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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지동동에 있는 마을. ‘마래골’은 ‘마래’와 ‘골’로 분석된다. ‘마래’는 ‘말’의 변화형으로, ‘말’에 ‘-아’가 붙어 ‘마라’로, 다시 ‘ㅣ’가 첨가되어 ‘마래’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명에서 ‘말’은 ‘말개’·‘말거리’·‘말고개’·‘말골’·‘말마루’·‘말무덤’·‘말둠벙’·‘말미’·‘말바우’·‘말배미’·‘말우물’·‘말재’·‘말티’ 등에서 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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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대동에 있는 도랑. ‘마루돌’은 ‘마루’와 ‘돌’로 분석된다. ‘마루’는 ‘높다’를 뜻하는 백제어 ‘毛良’(모랑)이나 중세국어 ‘’와 관련된다. 지명에서 ‘마루’는 ‘말’·‘말양’·‘말랑’·‘말랑이’·‘날망’·‘마리’·‘머리’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마루’가 후행 요소로 쓰일 때에는 ‘평지보다 약간 높으면서 평평한 곳’을 가리키나, 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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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1954년 5월 15일 전쟁고아 27명으로 대성보육원으로 설립인가(사회부장관 49호)되었다. 1963년 7월 1일에『대성보육원』에서 청주보육원으로 시설명칭을 변경하였고 1973년 2월 20일 육아사업에서 정신지체인 수용시설목적으로 사업을 변경하였고 1984년 2월 7일 청주보육원에서 충북재활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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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갈아 만든 일상생활용 도구나 무기. 마제석기라고도 한다.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유물로 일부 또는 전체를 갈아 만든 석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BC 5000년경의 신석기시대 전기의 유적으로 알려진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鰲山里) 유적에서부터 낚싯바늘, 돌칼 등의 간석기가 출토되고 있다. BC 4000~3000년경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평안남도 온천군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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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력기원전후로부터 기원후 300년까지의 시기를 지칭하는 시대구분의 명칭. 한국고고학에서 사용되는 시대구분 명칭으로, 1970년대 초에 생겨났는데 초기철기시대에 뒤이은 시기를 말한다. 원삼국시대는 종래 고고학에서 김해(金海)시대, 웅천기(熊川期), 또는 초기철기시대 등으로 불려왔고, 역사학에서의 삼한시대, 군장국가, 성읍국가 등이 이에 해당되지만, 삼국시대의 원초기(原初期),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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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남촌동에 있는 산. ‘맹공대’는 ‘맹공’과 ‘대’로 분석된다. ‘맹공대’는 달리 ‘만경대’로도 불리니, ‘맹공’이 ‘만경’의 변화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 ‘만경(萬景)’은 ‘삼라만상의 온갖 경치를 구경함’을 뜻한다. ‘대(臺)’는 ‘전망대’·‘첨성대’에서와 같이, ‘높이 쌓아 사방을 볼 수 있게 만든 곳’을 뜻한다. 그렇다면 ‘맹공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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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장터의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벌인 독립운동가.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신형식(申亨植)·신학구(申學求) 등 문중 사람들과 같이 3월 30일 청원군 미원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 후 일경의 추적을 피해 잠적하였다가 1920년 9월에 동지인 이종만(李鍾萬)의 집에서 신형식 등과 비밀리에 회합하여 상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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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사찰. 1921년 10월 남전(南泉) 스님, 도봉(道峰) 스님, 석두(石頭) 스님 등 조사들의 원력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에 세워진 '조선불교선학원' 본부에 뿌리를 둔 재단법인 선학원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처음에는 만수암(萬壽庵) 또는 만수사(萬壽寺)라 하다가 지금은 만수선원(萬壽禪院)으로 바뀌었다. 소규모의 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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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사찰. 1921년 10월 남전(南泉) 스님, 도봉(道峰) 스님, 석두(石頭) 스님 등 조사들의 원력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에 세워진 '조선불교선학원' 본부에 뿌리를 둔 재단법인 선학원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처음에는 만수암(萬壽庵) 또는 만수사(萬壽寺)라 하다가 지금은 만수선원(萬壽禪院)으로 바뀌었다. 소규모의 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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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사찰. 1921년 10월 남전(南泉) 스님, 도봉(道峰) 스님, 석두(石頭) 스님 등 조사들의 원력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에 세워진 '조선불교선학원' 본부에 뿌리를 둔 재단법인 선학원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처음에는 만수암(萬壽庵) 또는 만수사(萬壽寺)라 하다가 지금은 만수선원(萬壽禪院)으로 바뀌었다. 소규모의 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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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의 서원말에서 청원군 낭성면 지산리의 안그미 사이에 있는고개. ‘말구리’와 ‘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말구리는 ‘큰 골짜기’의 뜻이고 재는 고개의 뜻이다. 따라서 큰 골짜기에 있는 고개로 해석할 수 있다. ‘큰 골짜기에 있는 고개’는 ‘말골재’라고도 한다. 또는, ‘말이 굴러 떨어진 골짜기’, ‘지형이 말의 허리처럼 생긴 골짜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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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에 있는 산. ‘궁무리산’은 1차적으로 ‘궁무리’와 ‘산’으로 분석된다. ‘궁무리’는 다시 ‘궁’과 ‘무리’로 나뉘는데, ‘궁’은 ‘금’의 변화형으로 추정된다. 즉 ‘금’이 ‘굼’으로, 다시 ‘궁’으로 변한 어형으로 보고자 한다. ‘금’은 ‘신(神)’의 뜻인 ‘’에서 기원한 것으로, ‘크다’나 ‘높다’를 뜻한다. ‘무리’는 ‘머리’의 변화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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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에 있는 산. ‘궁무리산’은 1차적으로 ‘궁무리’와 ‘산’으로 분석된다. ‘궁무리’는 다시 ‘궁’과 ‘무리’로 나뉘는데, ‘궁’은 ‘금’의 변화형으로 추정된다. 즉 ‘금’이 ‘굼’으로, 다시 ‘궁’으로 변한 어형으로 보고자 한다. ‘금’은 ‘신(神)’의 뜻인 ‘’에서 기원한 것으로, ‘크다’나 ‘높다’를 뜻한다. ‘무리’는 ‘머리’의 변화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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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북동과 흥덕구 장암동에 있었던 무덤. ‘말무덤’은 ‘말’과 ‘무덤’으로 분석된다. 지명에서 ‘말’은 ‘말개’·‘말거리’·‘말고개’·‘말골’·‘말마루’·‘말둠벙’·‘말미’·‘말바우’·‘말배미’·‘말우물’·‘말재’·‘말티’ 등에서 흔히 발견되는 선행 요소이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말[馬]’과 관련된 유래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발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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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산. ‘말미’는 ‘말’과 ‘미’로 분석된다. 지명에서 ‘말’은 ‘말개’·‘말거리’·‘말고개’·‘말골’·‘말마루’·‘말둠벙’·‘말미’·‘말바우’·‘말배미’·‘말우물’·‘말재’·‘말티’ 등에서 흔히 발견되는 선행 요소이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말[馬]’과 관련된 유래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발견되는 수많은 ‘말’ 계통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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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는 근린공원. 지금은 택지로 개발되어 사라졌지만, 예전에 이곳이 망골이라는 골짜기였기 때문에 망골공원이라 명명하였다. 1992년 1월 6일부터 1994년 11월 30일까지 용암지구 택지조성공사를 하면서 한국토지개발공사가 발주하고 임광토건이 시공하여 용암지구(용암동, 용정동, 방서동, 지북동, 평촌동, 운동동, 월오동) 주민들을 위한 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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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척북리 팔봉산에서 발원하여 청주시 흥덕구의 비하동, 지동동, 평리동, 서촌동 앞을 지나 흥덕구 정봉동에서 미호천(美湖川)으로 흘러드는 하천. 일명 망천(網川)이라고도 한다. 막히지 않고 ‘마구 흘러가는 내’여서 ‘막내’라 하다가 ‘망내’가 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하나 ‘망내’의 유래는 알기 어렵다. ‘망내’라는 하천 이름도 그리 흔하지 않다. ‘망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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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청주목 관아의 누각. 망선루는 객관(客館)의 동쪽에 있었는데, 옛 이름은 취경루(聚景樓)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1361년(공민왕 10)에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을 피하여, 안동으로 몽진하였다가 이곳에 옮겨와 수개월 동안 머물렀었다. 도적이 평정되자 문과와 감시(監試)의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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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밤에 높은 산에 올라가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풍속. 정월 보름날 밤에 달이 떠오르는 것을 남보다 먼저 보면 그 해의 운수가 대통한다고 하여 횃불을 들고 높은 산에 올라 ‘망월여, 망월여’하며 달뜨기를 기다리는데, 이것을 ‘망월본다’ 혹은 ‘달맞이[망월(望月)]’라 한다. 아이들은 산에 올라가 그 해 소원을 달에게 기원하는 의미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깡통을 돌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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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밤에 높은 산에 올라가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풍속. 정월 보름날 밤에 달이 떠오르는 것을 남보다 먼저 보면 그 해의 운수가 대통한다고 하여 횃불을 들고 높은 산에 올라 ‘망월여, 망월여’하며 달뜨기를 기다리는데, 이것을 ‘망월본다’ 혹은 ‘달맞이[망월(望月)]’라 한다. 아이들은 산에 올라가 그 해 소원을 달에게 기원하는 의미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깡통을 돌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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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밤에 높은 산에 올라가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풍속. 정월 보름날 밤에 달이 떠오르는 것을 남보다 먼저 보면 그 해의 운수가 대통한다고 하여 횃불을 들고 높은 산에 올라 ‘망월여, 망월여’하며 달뜨기를 기다리는데, 이것을 ‘망월본다’ 혹은 ‘달맞이[망월(望月)]’라 한다. 아이들은 산에 올라가 그 해 소원을 달에게 기원하는 의미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깡통을 돌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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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척북리 팔봉산에서 발원하여 청주시 흥덕구의 비하동, 지동동, 평리동, 서촌동 앞을 지나 흥덕구 정봉동에서 미호천(美湖川)으로 흘러드는 하천. 일명 망천(網川)이라고도 한다. 막히지 않고 ‘마구 흘러가는 내’여서 ‘막내’라 하다가 ‘망내’가 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하나 ‘망내’의 유래는 알기 어렵다. ‘망내’라는 하천 이름도 그리 흔하지 않다. ‘망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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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수곡동 일대에 조성된 근린공원. 1998년 8월 3일에 조성되었다. 매봉(峰)이라는 이름은 전국에 흔한 산 이름으로서 청주 일대에도 여러 곳이 있다. 매봉의 ‘매’는 새 이름 ‘응(鷹)’을 칭한 것일 수도 있으나, 대개의 경우 산(山)을 뜻하는 ‘뫼’가 변용된 것으로서 마을 가까이 있는 이름 없는 작은 산을 일컫는다.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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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인 청주에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김시습(金時習)[1435~1492]의 시문집(詩文集).