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3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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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統一新羅時代 |
이칭/별칭 | 남북국 시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정재윤 |
[정의]
통일 신라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개설]
통일 신라 시대는 신라가 신라·당 전쟁에서 승리하고 삼국을 통일한 676년부터 후백제가 건국한 901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그러나 북쪽의 발해(渤海)[698~926]와 남쪽의 통일 신라가 병립했던 점에 주목하여 남북국 시대로 부르기도 한다.
[통일 신라 시대의 정치·행정과 사회·문화]
삼국 통일과 함께 서산 지역에는 웅주(熊州) 부성군(富城郡)과 지육현(地育縣)·소태현(蘇泰縣)의 2현, 혜성군(槥城郡) 예하 여읍현(餘邑縣)의 1현을 합쳐 1군과 3현이 설치되었다. 통일 신라 시대에도 서산 지역은 한반도와 중국을 오가는 매우 중요한 해상 교통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말의 대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이 부성군 태수로 부임한 것도 신라의 대중국 교통로 확보와 무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 하대에는 신분제의 모순과 사회의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지방에서는 호족 세력과 군벌 세력이 점차 성장하였다. 또한, 중앙의 일부 귀족 세력을 위한 교학(敎學) 위주의 불교 사상이 쇠퇴하고 선종(禪宗)이 유행하였다. 가야산 일대를 중심으로 한 서산 지역을 포함하는 충청남도 서해안 일대에도 육두품(六頭品) 출신의 낭혜화상(朗慧和尙) 무염(無染)으로 대표되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성주산파(聖住山派)가 크게 세를 떨쳤다. 부성군 태수로 부임했던 최치원은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聖住寺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의 비문을 썼을 정도로 성주산문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