찬한 시문집으로 조선 초기에 집현전(集賢殿) 경연(經筵)에 1본(本)이 소장되어 있었다. 그 후 청주에서 1439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충청감사 윤형(尹炯)의 발문 “正統己未朝臣尹炯等…刊於淸州…正統四年 忠淸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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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청일전쟁 후 1894년 7월에서 1896년 2월까지 3차에 걸쳐 추진된 일련의 개혁운동. 갑오경장(1894~1895) 이후 대한제국의 국권상실까지 약 15년간은 서울과 지방의 전 지역이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청주지역도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었다. 청주도 1895년에서 1896년 사이에 공주부에 편제되었다가 충청북도로 개편되었다. 갑오경장 추진 배경의 하나는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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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15광복 후 여운형(呂運亨)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최초의 건국준비단체. 온건좌파 여운형 측이 해방 전에 조직하였던 ‘건국동맹’을 모체로 발족시켜 정치범을 석방하고 치안대를 조직하여 활동을 개시하였다. 약칭 ‘건준(建準)’이라 한다. 일제가 패망한 1945년 8월 15일 조선에서는 민족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어 8월 말까지 전국에 145개에 이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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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청주 출신이며, 양민으로서 효행이 극진하였다. 어머니가 개가를 하였는데, 모친과 이부(異父)를 지극 정성으로 섬기었다. 나이 17세에 형을 대신하여 요동(遼東)의 역(役)에 나갔다. 이때에 봉림대군(鳳林大君)[뒤에 효종 임금]도 청나라의 볼모로 잡혀 요양에 있었다. 조선과 청나라의 협상으로 요동에 있던 조선 군사를 돌려보내게 되었다. 고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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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호는 추암(秋巖)이다. 문하평장사 곽침(郭琛)의 아들이다. 1360년(공민왕 9) 23세에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정몽주(鄭夢周), 문익점과 동방(同榜)이었다. 1374년 예문관 직제학이 되었다. 1377년(우왕 3) 5월 곽추가 과거시험을 주관하여 정희(鄭熙) 등 99명을 뽑았다. 1378년 밀직사사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정당문학(政堂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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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촌락문서」에 보이는 토지의 종류. 「신라촌락문서」에서 토지는 답(畓)과 전(田)으로 나누어 먼저 합계를 기록한 다음 지목별의 토지 면적을 기재하고 있는데, 관모전답(官謨田畓)이 가장 먼저 기록되어 있다. 각 촌락의 관모전답의 면적과 그 비율을 살펴보면 사해점촌은 답 102.024결 중 관모답이 4결, 살하지촌은 답 63.649결 중 관모답이 3.667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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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계변무(宗系辨誣)를 축하하는 경하시(慶賀詩)를 모아 인쇄하기 위해 만든 판목(板木). 중국 명나라의 『태조실록(太祖實錄)』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조선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선계(先系)가 고려의 권신인 이인임(李仁任)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어 건국초기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수정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계속 거절당하다가 1584년(선조 17) 5월에 종계변무주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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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팔봉리 출신으로 초창기 한국근대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평론가 겸 소설가. 한국 낭만주의 문학의 거점이라고 할 수 있는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최초의 근대 연극단체라 할 수 있는 ‘토월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23년 『개벽』에 처음으로 프로 문학 이론을 소개하였다. 이후 ‘카프(KAPF)’ 발기인으로 프로 문학 운동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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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평장사(平章事) 김방경(金方慶)의 손자이다. 지금의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문장에 능하였으며, 공민왕 초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안렴사(按廉使)에 이르렀다.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1328~1396]과 친교가 두터웠으며 함께 직간(直諫)으로 이름이 높았다. 1365년(공민왕 14) 왕이 신돈(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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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에 있었던 향토기업. 일제강점기에 일본 군시(郡是)제사㈜의 조선 분공장(分工場)으로서 대전공장(1926년)에 이어 1929년 청주공장이 설립되었다. 당시 공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군시제사㈜ 청주공장은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장으로서 생사를 생산하였다. 