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신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884
한자 彌勒信仰
영어음역 Mireuk sinang
영어의미역 Maitreya Worship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김영진

[정의]

불교의 『미륵삼부경(彌勒三部經)』을 근거로 발생한 신앙.

[개설]

미륵은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제자로 부처가 되었는데, 미륵의 범어(梵語) Maitreya에 ‘자비(慈悲)’라는 뜻이 있어 미래에 중생을 구제한다는 대승적 자비사상에서 그 신앙이 크게 발전하였다.

[변천]

우리나라 민속에서 미륵신앙은 바위를 신격화하여 숭배하던 암석신앙의 한 유형인 선돌신앙이 불교가 전래된 뒤에 석불신앙으로 옮겨지고 이 석불신앙이 미륵신앙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민간에서 절이 아닌 곳에 있는 석불은 그 형체와 관계없이 거의 ‘미륵’으로 부를 뿐만 아니라 돌장승과 선돌까지도 ‘미륵’이라 부르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선돌신앙이 석불신앙으로 쉽게 바뀔 수 있었던 것은 선돌이나 석불이 모두 암석이고 그 모양도 입체적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조선시대 배불정책으로 많은 절이 폐허가 되고 산기슭이나 들판에 방치된 석불에 접근하기가 쉬워지면서 자연적인 선돌보다 종교적으로 가공된 석불에서 더 깊은 신앙심을 느끼고 또 그 신앙심을 더욱 구체화하여 자비심이 많은 ‘미륵’으로 부르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민간의 미륵신앙은 민속과 불교가 합쳐진 신앙형태로 발전하여 파손된 석불을 수리하거나 또는 미륵을 조성하여 보다 적극적인 신앙으로 확대되기도 하였다.

[형태]

청주에서 민간의 미륵신앙은 옛날 사뇌사(思惱寺) 절터의 운천동 미륵과 죽림동의 미륵(속칭 돌장승) 등에서 찾아 볼 수 있었는데, 그 신앙의 내용은 주로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개인적인 치성이었다.

그리하여 주로 아들이 없는 집에서는 아들을 빌고 환자가 있는 집에서 병이 낫기를 빌었으며, 그 형태는 주부가 미륵 앞에 촛불을 켜놓고 정화수나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소원을 비손하거나 절을 하며 치성을 드렸다. 치성은 그 정성에 따라 적으면 3일이고 많으면 100일을 계속하며 부정을 막기 위하여 미륵 주변에 황토를 뿌리거나 미륵을 왼새끼로 감기도 하였는데, 특히 수명장수를 빌 때는 명주실 타래를 감기도 하였다.

[현황]

운천동 미륵은 그곳에 용화사(龍華寺)가 조성되면서 민간신앙에서 멀어지고, 죽림동 미륵은 도시화 과정에서 4년 전에 없어진 오늘날, 용정동에 있는 석불(속칭 돌장승)에서 희미하게 미륵신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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