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145
한자 治安
영어음역 chian
영어의미역 public peace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집필자 김수갑

[정의]

사회의 안녕질서를 유지하려는 국가의 행정작용.

[개설]

치안의 개념은 구체적으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전을 목적으로 범죄자를 체포, 구금하는 등 국가의 통치권에 의한 계몽, 지도, 명령, 강제하는 작용을 한다. 이러한 행정작용은 현재 경찰기관이 주로 맡고 있다.

경찰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politeia'라는 말이 라틴어로 전화한 것으로서,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는 이상적인 상태, 국가·헌법 또는 국가활동 등을 의미하는 다의적(多義的)인 말로 사용되었으나, 15~16세기에 이르러서는 교회활동에 대응한 국가작용의 일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17세기에는 국가작용이 분화되기 시작하여 외교·재정·군정·사법 등 각 특수행정 분야가 분리되고 그 나머지의 모든 행정, 즉 오늘날의 내무행정(치안작용과 복리작용을 합한 것)에 축소되어 경찰은 보안경찰(치안경찰이라고도 함)과 복리경찰을 의미하였으며, 18세기 전반까지의 경찰국가시대에 있어서도 계속 유지되었다.

그러나 18세기 중엽 이후 근대 시민적 법치국가가 성립함에 따라 국민의 자유활동을 보장하기 위하여 야경국가(夜警國家)사상에 따라 소극적인 치안유지만을 임무로 하는 보안행정만을 경찰이라고 하는 근대 법치국가적 경찰개념이 성립되었고, 그 후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국가가 공공복리의 증진을 위한 활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게 됨에 따라 국가는 일반 공안의 유지 외에 복리증진에 수반하는 질서유지를 위한 권력적 활동을 다시 그 임무로 하게 되었다.

종래 경찰의 근본목적은 사회공공의 질서유지를 목적으로 국가의 권력에 따라서 국민에게 명령하고 강제하여 그 자연적 자유를 제한하는 권력작용으로서 이해되어 왔지만, 현대의 경찰행정은 통치권에 기인한 경찰권의 행사로부터 시민 고유의 기본권 또는 시민에 봉사하는 봉사기관으로서의 행정행위로 바뀌어가고 있으며, 한국의 경우도 경찰행정은 권력행사의 의미로서보다는 직능국가 또는 봉사국가(Service State)에 상응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치안은 경찰의 주된 임무이지만 경찰의 힘만으로 어려울 때는 군대가 치안업무를 맡아서 계엄경찰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이전의 경찰기관]

상고시대에는 경찰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치안과 국방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대사회 즉 고조선시대에서 초기 고구려시대까지는 군경일체의 양상을 보였으며, 율령(律令)중심으로 치안이 이루어진 삼국시대 내지 통일신라시대에도 사정부(규탄사무를 관장)와 좌우이방부(형률사무 관장)가 경찰기능을 담당하기도 하였으나 오늘날의 경찰의 독자적 기능과는 거리가 있다고 하겠다.

고려시대에 있어서도 경찰기능은 아직 각 행정부분에 포함되어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중앙에서는 병부가 경찰권을 행사하였고, 지방에서는 주, 군, 현의 행정관이 경찰권을 행사하는 등 치안유지임무를 담당하였다. 국가의 치안유지 임무는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를 통하여 군부와 일반 행정기관이 담당하여 행정의 일부분으로 수행되었다. 다만 고려시대 충렬왕초에 창설된 것으로 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는 순찰(巡察), 포도(捕盜), 형옥관계(刑獄關係)의 업무를 맡아보았다. 이 순군만호부의 명칭은 충렬왕 말, 충선왕초에는 순마소, 순군부로 개칭되기도 하였는데, 오늘날의 경찰업무와 매우 비슷한 업무를 담당하였다.

[조선시대의 경찰기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별 변동 없이 중앙에는 병조, 형조 및 한성부 등이 국가권력 작용의 일환으로 경찰사무를 수행하였고, 지방에서는 관찰사, 부사, 군수, 현령, 현감 등이 경찰권을 행사하였다.

