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379 |
---|---|
한자 | 餘邑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정재윤 |
공포 시기/일시 | 757년 12월 |
---|---|
관할 지역 | 여읍현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일대 |
[정의]
통일 신라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개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지방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전국을 9주로 나누었다. 서산 지역은 웅주 소속의 부성군(富城郡)과 지금의 당진군 일대를 중심으로 한 혜성군(槥城郡)에 속한 여읍현(餘邑縣) 등으로 편제되었다. 여읍현이 위치한 운산면(雲山面) 일대는 가야산으로부터 발원한 용장천이 당진군 내를 통과하여 북쪽의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수로 교통의 중심지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삼국 통일 후 신라는 고구려 및 백제 고지(故地)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지방 통치 제도를 재편하였다. 신라 및 가야의 옛 땅에 3주를 두고, 고구려 및 백제의 옛 땅에도 각각 3주를 두어 총 9주를 설치하였다. 백제에 설치된 3주는 웅주(熊州)·전주(全州)·무주(武州)이다. 웅주에 속한 운산 지역은 통일 신라 시대에도 여전히 중국과의 교통로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기에 큰 변화 없이 혜군(槥郡)이 혜성군(槥城郡)으로 개칭되었으며 여촌현(餘村縣) 역시 여읍현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6 잡지 제5 지리3 신라 웅주 혜성군조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혜성군은 본시 백제의 혜군(槥郡)으로, 경덕왕(景德王)이 혜성(槥城)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하니, 영현(領縣)이 셋이다. 당진현(唐津縣)은 본시 백제의 벌수지현(伐首只縣)으로, 경덕왕이 당진(唐津)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한다. 여읍현은 본시 백제의 여촌현으로, 경덕왕이 여읍(餘邑)으로 개명, 지금의 여미현(餘美縣)이다. 신평현(新平縣)은 본시 백제의 사평현(沙平縣)으로, 경덕왕이 신평(新平)으로 개명, 지금도 그대로 한다.”
[내용]
여읍현의 치소(治所)나 통치 범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다만 백제 시대의 관할 범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여읍현을 관할하는 혜성군이 당진군 면천면 일대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여읍현은 혜성군 남쪽의 서산시 운산면 일대를 관할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운산면에는 가좌리·갈산리 일대의 동암산성, 운산면 원평리 일대의 상왕산성[대성], 안호리 일대의 전라산성 등 많은 산성이 위치하고 있으나 발굴 조사의 미비로 명확한 치소의 위치는 파악되지 못하였다.
[변천]
757년(경덕왕 16)에 혜성군여읍현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고려 시대에는 양광도(楊廣道) 홍주(洪州) 예하의 영현인 여미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407년(태종 7) 정해현과 통합하여 서산군 해미현으로 개편되었으며, 1914년 운산면으로 고쳐진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의의와 평가]
통일 신라 시기에도 웅주, 즉 충청남도공주 지역은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여읍현이 위치한 운산면 일대는 태안반도를 통해 전해진 선진 문물이 가야산 협곡을 따라 충청남도 내륙 지역으로 전해지는 요지의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