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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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河書院 |
영어공식명칭 | Cheonghaseowon Confucian Academy |
이칭/별칭 | 학천사(鶴川祠)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학천리 |
집필자 | 유호석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학천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서원.
[개설]
청하서원은 이괄(李适)의 난 때 창의한 박동립(朴東立)과 박동립의 동생 박동현(朴東顯), 조선 후기 학자 유조(柳組)를 배향하기 위해 조선왕조 말에 유림의 중의로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중인동 모악산 기슭에 세운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뒤에 중건되면서 김장생(金長生)을 주벽(主壁)으로 추가 봉안하였다.
[위치]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중인동 중인교차로에서 금산사 방향으로 좌회전한 뒤에 우림로를 따라가다가 중인보건진료소가 있는 중인1길을 따라 이동하면 청하서원이 나온다. 모악산 주차장에서 보면 서쪽으로 230m 정도 떨어진 모악산 기슭이다.
[변천]
조선 순조 때 지방 유림의 공의(公議)로 정수홍(鄭守弘), 정곤(鄭坤), 박동현(朴東顯), 박동립(朴東立)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학천리에 학천사(鶴川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현재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중인동 자리에 청하서원을 창건하고 박동립과 박동현의 위패를 옮겨와 봉안하면서 유조(柳組)를 추가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이듬해인 1869년(고종 6) 이곳 유림들이 제단을 마련하고 향사를 계속 지냈다. 1966년에 이르러 서원을 복원하면서 김장생(金長生)을 주벽(主壁)으로 추가 봉안하였다.
[형태]
청하서원의 사당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이밖에 강당, 내신문(內神門), 고사(雇舍), 홍살문(紅箭門) 등이 있다. 3칸짜리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좁은 방]로 되어 있는데, 원내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고사에는 서원관리자가 거처하고 있다.
[현황]
청하서원의 사우 안에는 김장생·박동립·유조·박동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데, 매월 3월 초정(初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서원과 사우의 건립과 훼철, 중건의 역사를 통해 유교 사상의 영향 아래 선조와 선현을 숭배하였던 조선조 향촌사회의 성격은 물론, 유교의 폐단이 두드러지게 표출되었던 조선 후기 양반사회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청하서원의 변천을 통해 전라북도 완주의 지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