조선에 진출한 일본자본의 제사공장은 품질이 우수한 고격사(高格絲)의 생산에 의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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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3가, 예전의 ‘오정목(五町目)’에 위치한 들. 방아다리는 북문로3가, 예전의 ‘오정목(五町目)’에 위치한 들이다. ‘반다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방아다리’이든 ‘반다리’이든 ‘들’을 가리키는 이름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3년 일본식 지명을 우리 고유의 지명으로 고치자는 취지로 청주문화사랑모임에서는 '방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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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에 있는 김효성(金孝誠)[1585~1651]의 선정비. 1651년(효종 2)에 조선 인조(仁祖) 대에 청주목사(淸州牧使)를 지낸 김효성의 선정(善政)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상당구 남문로 2가 청주 시내 중심가에 있는 중앙공원(中央公園) 동편 화단에 서향으로 위치해 있다. 높이 128㎝, 폭 72㎝, 두께 19㎝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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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조선중기 청주목사 이경여(李敬輿)[1585~1657]의 선정비. 조선 인조(仁祖) 대에 청주 목사 이경여가 청렴결백하게 선정을 베푼 것을 기려 1631년(인조 9)에 세운 비이다. 남문로2가(南門路二街)의 청주시내 중심가에 있는 중앙공원(中央公園) 동편 담장 아래 화단에 서향에 위치해 있다. 거북대좌 위에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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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이후의 문신과 무신의 총칭. 고려 4대 왕 광종(光宗)[946~975]은 후주(後周) 사람인 쌍기(雙冀)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도를 처음 실시하였다. 이후부터 문무의 관리를 별도의 시험을 통하여 선발하였는데, 5대 왕 경종(景宗) 때 부터는 문관을 동반(東班), 무관을 서반(西班)이라 하여 구별하였고, 이들 문반과 무반을 합하여 양반이라고 하였다. 양반은 곧 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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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無心川)은 청주시 청원구에서 발원해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남일면 상대리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청주시내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미호천(美湖川)에 합류하고 금강을 거쳐 서해에 이르는, 전체 길이 34.5㎞, 유역면적 177.71㎢의 지방하천이다. 동쪽으로는 한남금북정맥으로 연결되는 우암산(牛岩山)[338m], 상당산(上黨山)[419m], 것대산(484.0m), 선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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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주대학교 예술대학 한국음악과에 설치되어 있는 한국음악 박물관. 1991년 청주대학교 장사훈이 국악의 보급과 교육을 위하여 도서, 악기, 음반 등 국악 관련 자료를 기증하여 설립되었다. 장서 5,000여점, 국악기 60종, 음반 500여장이 전시되어 있다. 국악기 가운데는 세종(世宗) 때 박연(朴堧)[1378~1458]이 제작한 특경(황종음), 흥선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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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임진왜란 때 청주성 전투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영의정 박란(朴蘭)의 손자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인근 사림의 추앙을 받고 있던 중봉(重峰) 조헌(趙憲)[1544~1592]의 의병진에 합류하였는데, 이 때 나이 21세였다. 1592년 왜군이 청주성까지 진격하자 청주성에서 전투가 크게 벌어졌는데, 7월 28일 전사하였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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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신태희(申泰羲)의 선정비. 조선 철종 대에 충청도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의 병마우후를 지낸 신태희의 선정을 기려 1859년(철종 10)에 세운 비석이다. 상당구 산성동 마을에서 서문으로 올라가는 길 왼쪽의 크고 넓은 자연석의 바위 위에 홈을 파고 세웠다. 방형 받침돌 위에 높이 139㎝, 폭 44㎝, 두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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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사찰. 567년(신라 진흥왕 28)에 의신조사가 창건하였다. 상당구 용암동 청주동부우회도로에서 용박골 쪽으로 2.5㎞ 정도 들어간 곳에 있다. 778년(신라 혜공왕 14)에 진표율사의 제자인 융종대사가 중창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고려 918년(태조 원년)에 태조(太祖)의 다섯째 아들인 증통국사가 고쳐지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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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동학교도들을 집결시키고 왕조정부에 정치개혁과 외세배격을 요구한 집회. 동학교단은 4월 26일(음력 3월 11일)부터 5월 17일(음력 4월 2일)까지 충청북도 보은군 장내리에서는 수 만명의 동학교도들을 집결시켜서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의 깃발 아래 대대적인 집회를 열었다. 