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의 저자로 유명한 김시습의 각종 시문(詩文)을 모은 것으로, 이 문집에 나타나는 김시습의 사상은 당시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선양(抑佛揚儒)하는 추세와는 달리 유불공존(儒佛共存)적인 태도로 표현되어 있다. 시집 15권 4책(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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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청주지역의 의병장·충신. 본관은 순천(順天)이고, 자는 시응(時應)이며, 호는 매은당(梅隱堂)이다. 교리공(校理公) 박인년(朴引年)의 후손으로 흥덕구 강서동 출신이다.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청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조헌(趙憲)[1544~1592], 영규대사(靈圭大師)[?~1592]와 함께 청주성 탈환에 공을 세운 민양공(愍襄公) 박춘무(朴春茂)[1544~1611]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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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남촌동에 있는 산. ‘맹공대’는 ‘맹공’과 ‘대’로 분석된다. ‘맹공대’는 달리 ‘만경대’로도 불리니, ‘맹공’이 ‘만경’의 변화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 ‘만경(萬景)’은 ‘삼라만상의 온갖 경치를 구경함’을 뜻한다. ‘대(臺)’는 ‘전망대’·‘첨성대’에서와 같이, ‘높이 쌓아 사방을 볼 수 있게 만든 곳’을 뜻한다. 그렇다면 ‘맹공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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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남촌동에 있는 산. ‘맹공대’는 ‘맹공’과 ‘대’로 분석된다. ‘맹공대’는 달리 ‘만경대’로도 불리니, ‘맹공’이 ‘만경’의 변화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 ‘만경(萬景)’은 ‘삼라만상의 온갖 경치를 구경함’을 뜻한다. ‘대(臺)’는 ‘전망대’·‘첨성대’에서와 같이, ‘높이 쌓아 사방을 볼 수 있게 만든 곳’을 뜻한다. 그렇다면 ‘맹공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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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북동에 있는 마을. ‘머굿대’는 ‘머구’와 ‘대’가 사이시옷을 매개로 결합된 어형이다. ‘머구’는 중세국어 ‘머귀’의 변화형이다. ‘머귀’는 ‘오동나무’를 뜻한다. 이 마을을 달리, ‘오죽(梧竹)’이나 ‘동죽(桐竹)’으로 부르는 사실이 ‘머구’가 ‘머귀’의 변화형임을 암시한다. 지명에서 ‘머귀’는 ‘머’·‘머구’·‘머구나무’·‘머구남’·‘머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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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은 청주시 상당구 오근장동 8통이고, 법정명은 청주시 상당구 정상동 돌꼬지이다. 정상동은 본래 청주군(淸州郡) 북강내일면(北江內一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1914년 일제(日帝)가 행정 구역을 통폐합하면서 봉정리(鳳亭里)와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의 정북리(井北里) 일부를 병합하여 정상리(井上里)라 명명하고 북일면(北一面)에 편입하였다. 정상리(井上里)는 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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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동 돌꼬지마을은 들판에 위치한 마을이다. 마을 앞 들판은 농지정리가 잘 되어 경작하기 편하게 되어 있고, 마을 앞으로 무심천(無心川)이 흐르고, 북쪽으로청주 정북동 토성이 자리 잡고 있고, 마을 입구에 낮은 야산이 위치한다. 이 산에 돌꼬지의 유래가 된 하얀 돌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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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에 편입된 동이지만 마을의 형태는 농촌의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생활의 흐름도 농사일에 맞춰 진행된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농사 준비해서 가을걷이로 마무리한다. 특별히 특용작물을 재배하지도 않기 때문에 겨울에는 한가로이 쉬면서 지낸다. 동네에 인구밀집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생필품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없어 하루에 한 번 정도 들어오는 이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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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후 근대 교육을 받기 시작한 세대는 청주대성학교와 북일초등학교를 다녔다. 북일초등학교는 인근 학생들이 모두 다녀서 한 때 학생수가 2,000여 명이나 되어 오후반이 개설될 정도였다. 그러나 현재는 주민이 줄어들어 학생수가 100여 명 정도라서 폐교된다는 말이 있다. 현재 돌꼬지마을 아이들은 새터초등학교를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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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꼬지[石花] 마을에는 용출수인 우물이 마을 입구에 있다. 이 우물로 인해 정상동, 정하동, 정북동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할 정도로 인근에서는 유명한 우물이다. 실제로 농업용수가 개발되기 전까지 이 물은 농업용수로, 식수로도 쓰여 주민들의 생활을 유지시켜 주는 우물이었다. 이런 고마운 우물에 동네 주민들은 샘제(용왕제)를 지낸다. 돌꼬지 동제는 세 군데서 지냈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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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마을에서 출산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출산을 할 연령대의 주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출산 풍속이 바뀌어 조산원이나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 제보자들은 모두 자신의 집에서 출산을 했다. 산모가 진통을 시작하면 방에 미리 추려 놓은 짚을 깔거나 회푸대 종이를 깔아 삼자리를 마련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산파가 탯줄을 자르는데, 아이의 배꼽에서 넉넉하게 한 뼘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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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정월 내 띄우던 연을 날려버리는 날이다. 연줄에 솜방망이를 달아 솜방망이에 불을 피워 띄우면 어느 정도 날아가다가 대추나무에 걸린다. 이를 보고 “대추나무 연 걸린 듯하다”라고 했다. 정월대보름에는 열 나흗날 농사 떡(고사떡)을 해놓는다. 돌꼬지마을 정월고사는 동제를 지낸 다음 날부터 지낼 수 있다. 산제가 열사흘이면, 열 나흗날 떡을 해서 고사를 올린다. 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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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리 저거리 닷거리 / 천두 만두 저만두 쫙 벌려 소양강 / 오리진치 살어육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우리 애기 잘두 잔다 검둥개도 잘두 잔다 흰둥이도 잘두 잔다 자장자장 자장 자장 앞집 강아지 잘두 잔다 (아이를 눕히거나 무릎에 올려 앉고 ) 엄마 손은 약손이고 네 배는 똥배 썩 나려 가그라 떨크덩 떨크덩 찧는 방아 언제나 다 찧고 밤마실 가냐 시어머니 시집살이 할제는 좋기두(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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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꼬지마을 교통은 편한 편은 아니다. 대중교통편인 시내버스는 하루 몇 번 운행되지 않는데 이는 대부분 시내버스 종착점이 밑에 마을인 정하동이기 때문이다. 마을 앞까지 오는 시내버스 첫차는 여섯 시에 있고, 막차는 열한시에 있다 일제시대 때는 마을에 국철이 개통되었고, 청주역이 생기면서 1980년대 철도 복선공사로 인해 마을 앞 도로를 넓힐 수 없어 1차선 도로가 현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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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북동에 있는 마을. ‘머굿대’는 ‘머구’와 ‘대’가 사이시옷을 매개로 결합된 어형이다. ‘머구’는 중세국어 ‘머귀’의 변화형이다. ‘머귀’는 ‘오동나무’를 뜻한다. 이 마을을 달리, ‘오죽(梧竹)’이나 ‘동죽(桐竹)’으로 부르는 사실이 ‘머구’가 ‘머귀’의 변화형임을 암시한다. 지명에서 ‘머귀’는 ‘머’·‘머구’·‘머구나무’·‘머구남’·‘머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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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북동에 있는 들. 일명, 정북지구들 또는 정북동들이라고도 하며, 머그때는 ‘머굿대’, ‘머귀대’, ‘동죽(桐竹)’, ‘오죽(梧竹)'이라고도 한다. 머굿대는 토성리 남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머굿대는 ‘머구’와 ‘대’가 합쳐진 말이다. ‘머구’는 오동나무를 뜻하는 ‘머귀’의 변형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머귀’, ‘머구’, ‘머구나무’를 포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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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북동에 있는 마을. ‘머굿대’는 ‘머구’와 ‘대’가 사이시옷을 매개로 결합된 어형이다. ‘머구’는 중세국어 ‘머귀’의 변화형이다. ‘머귀’는 ‘오동나무’를 뜻한다. 이 마을을 달리, ‘오죽(梧竹)’이나 ‘동죽(桐竹)’으로 부르는 사실이 ‘머구’가 ‘머귀’의 변화형임을 암시한다. 지명에서 ‘머귀’는 ‘머’·‘머구’·‘머구나무’·‘머구남’·‘머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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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골짜기. 먹을 한자로 쓰면 묵(墨)이 되므로, 이곳에서는 묵방골을 먹방골이라고도 하는데, 먹방이란 먹을 만드는 곳이고, 먹방골이란 먹방이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이다.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을 이용하여 먹을 만드는데(송연흑), 이 골짜기에 소나무가 많아서 먹방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먹방골은 이곳 외에도 전국 곳곳에 많이 있으며, 율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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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골짜기. 먹을 한자로 쓰면 묵(墨)이 되므로, 이곳에서는 묵방골을 먹방골이라고도 하는데, 먹방이란 먹을 만드는 곳이고, 먹방골이란 먹방이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이다.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을 이용하여 먹을 만드는데(송연흑), 이 골짜기에 소나무가 많아서 먹방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먹방골은 이곳 외에도 전국 곳곳에 많이 있으며, 율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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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골짜기. ‘먹뱅이’는 ‘먹방이’의 변화형이다. 즉 ‘먹방이’가 ‘ㅣ’모음 역행동화에 의해 변한 어형이 ‘먹뱅이’이다. ‘먹방이’는 ‘먹방’과 ‘이’로 분석된다. ‘먹방(-坊)’은 ‘먹을 만드는 동네'를 뜻하고, ‘-이’는 접미사이다. ‘-이’가 붙은 ‘먹방이’는 3음절인 관계로 ‘먹방’ 보다 안정감을 줄 뿐, 뜻은 ‘먹방’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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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었던 들. ‘먼두듥’은 ‘먼’과 ‘두듥’으로 분석된다. ‘먼-’은 ‘멀다[원(遠)]’의 관형형이다. ‘두듥’은 ‘두둑’·‘둔덕’의 중세국어로, ‘두두룩하게 언덕진 곳’을 뜻한다. 따라서 ‘먼두듥’은 ‘멀리 뻗쳐 있는, 두두룩하게 언덕진 곳’으로 해석된다. 과거 들이 두두룩한 모습으로 길게 이어져 붙은 이름이다. 이 들은 달리 ‘먼두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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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었던 들. ‘먼두듥’은 ‘먼’과 ‘두듥’으로 분석된다. ‘먼-’은 ‘멀다[원(遠)]’의 관형형이다. ‘두듥’은 ‘두둑’·‘둔덕’의 중세국어로, ‘두두룩하게 언덕진 곳’을 뜻한다. 따라서 ‘먼두듥’은 ‘멀리 뻗쳐 있는, 두두룩하게 언덕진 곳’으로 해석된다. 과거 들이 두두룩한 모습으로 길게 이어져 붙은 이름이다. 이 들은 달리 ‘먼두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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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정봉동에 있는 들. ‘모잇날’은 ‘모이’와 ‘날’이 사이시옷을 매개로 결합된 어형이다. ‘모이’는 신라어 ‘芼兮’(뫼ㅎ)에서 기원한 것으로, ‘산’을 뜻한다. 지명에서 ‘미’·‘매’·‘메’·‘뫼’로도 나타난다. ‘날’은 ‘연장의 가장 날카로운 부분’을 뜻한다. 때로는 ‘진날이’에서와 같이 접미사 ‘-이’가 붙어 ‘날이’로 실현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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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 청주 출신의 관리.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쿠데타를 일으켜 궁예(弓裔)를 몰아냈을 때 재경청주인은 왕건파와 궁예파로 나뉘었는데, 명길(明吉)은 친왕건파였다. 즉위한 직후 청주지방 호족세력의 동향에 대해 염려를 하던 태조는 재경청주인 문식(文植)·능달(能達)과 함께 청주에 파견하였다. 돌아와 동향출신의 김근겸(金勤謙)·관준(寬駿)에게 청주지방의 반란을 조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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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 일대에 조성된 근린공원. 명심공원은 낮은 구릉인 명심산(明心山)[113.4m] 일대에 조성되어 있다. 