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868
한자 明岩洞遺蹟
영어음역 Myeongam-dong Yujeok
영어의미역 Archeological Site in Myeongam-d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우종윤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주거지·돌덧널무덤[石槨墓]·움무덤[土壙墓] 등의 유구가 출토된 유적.

[발굴/조사경위]

청주시에서 시행한 동부우회도로 건설공사 중 삼국시대 토기편과 돌덧널무덤의 잔해로 보이는 석재가 노출된 사실을 확인하여 1998년·1999년의 2차례에 걸쳐 국립청주박물관에서 긴급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는 Ⅰ·Ⅱ지구로 구분하여 연차적으로 이루어졌다.

[위치]

상당구 명암동용담동 일원에 분포한 유적으로 청주시 동부우회도로 건설공사구간 내에 위치한다.

[현황]

이 유적은 해발 100~115m의 구릉 말단부에 자리하며, 삼국시대의 주거지 10기·돌덧널무덤 1기·움무덤 6기·구덩유구 1기와 통일신라시대 돌덧널무덤 6기, 고려시대~조선시대의 움무덤 40기 등 모두 64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발굴결과]

주거지는 모두 백제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평면 방형계통의 주거지이나 파괴가 많이 이루어진 상태이다. 규모는 모두 길이와 너비가 5m이내이고 기둥구멍이 확인된 것(4기)과 불 땐 시설[爐址]이 있는 것(1기), 중복된 것(2기)이 있다. 출토유물은 동이·독[甕]·시루·짧은목단지[短頸壺]·바리[鉢] 등 주로 연질소성의 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쇠끌[鐵鑿]·덩이쇠[鐵鋌]·쇠화살촉[鐵鏃]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는데, 특히 덩이쇠가 주거지에서 출토된 예가 드물어 주목된다. 주거지 조성연대는 출토 유물상으로 볼 때 4세기대로 편년된다.

움무덤은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여 구릉사면에 조영되었고 무덤 바닥에 자갈을 깔아놓은 형태가 발견된 점, 토기와 철기류가 세트로 부장된 양상 등은 청주 신봉동(新鳳洞) 백제고분과 매우 유사하다. 출토유물은 짧은목단지·바리·유견호(有肩壺)·입넓은단지[廣口壺]·긴목단지[長頸壺]·뚜껑접시[蓋杯]·병[甁] 등의 토기류와 쇠낫[鐵鎌]·쇠화살촉[鐵鏃] 등의 철기가 나왔다. 움무덤은 4세기 말~5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돌덧널무덤은 경사진 지형에 깬돌[割石]을 이용하여 축조하였으나 대부분 파괴되어 정확한 무덤의 구조를 파악하기 어려우나 앞트기식[횡구식(橫口式)] 5기·구덩식[수혈식(竪穴式)] 1기로 추정된다. 무덤 바닥에는 대부분 작은 돌을 깔아 시상대(屍床臺)를 마련하였고, 관못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시신을 그대로 안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토유물은 토기병·굽다리 완[臺附盌]·손잡이달린 단지[把手附壺] 등이 출토되었다. 돌덧널무덤의 조성연대는 7세기 후엽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움무덤은 구릉 정상부와 가지능선상에 분포하며 대부분 나무널[목관(木棺)]을 사용하였다. 이 중 특히 Ⅰ지구 1호 고려시대 무덤에서는 "단산오(옥)(丹山烏玉)"명 먹과 함께 원풍통보(元豊通寶)·경원동보(慶元通寶) 등 동전 4점과 철제가위·청동젓가락 등이 출토되었다. 먹은 길이 11.2㎝·너비 4㎝·두께 0.9㎝ 크기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고려시대의 먹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고려시대 무덤 출토유물은 청자대접·청자병·백지접시·백지완 등의 도자류와 원앙연화문장신구(鴛鴦蓮花文裝身具)·동곳·은제동곳·동전 등의 금속유물 및 먹 등이 나왔으며, 무덤조성연대는 10세기 말~11세기 초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무덤 출토 백자는 16세기 무렵 지방가마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여지며 무덤의 조성연대도 이 시기로 여겨진다.

[의의와 평가]

명암동유적은 여러 시대의 다양한 유형의 유구가 조사된 복합유적으로서의 성격을 지니며, 4세기 무렵 청주지역 백제주거지의 입지와 주거형태를 살필 수 있는 자료가 축적된 점, 상대적으로 빈약한 청주지역의 신라묘제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 및 신라세력의 확산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확보된 점, 무덤에서 고려시대 먹이 처음 출토된 점, 고려~조선시대 무덤 출토 유물들을 통하여 이 지역의 중세문화를 규명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확보한 점 등은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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