『취어(聚語)』에 의하면 전국에서 동학교도들이 장내리에 몰려왔는데 청주의 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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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불교는 고타마 싯다르타(Gotama Siddhārtha)의 깨달음에 연원한다. 전통적으로 그 깨달음의 내용은 연기(緣起)로 알려져 있다. 일체는 원인과 조건의 의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는 영원 불변한 독립적 실체로서의 궁극적 실재를 추구하는 기존의 종교·철학에 대한 혁명적 전환의 의미를 갖는다. 그의 사후에도 불교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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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으로 자는 영숙(永叔)이며, 호는 습정(習靜)이다. 송방조는 의빈도부사 응기(應期)의 아들이다. 1590년(선조 23)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청도 영동에 피난하여 현감 한명윤(韓明胤)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였다. 1606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권지정자(權知正字)·박사를 지내고, 전적이 되어 영남지방의 향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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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대학자. 송시열(宋時烈)의 자(字)는 영보(英甫)이고 호(號)는 우암(尤庵), 우재(尤齋), 화양동주(華陽洞主)이며, 시호(諡號)는 문정(文正)이다.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으로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 어머니는 선산곽씨(善山郭氏)이다. 송시열은 1607년(선조 40) 그의 외가가 있는 충북 옥천군 이원면 구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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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천곡(泉谷)할아버지의 출생지는 서울 황하방인데, 지금 그 위치는 정확하게 어딘지는 모르겠어. 내가 알고 있는 이유는 할아버지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천곡 선생의 부친이 서울에 살고 있다는 기록이 있어요. 할아버지가 사신 곳은 현재로는 전라도 정읍시 망재동 마을인데 거기가 천곡이야. 그래서 호가 천곡이구, 거기를 샘골이라 부르기도 해. 임진왜란 때 일본이 명나라를 치러갈 때 목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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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국립청주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 고문서. 원래 충청북도 괴산군의 영산신씨 충익공파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고문서로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이 관리하고 있다. 2005년 2월 8일부터 2005년 3월 31일까지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열린 ‘기증 및 기탁문화재 특별전’에 전시되기도 한 이 문서들은 공신교서와 신경행 및 그의 후손에 관한 문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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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조선 철종 대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의 병마우후를 지낸 무관이다. 신태희(申泰羲)의 선정을 기려 1859년(철종 10)에 세운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현재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9번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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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를 시조(始祖)로 하며 성리학, 주자학의 정신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상의 변천사, 인물, 유적 모두를 포괄하는 용어. 유교가 우리나라에서 불교에 대항하는 새로운 이념의 철학사상으로 부흥되는 것은 고려 귀족사회의 모순이 첨예화되는 13세기 후반부터이다. 지방 중소지주출신의 관료,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개혁집단은 위화도회군 이후 조선 태조(太祖)를 도와 조선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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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시간 예술. 우리나라 3대 악성 하면 거문고를 창제한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과 가야금을 제작한 신라의 우륵(于勒)[500?~562?], 조선의 박연(朴堧)[1378~1458]을 든다. 그 중 우륵과 박연은 충북 출신 음악가이다. 청주 지역의 음악은 이 위대한 전통음악의 얼을 계승, 보존하는 반석위에서 발전해 나가고 있다. 한국 최초의 서양음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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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조선초의 공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낙천(樂天)이며, 호는 청허당(淸虛堂)이다. 이공승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이정(李挺)이며, 형은 청천백(淸川伯) 이거인(李居仁)이다. 