동쪽에는 무심천(無心川)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으며, 과거에는 명심산 기슭까지 범람원이 형성되었다. 범람원은 제방공사를 거쳐 농지로 개간되었으나, 1980년대부터 택지로 전용되어 시가지가 들어섰다. 충청북도 청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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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에 있는 산. 이 산의 ‘명심(明心)’은 밝은 마음의 산으로 붙어진 이름이고 ‘신봉산’은 신봉동에 있는 산으로 붙어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또한, 어당 뒤쪽에 있어 뒷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산의 높은 봉우리를 ‘상봉’, 낮은 봉우리를 ‘하봉’이라고 하여 구별한다. 명심산의 ‘옥녀봉’은 옥녀가 머리를 산발한 하고 있는 봉우리, 옥녀가 거문고를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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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명암동·산성동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청주군 동주내면(東州內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휴암리(休岩里)를 병합하여 사주면(四州面)에 편입되었다. 1946년 6월 1일 청주읍이 청주부로 승격됨에 따라 개칭된 청원군(淸原郡) 관할이 되었다. 1963년 1월 1일 청원군 사주면이 완전히 청주시에 편입될 때, 명암리도 청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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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유적지. 이곳에서 뗀석기를 찾았는데, 그 가운데 반암을 돌감으로 때릴면을 조정하여 떼어낸 격지가 주목된다. 이 지역은 상당히 오랫동안의 경작과정으로 본래의 유물 포함층을 찾지는 못하였으나, 깍여진 단면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되는 홍적토가 확인되어 석기와 함께 유적의 가능성을 갖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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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주거지·돌덧널무덤[石槨墓]·움무덤[土壙墓] 등의 유구가 출토된 유적. 청주시에서 시행한 동부우회도로 건설공사 중 삼국시대 토기편과 돌덧널무덤의 잔해로 보이는 석재가 노출된 사실을 확인하여 1998년·1999년의 2차례에 걸쳐 국립청주박물관에서 긴급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는 Ⅰ·Ⅱ지구로 구분하여 연차적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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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명암동에 있는 명암약수와 관련된 전설. 명암약수터는 명암동의 속칭 범밭골[虎田谷]에 있다. 이곳은 1920년대까지만 해도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밤낮으로 호랑이와 늑대가 출몰하였으며, 커다란 바위에 호랑이가 올라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곳을 범바윗골[虎岩谷] 또는 범밭골[虎田谷]이라고 불렀다. 그전에 청주 고을 남들(현 수곡동)에 사는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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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약수터. 명암동의 물탕골에 있는 약수로 명암에 있는 약수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명암약수는 1920년대 초기에 발견되었는데, 탄산천으로 철분 함유량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상당산(上黨山)[419m]의 남쪽 산록에 자리잡고 있으며, 상당산(上黨山)[419m]에서 내려오는 물이 골짜기를 따라 명암지로 흘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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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유원지. 우암산(牛岩山)[338m]의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상당산성에서 내려오는 물이 골짜기를 따라와 명암지로 흘러들고 있다. 청주시내에서 상당산성으로 가는 길목에 있으며 명암약수터, 또는 상당산성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쉽게 갈 수 있다. 시내에서 명암로를 거쳐 512번 지방도를 이용하거나 동부우회도로를 이용하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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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있는 저수지. 명암지는 우암산(牛岩山)[338m] 동쪽 기슭에 있으며, 청주 상당산성 쪽에서 명암약수터가 있는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는 물을 모아 저수지로 만들었다. 명암방죽은 용담동에 있는 큰 방죽이며, 일명 명암저수지(明岩貯水池)라고도 한다. 명암방죽은 일제강점기 때인 1918년 착공하여 1921년 준공한 저수지로서 몽리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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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있는 저수지. 명암지는 우암산(牛岩山)[338m] 동쪽 기슭에 있으며, 청주 상당산성 쪽에서 명암약수터가 있는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는 물을 모아 저수지로 만들었다. 명암방죽은 용담동에 있는 큰 방죽이며, 일명 명암저수지(明岩貯水池)라고도 한다. 명암방죽은 일제강점기 때인 1918년 착공하여 1921년 준공한 저수지로서 몽리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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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의 상당산성에서 발원하여 금천동을 지나 무심천(無心川)으로 흘러드는 하천. 쇠내개울, 금천(金川), 명암천(明岩川)이라고도 한다. 쇠내개울은 ‘금이 나는 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지역은 지금도 금과 관련된 지명전설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일제강점기까지도 쇠내개울의 상류에 금광이 있었으며, 내에서 사금을 채취하였고 한다. 또한, 장마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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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상당구 대성동에 위치한 천태종의 불교사찰. 총본산을 충청북도 단양군 구인사에 두고 있는 천태종은 충청북도 도청소재지 청주의 명장사를 그 관문사찰로 인식하고 있다. 1972년 40여명이 청원군 북일면 남일리에서 창립법회를 봉행한 것을 모태로 한다. 이후 1974년 영운동에 회관을 마련하고 정문사(正文寺)라 하였다가 1980년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1985년 명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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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의 우암동, 내덕동, 대성동, 용담동, 명암동에 걸쳐 있는 산. 이 산은 삼국시대에는 백제 상당현의 치소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신라 신문왕 9년(689)에는 우암토성을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은 정상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의 3개 봉우리를 거쳐 남서방향으로 뻗어 내린 서쪽의 능선, 그리고 정상에서 동쪽으로 분기했다가 서쪽의 능선과 거의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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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상당구 동편에 위치하는 청주의 진산이며 문화유적의 보고. 청주시의 동편에 위치하는 우암산(牛岩山)[338m]은 청주의 진산(鎭山)으로 청주시의 명암동, 내덕동, 우암동, 수동, 대성동, 문화동, 용암동에 걸쳐 있고 그 지맥이 탑동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해발 338m의 정상을 중심으로 남과 북 3좌의 연봉과 중앙초등학교 동쪽의 당산(唐山)에까지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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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정봉동에 있는 들. ‘모잇날’은 ‘모이’와 ‘날’이 사이시옷을 매개로 결합된 어형이다. ‘모이’는 신라어 ‘芼兮’(뫼ㅎ)에서 기원한 것으로, ‘산’을 뜻한다. 지명에서 ‘미’·‘매’·‘메’·‘뫼’로도 나타난다. ‘날’은 ‘연장의 가장 날카로운 부분’을 뜻한다. 때로는 ‘진날이’에서와 같이 접미사 ‘-이’가 붙어 ‘날이’로 실현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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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과 흥덕구 모충동을 연결하는 다리. 1958년 개통된 다리로서 총연장 131m, 폭 8m이며, 상부는 RC중공슬라브방식, 하부는 라멘방식의 공법으로 축조되었다. 모충교(慕忠橋)의 명칭은 모충동(慕忠洞)에서 따온 것인데, 그 동(洞) 이름은 이곳에 있는 모충사(慕忠祠)에 근거하여 1947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모충교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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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에 있는 법정동. 이곳에 모충사가 있어서 그 이름 따 모충동이라 명명하였다. 본래 청주군 남주내면(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월교리(越橋里), 화청리(華淸里), 화동리(華東里), 수곡리(秀谷里), 보십리(甫十里)의 일부와 서주내면(西州內面)의 화흥리(華興里)를 병합하여 사주면(四州面)에 속하였다. 19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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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과 개신동 사이에 있는 고개 및 옛 마을. ‘배티’의 ‘배’는 이 고갯마루에 배나무들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티’는 고개의 뜻이므로, ‘배고개’라고도 불리웠다. 이현(梨峴)은 ‘배티’를 한자화한 지명이다. 또한 ‘배티’는 배티 밑에 있는 마을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모충동 쪽 배티마을에는 곡산연씨(谷山延氏)가 많이 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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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모충동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성당. 정진석 주교는 1992년 7월 수곡동성당에서 분할시켜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 127-3번지[서원남로 17]에 모충동성당을 신설했다. 초대주임에는 윤기국(요한) 신부가 임명됐다. 본당이 설정된 후 1993년 5월 지금의 성당터에 80여평 규모의 조립식 건물을 짓고 임시성당 축복미사를 가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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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 동단에서 개신동 충북대학병원 앞까지 연결되는 도로. 동쪽은 무심서로와 교차하는 모충대교 서쪽의 모충대교오거리에서 시작하여 서쪽은 제1순환도로와 교차하는 개신오거리에서 끝난다. 폭은 15~25m이며, 길이는 1,680m이다. 동쪽부터 서쪽까지 연결 도로를 보면, 북쪽 방향으로 남사로, 국보로, 예체로, 신사중로 등이 있다. 도로명은 도로 중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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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에 있는 사당.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 대전 방면에서 집결한 동학군을 해산시키기 위하여 충청병영의 영관(領官) 염도희(廉道希)가 교장(敎長) 박춘빈(朴春彬)과 대관(隊官) 이종구(李鍾九) 이하 70명의 병사를 이끌고 출진하였다가 청원군 강외면 지역에서 모두 전몰하였다. 이들 장졸들의 순절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1894년 11월 전임목사 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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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모충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나라를 사랑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노력하는 어린이, 질서를 존중하고 서로 돕는 어린이, 스스로 학습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어린이, 몸이 건강하고 환경을 깨끗이 하는 어린이를 길러 새롭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며 튼튼하게 자라는 어린이를 육성한다. 1967년 모충초등학교 설립인가를 받아 1968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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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지동동과 상당구 용암동에 있는 마을. 이 지역에는 두 개의 이름이 나타나는데, ‘목골’은 ‘못골’의 변형이다, ‘못골’의 ‘못’은 ‘방죽’을 의미하고 ‘못골’은 ‘방죽이 있는 골짜기’로 해석된다. 야기서 ‘못’은 구체적으로 지동동의 ‘송말방죽’을 의미하고 있다. 이 골짜기에 마을이 들어서서 골짜기 이름으로 마을이름을 삼아 그 마을을 ‘못골’ 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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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지동동과 상당구 용암동에 있는 마을. 이 지역에는 두 개의 이름이 나타나는데, ‘목골’은 ‘못골’의 변형이다, ‘못골’의 ‘못’은 ‘방죽’을 의미하고 ‘못골’은 ‘방죽이 있는 골짜기’로 해석된다. 야기서 ‘못’은 구체적으로 지동동의 ‘송말방죽’을 의미하고 있다. 이 골짜기에 마을이 들어서서 골짜기 이름으로 마을이름을 삼아 그 마을을 ‘못골’ 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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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 속하는 법정동. 