고려시대에 있던 순군만호부가 의금부로 되기까지 몇 번 개칭되면서 경찰업무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조선에서 본격적인 경찰관서로 업무를 수행하던 포도청이 설치된 것은 조선조 성종 때로 추정되는데, 포도청은 서울과 각 지방의 감영과 군위에 설치되어 도적을 잡고 야순을 하는 치안업무를 수행하였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전근대적인 경찰제도라 할 것으로서, 비록 오늘날과 같은 근대적인 경찰제도는 아니었으나 경찰기관이 일반 행정기관으로부터 분리되는 단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포도청은 1894년 경무청(警務廳)이 설치될 때까지 존속했다.

[구한말의 경찰기관]

1894년 한말의 갑오개혁에 따라 포도청이 폐지되고, 내무아문(內務衙門) 소속하에 일본의 경찰제도를 본받아 경무청(警務廳)을 신설하였으며, 근대적인 경찰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경무청은 사법경찰 ·소방·감옥사무를 담당하였고, 그 밑에 한성5부(漢城五府)에 각각 경무지서(警務支署)를 두었고, 경찰관은 군부(서반)에서 문관(文官)으로 대치됨으로써 군경(軍警)이 분리되었다.

1907년 7월 경무청이 경시청으로 바뀌고 산하에 경찰서 95개소를 설치하였다.

[일제시대의 경찰기관]

갑오개혁 이후의 경찰제도는 1910년 완전히 폐지되고, 식민통치의 앞잡이 구실을 한 일본경찰로 대치되었으며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경찰은 우리 민족을 탄압하는 기관으로 군림하였다. 이 시기는 헌병이 경찰책임자가 되는 헌병경찰통합제도였다.

한편, 중국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관제에서는 내무부에 경찰국을 두었는데, 말기에는 내무부에 경무과를 두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관할지역이 없는 상태에서 경찰권행사는 불가능했다.

[미군정시대의 경찰기관]

1945년 광복 후 미군정청은 10월 9일 군정청 법령 제11호를 발포하여 일제강점기시대의 악명 높았던 6개의 경찰법령을 폐지하고, 10월 21일 군정청 예하에 경찰국을 창설하고, 지방에는 경찰부를 두었다. 이를 우리나라의 국립경찰의 창설시점으로 잡는다.

그 후 1946년 행정기구의 대개혁으로 서울에 수도경찰청(首都警察廳), 지방에 관구경찰청(管區警察廳)이 설치되어 치안을 유지하였다. 이로 충청북도의 경찰부는 제4관구경찰청으로 개칭하고 예하 경찰서도 제1구부터 제10구 경찰서로 각각 개칭되었다.

[정부수립후의 경찰기관]

1. 치안국시대

1948년 11월 내무부 산하에 치안국을 설치하고 각 시, 도에도 경찰국을 설치하는 것으로 개시되었다. 한국동란 중인 1950년 12월 16일 태백산 전투사령부 및 지리산 전투사령부가 설치되어 1952년까지 존속하였고, 1953년 5월 서남지구 전투경찰대가 발족되어 이듬해 7월까지 존속하였다.

1952년 12월 해양경찰대가 설치되었고 1954년 10월 경찰항공대가 설치되었다. 1972년 2월 경찰전문학교가 경찰대학으로 승격되고 1973년 12월 공항경비대가 발족되었다.

2.치안본부시대

치안국시대는 1974년 12월 24일 치안본부시대로 이어졌다. 이 시대에는 무엇보다 올림픽 개최를 위한 경찰력 강화가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1986년 11월 공항경비대를 국제공항경찰대로 개편하고 1987년 9월 올림픽경비대 30개 중대를 증편했다. 또 이 시기에는 일선 경찰서 대공과를 강화하고 경찰대학에 대공간부연구소, 경찰종합학교에 대공학과를 설치하는 등 대공관련 업무를 강화시켰다.