아들로는 이백경(李伯卿), 이백관(李伯寬), 이백신(李伯臣), 이백강(李伯剛), 이백현(李伯儇)이 있다. 1393년(태조 2)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 1397년 평안남도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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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조선 개국당시 원종공신으로 봉해진 이구직(李丘直)의 증손이다. 효정공(孝靖公) 이정간(李貞幹)의 손자이고, 전군수 이사혜(李士惠)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출사하였으며, 판관(判官)으로 있다가 정처를 소박하고 창기를 사랑했다는 죄로 탄핵을 받았다. 세조가 즉위할 때 원종3등 공신에 녹공되었고, 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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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朝鮮)에 침입한 왜군(倭軍)과의 전쟁.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朝鮮)에 침입한 왜군(倭軍)과의 전쟁이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은 정유년에 일어나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 일컫는데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이라면 정유재란까지 포함해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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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문화란 청주와 청원 지역에서 축적되고 존재하는 문화이다. 청주문화는 다른 문화와 비교상대적인 문화 개념이다. 청주문화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문화의 독자적인 완결성을 공간적으로 강조할 때 이런 문화단위 개념이 설정될 수 있다. 이 경우 지역의 독자적 문화문법(文化文法)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의 마모를 견디면서 내재하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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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주권자가 그 영토 및 국민을 통치하는 행위, 즉 국가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 지역적으로는 시민에게 삶의 질 향상과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주민참여 속에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고 중앙과의 연계속에서 청주시가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일을 추진하는 일체의 정치적 행위를 의미한다. 흥덕구 송절동의 경사진 지형에서 경사방향을 따라 만든 토광묘는 배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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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허직의 선정을 기리는 비석. 조선 고종(高宗) 대에 율봉도찰방(栗峰道察訪)을 지낸 허직(許稷)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1865년(고종 2)에 건립하였다. 상당구 율량동 율봉공원의 율량동 고가 입구에 있는 4기의 비석 가운데 세번째 비석이다. 비석의 반 이상이 땅 속에 묻혀 있어 온전한 비석의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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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1824~1863]가 1860년 4월 5일 득도하여 창도한 동학을 3세 교주인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1861~1922]가 1905년에 개칭한 종교단체. 최제우는 득도 이후 시천주(侍天主, ‘내 안에 한울님을 모셨다’)의 가르침을 통해 양반, 천민이 모두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므로 평등함을 주장하였다. 이는 조선의 봉건적 질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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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法華經)』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 종단. 천태종의 명칭은 중국의 천태지의(天台智顗, 538~597)에서 유래한다. 지자대사(智者大師)라고도 불리는 그는 『법화현의(法華玄義)』, 『법화문구(法華文句)』, 『마하지관』 등을 저술하며 『법화경(法華經)』사상을 선양하였다. 천태는 그가 주석했던 산의 이름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천태교학이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 초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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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구룡사지의 사적비. 1764년(영조 40) 구룡사(九龍寺) 창건과 중창 내력 및 상당산성의 개축 사실을 기술한 비로, 은재거사(隱齋居士)가 비문을 짓고 글씨를 새겨서 건립했다. 상당구 산성동의 청주 상당산성 남문 옆에 있다. 높이 131㎝, 폭 54㎝, 두께 22㎝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지붕돌[가첨석(加檐簷)]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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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는, 효자 양수척(楊水尺)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양수척은 조선 세조~성종 년간에 두 아우와 함께 청주에 살고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무뢰와 횡포를 저질렀을 뿐 아니라 늙은 어머니에게도 공손치 못하였다고 한다. 이에 노모는 항상 이들 형제들을 걱정하다 병이 들어 눕게 되고, 누운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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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비석. 