큰 못이 있어서 못골, 목골, 지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지동동은 본래 청주군 서강내일상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동원리, 지서리, 신기리, 비하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지동리라 명명하고 강서면에 편입하였다. 1983년 2월 대통령령에 의하여 지동동으로 바꾸어 청주시 강서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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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지북동 북단에서 월오동 북단까지 연결되는 보조간선도로. 도로의 북단에 있는 목련공원의 명칭을 딴 것이다. 서쪽은 단재로 지북교차로에서 시작하여 북쪽은 목련공원 북동단에서 끝난다. 폭은 10m로 소로 1류에 해당하는 편도 1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이며, 길이는 7,867m이다. 목련공원로 북쪽에는 소로인 운동로가 동서 방향으로 나란히 뻗어 있다. 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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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에 있는 김효성(金孝誠)[1585~1651]의 선정비. 1651년(효종 2)에 조선 인조(仁祖) 대에 청주목사(淸州牧使)를 지낸 김효성의 선정(善政)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상당구 남문로 2가 청주 시내 중심가에 있는 중앙공원(中央公園) 동편 화단에 서향으로 위치해 있다. 높이 128㎝, 폭 72㎝, 두께 19㎝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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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에 있는 조선후기 청주목사 서유민의 선정비. 조선 후기에 청주목사를 지낸 서유민이 백성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관청건물을 보수한 선정을 기려 1842년(헌종 8)에 세운 비석이다. 남문로2가(南門路二街)의 중앙공원(中央公園) 내 동쪽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있다. 높이 141㎝, 폭 43㎝, 두께 15㎝의 비갈(碑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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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조선중기 청주목사 이경여(李敬輿)[1585~1657]의 선정비. 조선 인조(仁祖) 대에 청주 목사 이경여가 청렴결백하게 선정을 베푼 것을 기려 1631년(인조 9)에 세운 비이다. 남문로2가(南門路二街)의 청주시내 중심가에 있는 중앙공원(中央公園) 동편 담장 아래 화단에 서향에 위치해 있다. 거북대좌 위에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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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었던 절터.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목암(牧菴)’ 또는 ‘목우암(牧牛菴)’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창건시기에 대한 문헌기록은 없으나, 출토유물로 보아 통일신라에 창건되어 조선 말기까지 번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의 막새기와, 해무리굽 청자, 토기편 등이 다량으로 수습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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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었던 사찰. 1950년대 전후에 정필화스님이 창건한 절로 민가에 법당을 차린 작은 절이다. 목암사라는 이름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등장하는 ‘목암(牧庵)’에서 유래된 것으로, 현재는 대한불교수도원 사역에 포함된 ‘목우사(牧牛寺)’, 혹은 ‘목암’ 절터에서는 1329년(고려 충숙왕 2)에 중수한 것을 추정할 수 있는 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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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었던 사찰. 1950년대 전후에 정필화스님이 창건한 절로 민가에 법당을 차린 작은 절이다. 목암사라는 이름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등장하는 ‘목암(牧庵)’에서 유래된 것으로, 현재는 대한불교수도원 사역에 포함된 ‘목우사(牧牛寺)’, 혹은 ‘목암’ 절터에서는 1329년(고려 충숙왕 2)에 중수한 것을 추정할 수 있는 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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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상당구 동편에 위치하는 청주의 진산이며 문화유적의 보고. 청주시의 동편에 위치하는 우암산(牛岩山)[338m]은 청주의 진산(鎭山)으로 청주시의 명암동, 내덕동, 우암동, 수동, 대성동, 문화동, 용암동에 걸쳐 있고 그 지맥이 탑동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해발 338m의 정상을 중심으로 남과 북 3좌의 연봉과 중앙초등학교 동쪽의 당산(唐山)에까지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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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물과 찬물로 목욕하는 설비 또는 장소. 우리나라의 전통가옥에는 목욕간(沐浴間)이나 목욕탕이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으며, 일반 서민들은 추운 겨울을 제외한 다른 계절은 내[천(川)]나 강, 호수에서 몸을 씻었고 겨울에는 부엌이나 헛간에서 목욕을 하였다. 또한 양반들은 목간통이라는 나무로 만든 둥근 욕조를 안방 또는 사랑방에 들여놓고 하인들이 운반해 온 더운물을 끼얹는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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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었던 절터.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목암(牧菴)’ 또는 ‘목우암(牧牛菴)’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창건시기에 대한 문헌기록은 없으나, 출토유물로 보아 통일신라에 창건되어 조선 말기까지 번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의 막새기와, 해무리굽 청자, 토기편 등이 다량으로 수습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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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의 봉황사에 있는 불상. 현재 이 불상은 목암사가 폐사(廢寺)되었기 때문에 주지인 송파스님의 발원으로 2002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봉황사를 신축(新築)하여 모셔두고 있다. 석불입상의 머리는 최근에 후보된 것이나 나머지 부분은 보존이 양호하다. 목에는 삼도가 있고 어깨는 넓지 않으며 몸 전체에 양감이 부드럽게 드러나고 있다. 법의는 통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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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상당구 동편에 위치하는 청주의 진산이며 문화유적의 보고. 청주시의 동편에 위치하는 우암산(牛岩山)[338m]은 청주의 진산(鎭山)으로 청주시의 명암동, 내덕동, 우암동, 수동, 대성동, 문화동, 용암동에 걸쳐 있고 그 지맥이 탑동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해발 338m의 정상을 중심으로 남과 북 3좌의 연봉과 중앙초등학교 동쪽의 당산(唐山)에까지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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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 백제 때 대목악군(大木岳郡), 신라 때 경덕왕(景德王)이 고쳐 대록군(大麓郡)이라 하였다. 고려 때 다시 목주군으로 고쳐 청주목에 속했던 2군(郡), 7현(縣) 중의 하나이다. 1172년(고려 명종 2) 감무(監務)를 두어 다스리게 하였으며, 성종(成宗) 때 달리 신정(新定)이라 부르기도 하였다(『고려사(高麗史)』). 목주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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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본관은 사천(泗川)으로 경기도 양성 출신이다. 무신란에 이인좌(李麟佐) 군의 진용도위(進勇都尉)로 3월 15일에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1676~1728], 영장 남연년(南延年), 군관 홍림(洪霖)[1685~1728]을 살해하고 청주성을 장악하는데 가담하였다. 청주성 장악 후 이인좌는 대원수를 자칭하고, 여러 부하에게 직위를 주고 반군을 편성한다. 이때 목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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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 속하는 법정동. 큰 못이 있어서 못골, 목골, 지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지동동은 본래 청주군 서강내일상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동원리, 지서리, 신기리, 비하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지동리라 명명하고 강서면에 편입하였다. 1983년 2월 대통령령에 의하여 지동동으로 바꾸어 청주시 강서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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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지북동에 있는 마을. ‘못뒤’는 지북방죽 뒤에 있는 마을이이라는 뜻으로 ‘지북(池北)', ‘북촌(北村)'이라고도 한다. ‘못뒤’는 ‘연못의 뒤’라는 뜻으로, 마을이 연못 뒤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못앞’, ‘못안’, ‘못밖’, ‘못밑’ 등과 같은 지명도 있는데, 이들은 연못을 중심으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지북(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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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에 찾아가 드리는 제사. 묘제는 묘에 제사를 드리는 것을 모두 지칭한다. 먼저 장례 기간에 올리는 묘제가 있다.. 묘의 봉분을 만든 뒤 처음으로 묘제를 올린다. 영좌를 묘 앞에 모시고 간단한 음식을 차려 놓고 술잔을 올린다. 축문을 읽은 뒤 두 번 절을 한다. 그리고 소상과 대상 때도 묘제를 올리며, 탈상을 했을 때도 묘제를 올렸다. 청주지역에서는 지금 소상 대상이 없고 탈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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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이용자에게 휴식 등을 제공하기 위하여 일정한 구역내에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한 묘지와 공원시설을 혼합하여 설치한 공원. 묘지공원의 역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중세 카톨릭교회의 부속묘지와 같은 집단묘지가 생겨남으로써 시작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면적 및 범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게 되고 관리 및 유지의 소홀로 인한 전염병과 위생적인 문제가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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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을 선발하는 무과시험에 합격한 사람. 조선시대 무과는 문과와 더불어 핵심지배계층을 형성하는 공식적인 선발과정이었다. 무과시험제도가 고려시대에는 없었으며, 조선이 개국하면서 새롭게 설치되었다. 문과시험과 달리 예비시험이 없고 대과만 시행되었는데, 초시, 복시, 전시를 거쳐 28명을 선발하였다. 별도의 장원을 선발하지 않고 급제한 사람들에게는 홍패를 지급하였다. 청주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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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싸울 때 쓰는 도구의 총칭. 철제 무기류의 발달은 고대국가로 성장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인을 이루고 있다. 무기류는 그 특징에 따라 크게 공격용 무기와 방어용 무기로 나뉜다. 청주지역에서 확인된 3~5세기 대의 무기류는 모두 철로 만든 철제품(鐵製品)으로 대부분 공격용 무기이다. 이에 반하여 방어용 무기는 공격용 무기에 비하여 확인된 예가 극히 드물며, 대체로 4세기 후반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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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미평동과 성화동 사이에 있는 고개. ‘무네미 고개’는 ‘무네미’와 ‘고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물이 넘어가는 고개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흥덕구 미평동에서 성화동의 요류골으로 넘어가는 ‘무네미 고개’ 밑에는 ‘무네미골’이 있어 미평동의 물이 고개를 넘어가면 새 세상이 된다는 전설이 있다. 성화동 오류골에서 청원군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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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방서동에 있는 청주한씨(淸州韓氏) 문중에서 세운 정자. 최초의 무농정은 고려의 개국공신이며 청주한씨의 시조인 한란이 농사에 대한 교육과 농사일을 독려하기 위해 청주시 방서동 속칭 ‘큰대머리’ 마을 언덕 위에 건립하였다. 그러나 폐허가 되자 1688년(숙종 14) 후손 한익저(韓益著)가 그 터 옆에 유허비를 세웠다. 1949년 후손들이 정자가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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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에 위치한, 무농정의 옛터를 기념하는 비. 한씨(韓氏) 문중에서 무농정의 옛 터에 세운 표석이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 210-4의 대머리공원내에 있다. 높이 93㎝, 폭 40㎝, 두께 20㎝의 비갈(碑碣)모양의 비신(碑身)으로 세웠다. 