3.경찰청시대

1991년 8월 1일 경찰청시대가 열려 치안본부를 경찰청으로, 지방경찰국을 지방경찰청으로, 해양경찰대를 해양경찰청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경찰청시대의 주요사항으로는 1994년 1월 고물상영업 지도단속업무를 폐지했고, 1995년 1월부터는 종전 파출소 또는 지서라 부르던 명칭을 파출소로 통일시켰으며, 1999년 경찰서마다 국민의 소리를 직접 듣는 청문관제가 도입되었다는 점이다.

[현황]

청주에는 충청북도 전역의 치안을 총괄하는 충청북도 지방경찰청과 청주동부경찰서, 그리고 청주서부경찰서가 있고 각각의 경찰서를 중심으로 각 지역을 담당하는 파출소가 있다.

충청북도 지방경찰청은 1945년 10월 21일 국립경찰의 창설과 함께 설립되었고 1949년 4월 11일 제4관구 경찰청으로 개칭하였다. 9월 1일에는 충북도경으로 개칭하였으며 1980년 3월 기동대 창설, 1986년 12월 경찰항공대 창설, 1987년 12월 중부고속도로 순찰대 제10지구대 창설, 1991년 8월 1일 충청북도 지방경찰청이 발족되었으며 1998년 7월 지방청 수사과에 형사기동대를 설치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청주동부경찰서는 1906년 6월 청주서청주분서(淸州署淸州分署)로 개서한 후 1910년 11월 청주경찰서로 개칭하였다. 1946년 4월 제4관구경찰청 제6관구경찰서로 개칭하고 1977년 8월 1등급 경찰서로 상향 조정되었다.

1980년 11월 도규칙 제1801호로 청주서부경찰서와 분리되었고 1991년 5월 방범순찰대 신설, 1993년 3월 신청사 착공식을 거쳐 1995년 9월 현재의 상당구 우암동 신청사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청주서부경찰서는 서부지역의 인구증가로 인해 1980년 11월 임시청사에서 개서하였으며 1981년 10월 신청사를 준공하여 입주하였다. 1982년 3월 제1기동대가 입주하였고 11월에 도보순찰대 수용, 1995년 1월 직제개편을 통해 7개 지서를 파출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03년 4월 신청사를 착공하여 2004년 12월 7일에 흥덕구 봉명동 신청사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와 함께 청주시에서는 경찰·검찰 등 국가기관 이외에 자율방범연합회, 어머니 자율방범대, 청소년 지도위원회 등이 활동하고 있다.

자율방범연합회는 각 동별로 조직된 방범조직의 연합체로 주민의 안전과 청소년 선도에 힘쓰는 한편, 경찰과 유기적 협조를 하면서 지역순찰을 하거나 방범초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 자율방범대는 처음 아파트 부녀봉사단으로 출발해서 등하교길 학생안전 활동에 주력하면서 자율적으로 방범활동까지 하게 되었다. 청소년 지도위원회는 경찰서 단위로 조직되어 있는데 경찰과 협조하여 유흥가의 미성년 고용이나 출입 등 청소년 비행을 사전에 막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치안은 경찰력만으로 완벽하게 수행하기 어렵다. 사회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은 법이나 규범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강제장치 없이도 기꺼이 규범을 지켜나간다.

소규모 사회에서는 어떤 구성원이 주변으로부터 신용을 잃게 되면 여러 방면으로 삶에 지장을 초래하므로 자연스럽고 비공식적인 상벌기제가 법규범 집행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행정기관이나 경찰력은 이러한 비공식적 통제장치가 기능을 상실한 때에만 요구될 뿐이다. 사회 규모의 확대는 고유 치안능력의 쇠퇴와 법적 강제수단의 강화를 동반했다. 사람들 상호간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기술의 진보로 말미암아 새로운 범죄들이 격증했으며 개인의 이익과 공익 사이에는 보다 큰 거리감이 생기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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