조선 고종(高宗) 때 흥선대원군이 집정하면서 1866년(고종 3)에 있었던 병인양요와 1871년에 있었던 신미양요를 통해 서양세력을 격퇴한 후 그 전승을 기념하고 척화를 강조하기 위해 1871년 4월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요충지에 척화비를 세웠다. 청주 척화비도 이때 세운 것이다. 상당구 남문로 2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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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고씨(高氏)의 시조로는 탐라국을 개국한 고을나(高乙那)를 연원으로 한다. 제주도의 「삼성혈(三姓穴) 신화」는 일찍이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혈(毛興穴)에서 고을나·양을나(良乙那)·부을나(夫乙那) 세 신인이 솟아 낫는데 고을나가 탐라국을 다스렸다는 것이다. 938년(고려 태조 21) 탐라국의 마지막 왕 자견(自堅)이 태자 고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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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조헌(趙憲)[1544~1592]의 의병, 영규대사(靈圭大師)[?~1592]의 승병,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청주 의병 등이 합군하여 왜군에게 함락 되었던 청주성을 탈환한 전투. 1592년(선조 25) 조선을 침략한 왜군에 의해 청주성이 함락되었다. 이때 옥천에서 일으킨 조헌의 의병과 영규(靈圭)대사가 이끄는 승병 그리고 박춘무의 청주 의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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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손씨총원록(孫氏總源錄)』에 의하면 시조는 구례마(俱禮馬)로 여섯 촌장 중 한 분으로 신라 시조 혁거세를 추대하였고, 유리왕 9년에 손씨(孫氏) 성(姓)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누전하여 흥덕왕 때 효자인 문효공 손순(孫順)을 손씨의 비조(鼻祖)로 하였다. 『청주손씨세보』에 따르면 중시조인 손필영(孫弼榮)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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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 양기(楊起)는 중국 출신으로 원(元)나라에서 중서성 정승을 지냈으며, 고려(高麗)원종(元宗) 때에 제국공주(齊國公主)를 배종하고 들어와서 정착하였다. 그 후 양기는 원나라에 가서 공물을 삭감케 한 공으로 삼한창국공신 상당백(上黨伯)에 봉해지고 청주를 관적(貫籍)으로 내림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청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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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지역의 역사와 문화 등이 담겨져 있는 명소 기행. 오늘의 충청도를 호서지방이라 한다. 청주는 그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으며 소백산맥과 차령산맥, 노령산맥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청주의 진산인 우암산(牛岩山)[338m]은 동쪽에 우뚝 솟아 있다. 서쪽으로는 부모산이 마주보고 서 있다. 그 두 산자락 가운데 든 시가지를 동·서로 가르는 물줄기가 바로 무심천(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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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는 이능희(李能希)로서 고려 개국공신이며 벽상삼한삼중대광태사이다. 6세손 이공승(李公升)은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냈으며, 7세손은 정숙공(貞肅公) 이춘로(李椿老), 8세손은 대장군 이장(李粧)이다. 9세손은 판밀직사 이창우(李昌祐)이다. 이창우는 두 아들 낭성군(琅城君) 이계감(李季瑊)과 보은백 이계성(李季成)을 두니 10세손이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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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는 정극경(鄭克卿)으로 고려 의종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냈으며, 6세(世) 정책(鄭幘)은 충숙왕 때 대호군을 거쳐 응양군상호군을 지내고 이어 판선공감사로 청하군(淸河君)에 봉해졌으며 뒤에 서원백(西原伯: 청주의 옛 지명)에 올랐으므로 후손은 본관을 청주로 하였다. 고려조에서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벼슬에 맥을 이어온 명문가이다. 본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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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에 본관을 둔 성씨. 한씨(韓氏)는 기자조선에 연원을 두고 있다. 위만에게 밀려 마한으로 온 준왕(準王)[기자(箕子)의 40대 후손]의 8세손인 원왕(元王)은 3형제를 두었는데, 둘째 아들인 우량(友諒)이 신라의 상당(上黨)[청주의 옛 지명]으로 옮겨 한씨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사적에 의하면 한씨의 시조는 기자의 후예 우량의 32세손 한란(韓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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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淸州牧)에 속했던 속현(屬縣)의 하나. 청천현(淸川縣)은 『삼국사기(三國史記)』(권 제34 잡지 제3 지리 1)에 따르면 상주(尙州) 삼년군(三年郡)[현재의 충청북도 보은군] 소속이었다. 본래 살매현(薩買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궁예전(弓裔傳)」에 ‘靑州[或云靑川]’가 두 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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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와 충청북도 청원군 부강을 잇는 충북선의 수압식 경편궤도 부설계획. 