앞면에 ‘무농정(務農亭)’이라 새기고, 뒷면에는 건립취지를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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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에 있는 도로. 동쪽은 영운로에서 시작하여 서쪽은 청남로에서 끝난다. 무성로는 다시 무성1로와 무성2로로 나누어지는데, 무성1로는 영운로에서 시작하여 단재로까지이며, 무성2로는 단재로에서 청남로까지이다. 무성1로 남쪽에는 석교초등학교가 있으며, 중간에서 대성로와 직교한다. 폭은 각각 10m이며, 길이는 무성1로는 250m, 무성2로는 13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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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의 무관. 1881년 11월 28일부터 1882년 8월 1일까지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근대 개항기 고종(高宗) 때의 무관이다.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인여(藺汝), 호는 미산(渼山)으로 능성구씨 도원수파(都元帥派)의 인물이다. 아버지는 구병일(具秉一),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 생모는 함종어씨(咸從魚氏)이며, 부인은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일찍이 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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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에 가담한 인물이다. 무신란 때 청주 점령의 가담인물로, 양성에서 모여 청주로 와 이인좌(李麟佐) 군의 분용도위(奮勇都尉)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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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영조 4)에 소론(少論) 과격파들과 남인(南人)이 영조(英祖)와 노론을 제거하고 밀풍군(密豊君) 탄(坦)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일으킨 난.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은 노론(老論)이 지지하는 영조의 즉위로 위협을 느낀 소론의 과격파들과 남인이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고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증손(曾孫)인 밀풍군 탄(坦)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일으킨 난이다.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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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에 가담한 인물이다. 무신란 때 청주 점령의 가담인물로, 양성에서 모여 청주로 와 이인좌(李麟佐) 군의 분용도위(奮勇都尉)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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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사창동에 있는 화랑. 1990년 10월 22일에 설립되어 지역 미술의 발전에 힘 써왔으며, 2002년에는 서울에도 엄갤러리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화랑의 문을 열어 청주와의 연계전시 등으로 지역미술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교육문화의 도시에 맞는 문화가 조성되지 않은 청주에서 문화발전의 선봉장으로 일반인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키고 나아가 작가의 역량을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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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평동 동북단 청주시계에서 석교동 남단까지 연결되는 도로. 무심천(無心川) 동쪽 제방을 따라 개설된 도로이므로 무심동로라 하였다. 북동쪽은 공항로에서 시작하여 남쪽은 단재로에서 끝난다. 폭은 5~30m이며, 길이는 13,500m이다. 무심천(無心川)의 동쪽 제방을 이용하여 개설된 도로이다. 무심천(無心川) 건너 서쪽에는 무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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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원평동 북단에서 장암동 동단까지 연결되는 도로. 무심천(無心川) 서쪽 제방을 따라서 개설된 도로이므로 무심서로라 하였다. 북쪽은 미호천(美湖川)과 무심천(無心川)이 합류하는 지점인 원평동 북단에서 시작하여 남쪽은 제2순환도로 남쪽인 장암동 동단에서 끝난다. 폭은 5~25m이며, 길이는 약 11,800m이다. 무심천(無心川) 서쪽 제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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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무심천변에 조성된 체육공원. 충청북도 청주시는 청주의 상징이자 젖줄인 무심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조성하여 쾌적한 녹지공간을 확보하는 무심천 공원화사업을 계획하고 2001년 시민 및 전문가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무심천 공원화사업 실시계획에 따른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공청회의 결과 시민의 휴식공간을 조성하기로 하고 단계별로 무심천 공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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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무심천에서 행해지는 불교 관련 문화 축제. 유등제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전투에서 유래하는데, 1593년 진주성 함락으로 7만의 병사와 백성들이 순국한 계사순의(癸巳殉義) 이후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 행사로 시작되었다. 무심천 유등문화제는 원래 그동안 불교인들만의 행사로 진행되던 유등제를 2005년 유네스코직지상 시상식과 연계해 직지찾기 유등문화제로 개칭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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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무심천변에 조성된 자전거 전용도로.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통한 도심 지역 교통난 해소와 시민들의 여가 선용에 기여하기 위하여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2003년부터 건립하였다. 무심천 개발계획에 의거하여 국비 13억 원, 시비 35억 원 등 총 48억 원의 사업비가 소요되었다. 연도별로 구간을 나눠 개장하였으며 2003년 10월부터 2004년 10월까지 수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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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지역에 기반을 두고 서양화를 하는 작가로 구성된 순수미술단체. 서양화를 전공한 젊은 청년 작가와 중견 작가들로 구성된 순수 서양화 단체로서 서양화작품 발표의 기회를 마련하고, 젊고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 영입하여 신진세대를 육성함으로써 충청북도지역의 미술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1986년에 14명의 발기인이 모여 창립되었다. 기존회원의 추천과 동의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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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지역에 기반을 두고 서양화를 하는 작가로 구성된 순수미술단체. 서양화를 전공한 젊은 청년 작가와 중견 작가들로 구성된 순수 서양화 단체로서 서양화작품 발표의 기회를 마련하고, 젊고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 영입하여 신진세대를 육성함으로써 충청북도지역의 미술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1986년에 14명의 발기인이 모여 창립되었다. 기존회원의 추천과 동의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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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경제간의 상품교환을 통해 재화의 효용 및 경제가치를 증가시키는 활동. 한국의 무역정책은 수출을 진흥하며 수입을 조정하고 건전한 거래를 추진함으로써 국제수지의 균형과 국민경제의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1960년 이후 무역이 서서히 이루어지면서 정부는 경제발전과 경제규모의 확대, 나아가 경제개발의 연차계획에 따라 무역정책상의 제반요구를 감당하기 위해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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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육체를 표현매체로 시·공간적인 동작 조성을 통해 가시적인 의미체를 형성하는 현상으로 율동적인 동작으로 사상, 감정, 정서 등을 율동적으로 표현하는 예술. 충청북도에서 무용의 발자취는 1959년 제1회 충북예술제가 개최되고 문예예술총연합회에 무용분과가 발족되면서 단체활동이 시작되었다. 이 당시 무용분과에는 정태경, 이정애, 이경호가 각각 일을 맡아보고 있었고,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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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에 있는 마을. ‘무터골’은 ‘물터골’의 변형이다. ‘물터골’은 ‘물터’와 ‘골’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물터’ 는 ‘물이 많이 나는 자리’로 해석된다. 이 '물터’가 있는 골짜기가 ‘물터골’이며 이로부터 ‘ㄹ'이 탈락하여 ‘무터골’이 된 것이다. ‘무터골’은 지역에 따라 ‘무테골’로도 나타난다. ‘무터골’은 본래 골짜기 이름이나 여기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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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골짜기. ‘먹뱅이’는 ‘먹방이’의 변화형이다. 즉 ‘먹방이’가 ‘ㅣ’모음 역행동화에 의해 변한 어형이 ‘먹뱅이’이다. ‘먹방이’는 ‘먹방’과 ‘이’로 분석된다. ‘먹방(-坊)’은 ‘먹을 만드는 동네'를 뜻하고, ‘-이’는 접미사이다. ‘-이’가 붙은 ‘먹방이’는 3음절인 관계로 ‘먹방’ 보다 안정감을 줄 뿐, 뜻은 ‘먹방’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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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골짜기. 먹을 한자로 쓰면 묵(墨)이 되므로, 이곳에서는 묵방골을 먹방골이라고도 하는데, 먹방이란 먹을 만드는 곳이고, 먹방골이란 먹방이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이다.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을 이용하여 먹을 만드는데(송연흑), 이 골짜기에 소나무가 많아서 먹방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먹방골은 이곳 외에도 전국 곳곳에 많이 있으며, 율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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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날 밤에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웃어른께 배례를 올리는 세시풍속. 섣달 그믐날 밤을 흔히 ‘제야(除夜)’라고 한다. 예로부터 섣달 그믐을 밝아 올 새해를 하루 앞둔 그 해의 마지막 날이라 하여 여러 가지 행사와 의식을 진행하는 풍습이 있었다. 예컨대 다가오는 설을 보다 뜻깊게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였다는데, 우선 집 안팎을 깨끗이 손질하고 거두었으며, 특별한 세찬(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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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문과(文科) 전시(殿試)에 합격한 유생. 대과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사마시는 각 지방별로 소과를 치러 초시에서 보통 700명 정도를 선발하고, 이 합격자를 대상으로 복시를 치러 100명을 선발하여 합격자에게 백패를 지급한다. 이 사마시 합격자는 성균관(成均館)에 입학하여 다시 수학한 후 대과에 응시하는데 통상 3단계를 거친다. 우선 초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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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기묘명현(己卯名賢).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형지(馨之)이며, 호는 강수(江叟)이다. 규정공(糾正公) 박현(朴鉉)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눌재공 박증영(朴增榮)이고, 할아버지는 박미(朴楣), 증조할아버지는 박중손(朴仲孫), 외할아버지는 박영달(朴英達), 처의 아버지는 변기지(卞紀之)이다. 1504년(연산군 10) 생원시에 급제하여, 천거로 의영고주부(義盈庫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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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이후의 문신과 무신의 총칭. 고려 4대 왕 광종(光宗)[946~975]은 후주(後周) 사람인 쌍기(雙冀)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도를 처음 실시하였다. 이후부터 문무의 관리를 별도의 시험을 통하여 선발하였는데, 5대 왕 경종(景宗) 때 부터는 문관을 동반(東班), 무관을 서반(西班)이라 하여 구별하였고, 이들 문반과 무반을 합하여 양반이라고 하였다. 양반은 곧 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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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이후의 문신과 무신의 총칭. 고려 4대 왕 광종(光宗)[946~975]은 후주(後周) 사람인 쌍기(雙冀)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도를 처음 실시하였다. 이후부터 문무의 관리를 별도의 시험을 통하여 선발하였는데, 5대 왕 경종(景宗) 때 부터는 문관을 동반(東班), 무관을 서반(西班)이라 하여 구별하였고, 이들 문반과 무반을 합하여 양반이라고 하였다. 양반은 곧 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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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사찰. 1945년 해방 이후에 세워진 사찰로, 창건 당시에는 봉덕암이라 하였다가 정각사로 변경되었다. 1983년에 최보문 스님이 들어와 문수암으로 이름을 바꾸고 크게 불사를 일으키는 한편, 대한불교조계종에 속하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 소규모의 절이라서 특별히 하는 행사는 없으나 매월 초하루에 인등기도와 보름에는 미륵기도를 하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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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 청주 출신의 재경관인.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정권을 장악한 직후 재경청주인은 왕건파와 궁예파로 나뉘었는데, 명길(明吉)은 친왕건파였다. 태조는 즉위한 직후 청주지방 호족세력의 동향에 대해 염려를 해서 재경청주인 명길, 능달(能達)과 함께 청주에 파견하였다. 돌아와 동향출신의 김근겸(金勤謙), 관준(寬駿)에게 청주지방의 반란을 조짐이 있다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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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서경(恕卿), 호는 송재(松齋)이다. 1486년(성종 17) 주부(主簿) 한창유(韓昌愈)의 아들로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1510년(중종 5) 생원이 되고, 1513년 별시문과(別時文科)에 장원하여 전적(典籍)을 거쳐 정언(正言)·이조정랑(吏曹正郞)·응교(應敎) 등을 역임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도량이 크며 독서를 즐겼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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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 속하는 법정동. 그림바위라는 바위가 있어서 그림바위, 화암이라고 불러왔고, 화암 오행민(吳行敏), 행간(行簡), 행건(行健) 삼 형제가 이 바위에서 글을 읽었다고 해서 서암, 문암으로 불러왔다. 문암동은 본래 청주군 서강내일상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서주내면의 문암리를 병합하여 문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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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 속하는 법정동. 그림바위라는 바위가 있어서 그림바위, 화암이라고 불러왔고, 화암 오행민(吳行敏), 행간(行簡), 행건(行健) 삼 형제가 이 바위에서 글을 읽었다고 해서 서암, 문암으로 불러왔다. 문암동은 본래 청주군 서강내일상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서주내면의 문암리를 병합하여 문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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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은 청주시 흥덕구 강서2동 10통이고, 법정명은 문암동 그림바위이다. 문암동은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 지역으로 그림바위가 있으므로 화암(畵岩) 또는 문암(文岩)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주내면(西州內面)의 문암리(文岩里)를 병합하여 문암리(文岩里)라 해서 강서면에 편입된 후, 1983년 2월에 대통령령에 의하여 청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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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위치가 북서쪽에 치우쳐 있어 교육 환경이 좋은 편이 아니다. 마을 주민들은 초등학교는 내곡동에 있는 내곡초등학교와 인근 시내에서 그 중 가까운 주성초등학교를 다녔고, 그 전에는 강서초등학교를 다녔다. 이 때는 교통편이 불편하여 모두 걸어서 등교했는데, 거리가 멀어 마을 아이들이 모여서 줄을 맞춰 등교하곤 했다. 중학교는 가장 가까운 주성중학교를 다닌다. 그러나 현재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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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장성하게 키워놨는데, 딸 줄 사람이 있어야지. 사우 삼을 사람이 없어서. 그래 옛날에는 광고에 붙이는 걸 방이라 했어요. 그래 도(道)로 군(郡)으로 면(面)으로 얘기 잘하는 사람 사우 삼는다고 그러니까, 젊은 혈기 있는 사람들은 가서 혼인 할라고 다 한번 가는 거야. 그래 거기 찾아갔는데, 충청도 사람도 가고, 전라도 사람도 가고, 경상도 사람도 가고, 인제 가믄 그 근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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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산 유람-할제 삼-신산이 어디메뇨 일본에 이방잔가- 사-명주 이 아니냐 죽장을 짚고 단표자로- 봉래산을 구경갈 제 경포 동정호는 명-월-을- 구경하고 단발령은 얼른 넘어 봉래산 고은 경치 지-척-에 던져두고 못본지가 몇해인-가 다행히 오날이야 이곳을 당도-하니- 이일이 새로워라 어화 세상 벗님네야 상-전벽해를 웃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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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주산업은 논농사이다. 주변 농지는 20만 평이 되는데 주로 인근 까치내에서 농사를 짓는다. 마을 거주 83호 중 20호 정도가 현재 농사를 짓고, 나머지 주민은 시내 등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거나, 노령화 되어 자식들에게 의탁하고 있는 실정이다. 벼농사 중 메벼 농사를 주로 하고 수확한 벼는 농협과 정부에 수매하고 나머지는 개인별로 수입을 내고 있다. 밭농사는 자급할 양만 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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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바위마을의 생활상은 농촌 마을과 유사하다. 주민들이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사시사철에 따라 생활모습이 바뀐다. 조선시대부터 농촌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마을 주민들은 협동과 단결이 잘 된다. 농사의 방법이 수작에서 기계로 바뀐 이후에도 혼자서 경작할 수 없기 때문에 주민 간에 협력이 필요해 단결이 잘 되고 있다. 예전처럼 동네 전체가 품앗이로 경작하진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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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소 장가들이기 이날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를 꺾어서 개나 소의 목에 묶어 주는 것을 장가들인다고 한다.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로 가축의 목에 묶어주면 귀신을 없애고 가축이 새끼를 잘 낳는다고 믿었다. ◦ 과일나무 결혼시키기 우물가의 돌이나 샘 옆의 돌맹이를 감나무 가지에 올려놓으면 감나무에 감이 많이 열린다고 하여 돌을 올려놓았다. 이것을 “감나무 시집보내기”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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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암동은 시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송절동, 서쪽은 원평동, 남쪽은 화계동, 북쪽은 정상동과 인접해 있다. 마을의 대부분이 평지이나 서쪽 일부지역이 구릉지를 형성하여 이곳에 그림바위마을이 있고, 마을 앞에는 안산마을이 있다. 마을 뒤에는 충북선이 주행하고 동쪽은 무심천(無心川) 제방도로가 있다. 마을 뒤편으로 약 이십만 평 정도 들이 펼쳐져 있다. 들판 중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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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그름바위라고 했어요. 옛날에 보믄 그전에는 물이 좋고, 별주부 자라 그걸 잡으려고 말야 그름바위, 오면은 바위가 있잖소, 갈래졌지 그전에는 한 여러믄이 앉아서는 농사짓는 밥을 식사를 하고는 했거든. 그런데 제방으로 돌을 가져다 쌓는 바람에 죄다 없어졌어. 그전에 전설이라는 게 옛날에 거기서 바위가 있어서 그름바위여. (선비가 많아서는 무슨 이야기에요) 그건 내가 이야기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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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바위마을은 아직도 동네에서 초상을 치르고 있다. 2004년 현재 그 수가 줄어드는 추세이고 일손이 모자라 상포사에 맡기기도 하지만 시내에서 보기 드물게 합심하여 초상을 치르고 있다. 2000년 이전까지는 거의 모든 초상이 이 동네에서 이루어졌지만 현재는 병원영안실이나 장례식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70%가 넘는다. 동네에 초상이 나면 동계와 연반계 회원들이 합심하여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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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문암동에 위치한 삼국 및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이 유적은 충북대학교박물관과 청주시가 『청주시 문화유적 분포지도』제작을 위해 1998년도에 실시한 지표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연질과 경질토기를 비롯하여 기와편이 출토되었다. 흥덕구 문암동은 청주시의 북서쪽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해발 50m 내외의 낮은 구릉에 분포하며 밭으로 경작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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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문암동에 위치한 원삼국~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중원문화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학술조사 활동의 일환으로 실시한 미호천(美湖川)유역의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조사 결과 뚜렷한 유구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와질소성의 우각형파수부편과 두드림무늬토기편, 철재 등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채집유물로 미루어 보아 원삼국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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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의병장 조헌(趙憲)[1544~1592]의 비석.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조헌의 청주성 탈환을 기념하기 위한 전적비(戰蹟碑)로 그가 죽은지 약 120년 뒤인 1710년(숙종 36)에 세워졌다. 상당구 서문동에 세웠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옮겨, 현재는 상당구 남문로2가 중앙공원(中央公園)의 동쪽 출입구의 오른쪽 화단에 서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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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문인협회(한국문인협회 충북지회)가 연간으로 발행하는 문예지. 충북문인협회는 각 시군 문인협회별로 소속된 회원들의 작품을 함께 발표할 지면의 필요성을 절감 1997년 『문예충북(文藝忠北)』을 창간하였다. 회원들의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집을 통해 지역출신 문학인을 조명하고, 청소년백일장 입상작품을 수록하여 매년 간행되고 있다. 각 시군의 문인협회별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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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 언론인 겸 문인. 1932년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서 태어났으며, 2001년 10월 10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1943년 청주사범학교에 입학하였고 195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58년 청주문화원장에 취임하였고 1959년에는 청주여자고등학교 교사 1960년에는 전국 문총 충북지부장, 1962년에 한국예총 충북지부 결성과 함께 초대지부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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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대학자. 송시열(宋時烈)의 자(字)는 영보(英甫)이고 호(號)는 우암(尤庵), 우재(尤齋), 화양동주(華陽洞主)이며, 시호(諡號)는 문정(文正)이다.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으로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 어머니는 선산곽씨(善山郭氏)이다. 송시열은 1607년(선조 40) 그의 외가가 있는 충북 옥천군 이원면 구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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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및 그 작품. 청주는 충청북도의 도청소재지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교육 문화도시이다. 청주의 문학이나 예술은 단순히 청주라는 협소란 공간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충북의 문학이나 예술 단체는 대부분이 청주에 지역적인 기반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점에서 청주의 문학이나 예술은 청주라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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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의 문학단체를 중심으로 한 다른 지역의 문인들이 참가하여 활동하는 단체. 충청북도에서 법인의 형식을 갖춘 문학단체는 한국문인협회 충청북도지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 충북지회가 있다. 이 조직을 중심으로 각 지역에 하위 조직으로 지부를 두고 있다. 이 두 단체 이외에는 소규모로 동인 활동의 성격을 가진 작은 규모의 단체들이 있다. 이 단체들은 대부분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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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성안동에 속하는 법정동. 1947년 일본식 동명을 폐지하고 새로운 동명으로 바꿀 때 문화동이라 하였다. 