일제강점기인 1914년부터 일본경제의 호황과 일본 자본가들의 관심이 조선의 철도사업에 고조되면서 사설철도 부설이 증가하던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충북선 부설이 1913년경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충청북도 지역에 철도를 부설하자는 논의는 1913년경에 이루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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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신하. 충청지역은 조선시대 한성에 도읍한 이후에 많은 사람이 주거하게 되었다. 특히, 수도에서 낙향하거나, 선조의 묘지를 쓰고 집성촌을 형성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고 충효를 강조하여, 충청지역에서도 충신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 조선 이후에 많이 나타났다. 그런데 청주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죽은 사람은 드물고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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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안녕질서를 유지하려는 국가의 행정작용. 치안의 개념은 구체적으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전을 목적으로 범죄자를 체포, 구금하는 등 국가의 통치권에 의한 계몽, 지도, 명령, 강제하는 작용을 한다. 이러한 행정작용은 현재 경찰기관이 주로 맡고 있다. 경찰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politeia'라는 말이 라틴어로 전화한 것으로서,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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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기운이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는 믿음과 행위. 풍수는 크게 죽은 사람이 묻힐 묘자리를 보는 음택풍수(陰宅風水)와 살아있는 사람이 살 땅을 보는 양택풍수(陽宅風水)로 나누고, 양택풍수는 다시 집터를 보는 주택풍수와 왕도나 고을 터를 보는 도읍풍수로 나눈다. 그러나 음택풍수나 양택풍수가 모두 땅기운이 좋은 곳에 조상을 묻거나 살 집을 지어 복을 받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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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명길(鳴吉)이며, 호는 구암(久菴)이다. 할아버지는 한여필(韓汝弼), 아버지는 한효윤(韓孝胤)이고, 어머니는 예빈시정(禮賓寺正) 신건(申健)의 딸이다. 장인은 구사중(具思仲)이다. 1579년(선조 12) 생원시에 합격하고, 1585년 교정청(校正廳)이 신설되자 정구(鄭逑)[1543~1620] 등과 함께 교정낭청에 임명되어 『경서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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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중질(仲質), 호는 죽소(竹所)이다. 호부상서(戶部尙書) 한공의(韓公義)의 손자로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다. 판후덕부사 한수(韓脩)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길창군 권적(權適)의 딸이다. 조선의 개국공신 한상경(韓尙敬)이 그의 아우이고, 세조 때 공신 한명회(韓明澮)는 그의 손자이다. 1390년(공양왕 2) 6월 천추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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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는 해월의 묘. 우암산 우회도로의 대한불교수도원의 기점에서 우회도로를 따라 약 800m 지점이며, 우암산우회도로가 있어 접근하기에 편리하다. 태극문을 새긴 대리석에 ‘烈女海月之墓(열녀해월지묘)’라는 묘비와 더불어 있다 조선 영조(英祖) 즉위 후 소론이 배격되자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는 정희량(鄭希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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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청주의 사정을 기록한 지리지. 지역사 연구의 기초 자료로서 전근대 시기 중앙집권적 수취체제의 기초로부터 시작하여 최근의 도·시·군지, 마을지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사정을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다. 전근대 시기의 향토지는 주로 중앙의 관 주도로 이루어진 수취를 위한 지방의 사정을 기록한 지리지에서 비롯된다.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지방자치단체 주도의 기획과 편찬이 이루어져 보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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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인.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근초(謹初), 호는 쌍백당(雙栢堂)·쌍백당이다. 아버지는 홍해(洪瀣)이며, 거주지는 청주 산내일면 판교리(현 청원군 미원면 수산리)이다. 부인은 경주이씨(慶州李氏)로 섬계서당을 열어 조선 중기 청주지역 사림들의 교육에 앞장 선 이잠(李潛)의 딸이다. 동생으로 장악원정(掌樂院正)에 추증된 홍순선(洪純善)과 집의(執義)를 지낸 홍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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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서화가.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성여(成汝), 호는 애사(靄士)·춘산(春山)·연탄(硏灘)이다. 거주지는 청주(淸州)였으며 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 홍정주(洪定周), 할아버지는 홍필영(洪必榮), 증조할아버지는 홍희택(洪羲宅), 외할아버지는 조현성(趙顯誠)이다. 아들이 없어 홍우필(洪祐弼)의 아들 홍승목(洪承穆)을 양자로 들였다. 1850년(철종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