본래 청주군 동주내면(東州內面)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문외리(門外里)를 분할하여 제정(堤町), 도하정(稻荷町), 성동정(城東町)이라 명명하였으며, 동리의 일부를 분할하여 동정(東町)이라 하고, 청주면 관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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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에 있는 근대의 연립주택. 중간의 방화벽을 경계로 문화동 15-48[용담로21번길 16], 문화동 15-27번지 2호[용담로21번길 18-1]의 주택이 인접하고 있는 2호 연립주택이다. 이 주택은 1927년 조선총독부에서 제시한 2호 연립관사의 평면 유형에 준하여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관사는 1호당 건평 18.5평, 합계 37평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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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지역에서 예술인들이 문화예술을 할 수 있는 시설과 장소. 청주의 문화시설은 크게는 공연시설, 전시시설, 지역문화, 그리고 도서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흥덕구 사직동에 있는 청주예술의 전당으로 1995년에 설립되어 대지 1,000평에 건평 2,928평으로 지하1층 지상3층 건물로 지어졌다. 공연 장소로 이용되는 곳은 대공연장과 소공연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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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문화재는 크게 유형에 따라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 등으로 나누고, 지정여부에 따라 지정문화재와 비지정문화재로 구분한다. 청주시에는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문화재가 널리 분포되어있다. 주요 건축물로는 조선시대 충청도 병마절도사의 본영을 드나들던 출입문인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忠淸道兵馬節度使營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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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無心川)은 청주시 청원구에서 발원해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남일면 상대리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청주시내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미호천(美湖川)에 합류하고 금강을 거쳐 서해에 이르는, 전체 길이 34.5㎞, 유역면적 177.71㎢의 지방하천이다. 동쪽으로는 한남금북정맥으로 연결되는 우암산(牛岩山)[338m], 상당산(上黨山)[419m], 것대산(484.0m), 선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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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었던 마을. 물레방아거리는 탑동에 있었던 마을로 물레방아와 거리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물레방아가 있는 거리로 이해된다. 이 거리에 마을이 조성되자 거리 이름으로 마을 이름을 삼아 물레방아거리라 한 것이다. 전국에는 물레방아거리라는 지명이 여러 군데 있는데, 주로 들과 마을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옛날에는 마을이 있었다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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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골짜기. ‘가운데골’은 ‘가운데’와 ‘골’로 분석된다. ‘가운데’는 ‘일정한 공간이나 사물의 안쪽 부분’을 뜻한다. ‘골’은 고구려어 ‘忽’(홀·골)과 신라어 ‘’에서 기원한 것으로, ‘골짜기’나 ‘마을’을 뜻한다. 물론 본 예는 ‘골짜기’를 뜻한다. 그렇다면 ‘가운데골’은 ‘가운데에 있는 골짜기’로 해석된다. 전국적으로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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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시기에 실시된 미곡정책. 초기 미군정은 쌀의 자유판매를 허용하였다. 즉 미곡의 자유시장을 포함한 자유상품시장의 자본주의 제도를 북한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소련의 정책에 대조되는 것으로 제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쌀의 매점과 투기, 그리고 과대소비로 이어지면서 쌀값이 폭등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1946년 2월부터 다시 미곡수집령을 공포하여 강제공출제도를 재개하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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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이후 미군이 청주에 진주한 사건. 지방군정의 전개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시기로 구분될 수 있다. 제1기는 1945년 9월~10월 사이의 기간으로 전술부대에 의해 지방점령이 이루어지고, 군정이 수립되었다. 제2기는 11월~12월 사이의 기간으로 전술군에서 군정부대로 이양되고, 전술군의 무력을 바탕으로 군정부대에 의한 지방군정 수립과 인민위원회에 대한 탄압이 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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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었던 마을. 무심천(無心川)의 배후 저습지이고 우암산(牛岩山)[338m]의 보살사와 관음사 등의 계곡에서 물이 흘러내고 있어 도시계획이 실시되기 이전에는 논으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미나리 꽝’, ‘미나리깡’이라고도 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미나리강’으로도 발음하기도 한다. ‘미나리 꽝’은 ‘미나리광’의 된소리어형이고 ‘미나리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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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었던 마을. 무심천(無心川)의 배후 저습지이고 우암산(牛岩山)[338m]의 보살사와 관음사 등의 계곡에서 물이 흘러내고 있어 도시계획이 실시되기 이전에는 논으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미나리 꽝’, ‘미나리깡’이라고도 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미나리강’으로도 발음하기도 한다. ‘미나리 꽝’은 ‘미나리광’의 된소리어형이고 ‘미나리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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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었던 마을. 무심천(無心川)의 배후 저습지이고 우암산(牛岩山)[338m]의 보살사와 관음사 등의 계곡에서 물이 흘러내고 있어 도시계획이 실시되기 이전에는 논으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미나리 꽝’, ‘미나리깡’이라고도 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미나리강’으로도 발음하기도 한다. ‘미나리 꽝’은 ‘미나리광’의 된소리어형이고 ‘미나리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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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었던 마을. 무심천(無心川)의 배후 저습지이고 우암산(牛岩山)[338m]의 보살사와 관음사 등의 계곡에서 물이 흘러내고 있어 도시계획이 실시되기 이전에는 논으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미나리 꽝’, ‘미나리깡’이라고도 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미나리강’으로도 발음하기도 한다. ‘미나리 꽝’은 ‘미나리광’의 된소리어형이고 ‘미나리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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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에 있는 시민사회단체. 도시의 성장 모델을 개발하고 청주시가 경쟁력 있는 도시가 될 수 있는 기반을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2004년 7월 지역의 대학 교수 및 기업인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되었다. 미래도시연구원은 청주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연구단체이자 시민사회단체로, 지방화 시대에 걸맞은 도시 중심의 정치, 경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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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죽림동에 있었던 장승. 흥덕구 죽림동의 월천과 가경동(佳景洞) 경계의 민가 뒤쪽에 위치하였다. 크기는 높이 160㎝로, 원래는 무덤 앞에 있던 문인석(文人石)으로 판단된다. 돌장승으로 말미암아 이곳을 ‘미력뎅이’라고 부른다. 미력뎅이는 미륵덩이의 변한 말로 해석된다. 돌장승을 미륵으로 부른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돌장승은 마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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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국립청주박물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조 보살상.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 다방리 비암사에서 발견 된 3점의 비상(碑像) 중 가장 작은 것으로 현재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87번지[명암로 143]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높이 41㎝, 너비 아래 15.5㎝, 위 21.3㎝, 두께 아래 11㎝, 위 7.1㎝ 크기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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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미륵삼부경(彌勒三部經)』을 근거로 발생한 신앙. 미륵은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제자로 부처가 되었는데, 미륵의 범어(梵語) Maitreya에 ‘자비(慈悲)’라는 뜻이 있어 미래에 중생을 구제한다는 대승적 자비사상에서 그 신앙이 크게 발전하였다. 우리나라 민속에서 미륵신앙은 바위를 신격화하여 숭배하던 암석신앙의 한 유형인 선돌신앙이 불교가 전래된 뒤에 석불신앙으로 옮겨지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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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를 표현하는 예술. 청주의 근대 미술은 정관 김복진(金復鎭)[1901~1940]을 이야기 않을 수 없다. 문인이었던 팔봉 김기진의 동생이기도 했던 그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서양조각을 도입한 장본인이었다. 1920년 배재고보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에 입학한 그는 1922년 지인들과 연극단체인 토월회를 창립하기도 하였다. 귀국하여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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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을 대상으로 하여 얼굴이나 머리, 피부 등을 매만지고 미적으로 꾸미는 장소. 미용소는 1920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사인 오엽주(吳葉舟)가 화신백화점에 개업한 것이 최초였다. 이후 1945년 광복을 기해 미용업을 위주로 하는 모임이나 단체가 본격적으로 형성되었고, 곳곳에 미용실이 등장하면서 급격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당시 미용은 취업희망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으면서 남자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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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에 있는 마을. ‘무터골’은 ‘물터골’의 변형이다. ‘물터골’은 ‘물터’와 ‘골’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물터’ 는 ‘물이 많이 나는 자리’로 해석된다. 이 '물터’가 있는 골짜기가 ‘물터골’이며 이로부터 ‘ㄹ'이 탈락하여 ‘무터골’이 된 것이다. ‘무터골’은 지역에 따라 ‘무테골’로도 나타난다. ‘무터골’은 본래 골짜기 이름이나 여기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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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미·분·장동에 속하는 법정동. 쌀이 많이 난다 하여 ‘쌀애들’ 또는 미평(米坪)이라 하였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남주내면(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두지리(斗之里), 영호리(永虎里), 가북리(駕北里), 분동리(粉洞里) 일부 및 남이면(南二面)의 가북리(駕北里), 가남리(駕南里), 가중리(駕中里)의 각 일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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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리과의 한국특산어종. 1983년 서원대학교 손영목 박사가 최초로 발견하여 1984년 전북대학교 김익수 교수와 공동명의로 신종 발표한 민물고기로 2005년 3월 17일 천연기념물 제454호로 지정된 희귀어종이자 금강 특산어종 및 한국 특산어종이다. 1984년 신종 보고 당시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美湖川)의 일부구간에서만 발견되어 미호종개란 한국명이 지어졌다. 미호종개는 얼핏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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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부용산에서 발원하여 청주의 동북쪽의 변두리에서 서남쪽으로 흘러드는 하천. 미호천(美湖川)은 넓은 증평평야를 형성해 놓고 흐르는 보강천과 합류한 후 계속하여 남류하다가 청주의 무심천(無心川)과 청주시 강서에서 합류하고 천안분지에서 동류하는 병천과 청원군 강내에서 만나 금강으로 흘러든다. 진천분지, 증평분지, 청주분지 등을 통합하는 미호천(美湖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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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지동동과 고락동 일대에서 전승되고 있는 세시의식요(歲時儀式謠). 의식요(儀式謠)는 세시풍속(歲時風俗)이나 통과의례(通過儀禮)에 해당되는 의식을 거행하면서 부르는 민요이다. 세시풍속이나 통과의례에 민요가 등장하는 것은 두 가지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의식에서 이루고자 하는 바를 실제로 실현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믿는 것과, 둘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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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서 초월적인 자연신에 대한 숭배와 그 실천적 행위. 원시시대 신비롭고 위대한 자연을 숭배하면서 자연을 신격화하고 종교적으로 신앙하면서 형성된 자연신앙에서 발달한 원시종교로서 불교나 기독교와 같은 고급종교처럼 교주도 교리도 교단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하여 신앙의 대상은 산·물·바위·나무·동물 같은 자연물을 신으로 섬기며, 신앙의 목적도 단순히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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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09년경 동지들과 비밀결사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조직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던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남대문 밖에 소의학교(昭義學校)를 세워 민족교육사업에 나섰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이른바 한성정부(漢城政府)의 성립과 국민대회(國民大會) 개최를 추진하였고, 자금 조달을 추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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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정치가. 1921년 5월 청원군 북일면 입동리에서 태어났다. 청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건국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조국에서의 독립투사들의 독립운동을 보았고, 조국과 겨레의 비통을 느꼈다. 일제가 강제 징집을 하였던 1945년 1월 1일 학도병으로 출정하여, 3월에 육군소위로 임관되었다. 8·15 해방과 더불어 건군(建軍)을 미리부터 염려하고 동지를 모아 선각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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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민노아(閔老雅, F.S. Miller)와 부례선(富禮宣) 선교사를 기념하는 비. 청주지역 최초의 개신교(改新敎) 선교사(宣敎師)인 민노아(閔老雅)와 부례선의 행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상당구 탑동의 일신여자고등학교 교정에 있다. 높이 154㎝, 폭44.5㎝. 두께 30.5㎝의 오석(烏石)의 비신(碑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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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당진현감을 지낸 민제영(閔齊英)의 후손이다. 거주지는 청주였으며, 아버지는 민진구(閔鎭龜), 할아버지는 민명중(閔明重), 증조할아버지는 민광석(閔光晰), 외할아버지는 홍호(洪鎬)였다. 형으로 민약수(閔若洙)와 민정수(閔正洙)가 있었으며, 아들은 민백유(閔百有), 민백만(閔百晩), 민백익(閔百益)의 3형제를 두었다. 통덕랑(通德郞)으로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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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출신의 문학인. 1928년 9월 20일 아버지 민중식(閔重植)과 어머니 신상희(申尙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민구관(閔舊官)댁으로 불려졌는데, 당시 충청북도 제일의 부호였다. 민병산의 큰 할아버지는 구한말에 괴산군수와 청주군수를 지낸 민영은(閔泳殷)이었으며, 아버지도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나온 엘리트였다. 그가 살았던 상당구 문화동 집은 1천여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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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출신의 문학인. 1928년 9월 20일 아버지 민중식(閔重植)과 어머니 신상희(申尙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민구관(閔舊官)댁으로 불려졌는데, 당시 충청북도 제일의 부호였다. 민병산의 큰 할아버지는 구한말에 괴산군수와 청주군수를 지낸 민영은(閔泳殷)이었으며, 아버지도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나온 엘리트였다. 그가 살았던 상당구 문화동 집은 1천여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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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들 사이에서 전승되어온 생활과 풍습. 청주 지역에서 전승되어오는 민속놀이로는 농악, 씨름, 줄다리기, 그네뛰기, 윷놀이, 연날리기, 자치기 등이 있다. 농악은 풀매기·벼심기 등 힘든 일을 할 때 수고를 덜고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거행되었지만, 정초·단오·백중·추석 등의 명절날에는 온 주민들과 함께 즐기는 오락적 기능도 담당하였다. 특히 정초의 경우에는 오락일 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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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서 초월적인 자연신에 대한 숭배와 그 실천적 행위. 원시시대 신비롭고 위대한 자연을 숭배하면서 자연을 신격화하고 종교적으로 신앙하면서 형성된 자연신앙에서 발달한 원시종교로서 불교나 기독교와 같은 고급종교처럼 교주도 교리도 교단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하여 신앙의 대상은 산·물·바위·나무·동물 같은 자연물을 신으로 섬기며, 신앙의 목적도 단순히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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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노래. 청주민요의 사설, 가락, 기능에 대한 전반적인 특성을 다루는 것이 마땅한 일이나 기존 자료나 조사의 불충분으로 청주민요의 사설과 기능을 중심으로 기능별 분류 체계에 따라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로 분류할 수 있다. 1. 노동요 (1) 농업노동요 : 「모찌기 노래」, 「모내기 노래」, 「논매기노래」, 「보리타작 노래」 (2) 길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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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공화국 때 국회의 민의원을 선출했던 선거제도. 1952년 7월 7일 개헌 헌법에 의해 국회를 민의원과 참의원으로 구성하게 되었는데 한국동란으로 인해 1954년 5월 20일에서야 민의원선거가 이루어졌다. 민의원 선거는 총 233명을 선출하는 선거로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한 선거구별 최다득표자를 선출하는 선거였다. 1954년 5월 20일 실시된 민의원 선거에서 충북의 제1선거구인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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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주대학교 예술대학 한국음악과에 설치되어 있는 한국음악 박물관. 1991년 청주대학교 장사훈이 국악의 보급과 교육을 위하여 도서, 악기, 음반 등 국악 관련 자료를 기증하여 설립되었다. 장서 5,000여점, 국악기 60종, 음반 500여장이 전시되어 있다. 국악기 가운데는 세종(世宗) 때 박연(朴堧)[1378~1458]이 제작한 특경(황종음), 흥선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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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화해와 일치를 위한 형제적 나눔을 실현하기 위해 설치된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단체. 1982년 한국천주교는 전래 200주년을 맞았다. 이에 따라 남북화해와 일치를 위한 형제적 나눔을 실현하기 위해 천주교 내에 북한 선교부가 설치됐다. 북한 선교부는 민족 평화통일 대비와 북한 교회 부흥, 그리고 복음화도 주요 목표로 갖고 있었다. 명칭이 본래 뜻과 다소 맞지 않는다는 주위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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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에 있는 정치단체. 남북한 화해협력 시대를 맞이하여 민족화합, 국민통합이라는 과제를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교류협력 증진 및 민주개혁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민족민주운동의 자기쇄신과 지방자치시대의 지역운동을 새롭게 모색한 결과로 창립되었다. 1993년 통일시대민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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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있는 민주노총 충북지역 본부. 충청북도의 노동운동은 1986년을 기점으로 1988년 택시 총파업, 1990년초 AMK, 한국야금, 한주전자, 맥슨 등 청주공단내 금속사업장의 연대투쟁으로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200여명이 해고되고 60명의 구속으로 민주노조운동의 뿌리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현장내 지역 연대투쟁 정신을 계승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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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충청북도지역을 대표하는 지역당. 새정치국민회의는 충청북도를 대표하는 법정 지역정당으로 도지부산하에 지구당인 국민회의 청주갑[상당]과 국민회의 청주을[흥덕]로 나누어 지구당을 두었으며, 2002년 3월 7일 정당법이 개정되면서 지구당은 없어지고 2004년 도지부인 민주당 충북도당으로 변경되었다. 민주당은 1950년대 민주야당의 반독재투쟁과 4·19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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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예종조에 이조정랑을 지낸 민수(閔粹)의 8세손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청주 일대에서 난(일명 무신란)을 일으키자, 청주목사(淸州牧使)이던 박당(朴鏜)은 도피하고, 우후(虞侯) 박종원(朴宗元)은 성을 내주고 투항해 버렸다. 이 때 민진수는 일문종당(一門宗黨)과 인근 친지 100여 명을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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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자는 이견(而見)이다. 당진현감을 지낸 민제영(閔齊英)의 후손으로 거주지는 청주였다. 아버지는 민명중(閔明重)이고, 할아버지는 민광석(閔光晰)이다. 동생으로 민진구(閔鎭龜)와 민진혼(閔鎭混)이 있었으며, 두 아들을 두었다. 1678년(숙종 4)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도사(都事)와 병조정랑(兵曹正郞)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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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관리.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음사(蔭仕)로 현감(縣監)을 지냈으며,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발발하자 청주의 반란군들을 잡으려다가 오히려 사로잡혔다. 창의(倡義)로 인하여 가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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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기업 신흥제분의 창업자. 호는 한암. 본관은 여흥(驪興)으로 경기도 안산군 서운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래는 양반 가문의 천석지기 부호의 장손으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의 유산을 선대가 탕진함에 따라, 어려서부터 고생을 하며 성장하였다. 어려서 어머니를 네 살에 잃고 외가와 숙모댁에서 자랐다. 17살 되던 해에는 민씨(閔氏) 문중이 있는 청주로 와서 친척이 되는 민참령(閔參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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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당진현감을 지낸 민제영(閔齊英)의 후손이다. 거주지는 청주였으며, 아버지는 민광안(閔光顔)이고, 할아버지는 민목견(閔木絹)이다. 형은 민태석(閔泰碩), 동생은 민태항(閔泰恒)이다. 1705년(숙종 31)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현감(縣監)과 군수(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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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민계층에서 주로 그려졌던 민간예술적인 그림. 민화는 선사시대의 바위그림[岩刻畵]이나 청동기시대의 공예품에서부터 그 성격을 찾을 수 있어 뿌리가 깊으며, 삼국시대의 고분벽화나 벽돌, 고려, 조선시대의 그림이나 공예품에서 많이 나타난다. 민화는 어느 나라에도 있는 것이지만 특히,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다양하게 발전해 왔으며, 중국의 연화(年畵)나 일본의 우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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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밀양박씨(密陽朴氏)의 정려문. 여산송씨(礪山宋氏) 송현기(宋鉉器)의 부인인 밀양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55년에 세운 정려문이다. 흥덕구 강서사거리에서 청주가로수길을 따라 경부고속도로 청주 IC 방향으로 약 3.3㎞ 가량 가면 오른쪽에 수의동 강촌마을이 있는데, 이 정려문은 마을 입구 공터의 왼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